'천년의 질문' 조정래 "손주 세대, 양극화 해소된 정상 국가서 살았으면"
"한국은 역피라미드 사회"…기자 주인공으로 세워 빈부격차·정경유착 실태 폭로
"권력자들, 국민 신뢰 수천년 동안 배반"…후대 위해 '스웨덴 모델' 국가 개조 주장
입력 : 2019-06-13 18:00:00 수정 : 2019-06-13 18: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언젠가 당신은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우리 민족과 우리 조국을 가장 사랑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정래(77) 작가가 신작 장편 '천년의 질문(전 3권·해냄)'을 출간한 배경이다. 지난 1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그는 "대한민국 땅에서 살다가 이 땅에 뼈를 묻을 것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며 "소설은 현실의 형상화고, 당대 의식을 반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근 '우리 사회의 갈등과 빈부격차 문제 속에 하루 빨리 정상 국가가 돼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마음으로 썼다"고 소회했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을 집필한 조정래 작가는 한국 문단의 '거목'이다. 1974년 첫 소설집 '황토'를 출간한 이래 40년 넘게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와 사회 등 묵직한 주제를 주무르는 소설을 다뤄왔다. 200자 원고지 3612장으로 탈고한 이번 작품에서는 1970년대 중반 이후 한국사회의 고질적 병폐로 여겨진 양극화를 겨눈다. 스무권 이상의 책을 훑고, 취재 수첩 130권을 작성한 끝에야 완성됐다.
 
1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조정래. 사진/해냄출판사
 
'천년의 질문'은 시사주간지 기자 장우진이 재벌의 비자금 조성을 취재하는 내용을 서사의 큰 줄기로 택한다. 정경유착 실태와 비정규직 문제, 급격한 사회 양극화에 시달리는 대한민국 현재의 모습이 거울처럼 비춰진다. 불법 비자금, 전관예우 문제 등 관행처럼 벌어지는 권력 범죄의 실태도 적나라하게 폭로된다. "대한민국은 세계 180여개국 중 부패지수가 58위,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32개 회원국 중 29위입니다. 경제 규모는 11위, 수출은 세계 7위라는 통계 수치 앞에 있는 이런 부패지수는 무엇을 입증하는가. 이것이 이 소설이 갖는 보편성입니다."
 
소설 구상은 월남전이 종식된 1976년 이후부터 시작됐다. 당시는 월남전 특수로 한국 기업들이 외화를 많이 벌어들였던 시기다. '지금은 분배의 시기가 아니다. 축적의 시기다'란 정치적 구호 아래 국민들은 침묵으로 시인했다. 이후 정권이 여러차례 바뀌었고, 1인당 국민소득은 3만달러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분배 시기'에 대한 공식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유엔에서 처음 지니계수를 발표하던 해에 우리나라는 4.01이었습니다. 2~3년 지나면서 5.88까지 올라가버렸죠. 대한민국 사회는 소득격차가 너무 커지면서 미국과 함께 역피라미드 사회가 돼 버렸습니다. 제 손자가 이제 막 성인식이 지났는데, 적어도 우리 손자세대만큼은 이런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갈등을 겪지 않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현실을 작가로서 바라봐야 했습니다."
 
조정래 '천년의 질문'. 사진/해냄출판사
 
주인공을 기자로 설정한 것과 관련해 작가는 고등학교 때 읽었던 수필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당시 '신문은 사회의 목탁이다. 기자는 사회의 등불이고 산소여야 한다'고 써 있었다"며 "기자는 그 기준 속에서 모든 분야를 자세히 구체적으로 폭넓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설정했다"고 말했다.
 
작가는 '국가란 무엇인 것 같냐'는 물음에는 "국가의 권력을 만들어 주는 것은 국민의 의미고 책임이다. 국민은 민주주의 아래 행복을 소망하며 국가를 신뢰한다"며 "하지만 그 신뢰를 배반해온 게 수천년에 걸친 권력자들이다. 책에서는 그에 대한 해답을 적시했다"고 일갈했다.
 
그는 소설 말미에 우리 사회가 가야 할 방향을 유럽 선진 국가로 제시한다. 인권을 존중하고 복지를 체계적으로 실시하는 사례를 주인공 장우진의 입을 빌어 아예 '스웨덴 모델'이라고 지칭한다.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등은 20~21세기 가장 모범적인 복지국가입니다. 그에 맞춰 개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담았습니다. 그 나라 사람들은 정치인들이 행복을 주는 고마운 사람들이라 합니다."
 
1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조정래. 사진/해냄출판사
 
작가는 '평화적 혁명'을 통해 그렇게 가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은 시민단체가 100만개, 70만~80만개 있는 나라가 실재합니다. 한 국민이 1000~2000원씩 기부하고 10~20개 시민단체에 가입해 활동하는 나라가 조정래가 꿈꾸는 나라, 내가 꿈꾸는 대한민국입니다. 10년, 20년이 걸리든 평화적 혁명을 통해 그렇게 되길 소망합니다. 광화문 촛불시위에 나섰던 1000만이 상비군으로 존재하는 나라가 되길 바랍니다."
 
작가로서 정치적인 견해를 드러내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지 않냐는 물음에는 "작가 선택의 자유"라며 "소설에 대해 논하는 건 평론가다. 작가는 자기 의사에 따라 쓰는 것이다. 작가의 자유를 속박하지 말라" 했다. 또 오늘날 한국사회의 가장 가슴 아픈 사건으로는 뒤틀리는 북핵 문제, 정치인들의 파렴치하고 치졸한 말싸움을 꼽았다.
 
"죽을 때까지 소설을 쓰겠다"는 그는 인간의 존재론적 물음을 다음 소설로 구상 중이다. 7000미터까지 폭발하는 인도네시아를 보면서 지구는 무엇일까, 인간의 영혼은 얼마만큼 존재하는 것인가 하는 고민이 현재 그의 머릿속을 지배한다. "3년 전부터 정리하고 있습니다. 무지에 대한, 생명에 대한 궁금증. 이미 제게 죽음에 대한 공포는 80~90퍼센트를 넘어섰습니다. 그에 대한 글쓰기를 계속해 간다면 훗날 편안하게 눈을 감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글쓰는 게 고통스럽지는 않나요, 라고 물었다.
 
껄껄껄 시원하게 웃었다. 물론 고통스럽다, 고 그가 답했다. 
 
"기쁨과 희열이 그것을 해소시켜주죠. 석가모니가 열반을 느끼는 것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요. 몇 세대에 걸쳐 작품이 읽히고 끝없는 반응을 얻을 때 고통이 극복됩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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