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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 아닌 노동법 시각으로 바라볼 '노동법원' 절실"
법원노조 국회토론회…정부·경총 등은 "노동위원회로 충분" 반론
2019-06-05 19:22:53 2019-06-05 19:22:53
[뉴스토마토 최서윤 기자] 지난 1989년 한국노총의 입법청원 이래 30년간 지속된 노동법원 설립 논의가 재점화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조응천·한정애 의원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노동법원 설립을 위한 토론회를 열고 복잡다단해지는 노사분쟁 해결을 위해 행정법원이나 가사법원 같은 별도의 사법기관이 생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와 경총 측은 현 노동위원회제도를 보완하면 충분하다며 첨예하게 맞섰다.
 
현재 국회에는 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대표 발의한 10개 법안이 계류돼 있다. 지방노동법원을 설치해 노동 민사·형사·행정·비송 등 범위로 사건을 전속관할하고, 근로자 및 사용자 측 참심관을 둬 재판은 물론 평의와 평결에 참여토록 하는 참심제가 골자다. 현재 정부는 노사문제 해결과 관련해선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관할 지방노동위원회에 분쟁 조정을 맡기고, 이에 불복하면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노동위원회 제도를 두고 있다. 물론 중노위의 재심 결과에 불복하면 행정법원 소제기를 시작으로 보통의 사법절차를 거친다. 통계상으론 노동문제의 대략 95%가 노동위에서 해결되고 5%정도가 소송까지 간다고 집계된다.
 
빌려준 1000만원과 체불임금 1000만원, 질적으로 달라
 
그러나 노동사건이 법원에 가도 노동법 보다는 민법에 익숙한 법관들에게 노동문제의 특수성을 고려받기 어렵다는 게 이날 발제를 맡은 신인수 변호사(법무법인 여는)의 주장이다. 신 변호사는 서두에서 과거 인천지법·수원지법 판사 재직 시절을 회고하며 판사들에게 (민사) 사건은 대여금투자금으로 갈린다. 돈을 빌려준 사람 입장에선 대여금이고, 돈을 받은 사람 입장에선 일종의 투자받은 돈인 셈인데, 판사들은 노동사건도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면서 그런데 생각해보면 대여금 1000만원과 임금 1000만원은 질적으로 다르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1000만원을 빌려줄 형편이 되는 사람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의 대여금과 체불 임금 청구 민사소송에서 일가족의 생계비일 수도 있는 1000만원이 법관에겐 같은 ‘1000만원으로 인식될 뿐이라는 지적이다.
 
신 변호사는 소유권 보장·계약 자유·과실책임주의로 상징되는 근대 시민법 체계에서, 노동자는 소유할 것이 없고, 계약 자유의 미명 아래 저임금·장시간 노동이 방치됐다면서 그 해결책으로 노동법이 등장했지만, 우리 법원의 주류적인 판결들은 여전히 시민법의 잣대로 노동사건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늘어나는 노사분쟁을 포괄하는 사법기관이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병욱 변호사는 부당해고는 지노위회, 안 되면 민사법원. 임금체불은 민사법원이나 고용노동청, 부당노동행위와 노동쟁의는 지노위, 단체교섭은 법원, 최근 직장 내 차별 문제는 국가인권위원회, 내부고발은 국민권익위원회 등등 노동사건은 매우 다양해지고 있는데, 일관성 있는 절차를 담당할 사법기관이 없다면서 그러다보니 시간이 아쉬운 노동자는 우왕좌왕하다 권리구제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노동법원 설립 토론회가 진행되는 모습. 사진/김병욱 의원실 제공
 
 
노동문제 이해는 전문법원 아니라도 전체 법관 몫
 
반면 이희준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노동법원의 기능은 통상 노동현실을 아는 판사의 재판, 즉 법관 전문화와 노동현실을 아는 국민의 참여, 즉 참심 재판으로 집약되는데, 노동사건이 아니라도 각종 분쟁에 노동문제가 개입되기도 하고 노동사건의 관할을 정할 때도 실체법적 판단이 들어가는 현실에서 전문법관 양성 뿐 아니라 노동문제에 대한 법관 전체의 이해를 넓혀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심 재판에 대해서는 아직 위헌 논란이 분분한 점을 지적했다.
 
노동위원회 제도를 보완하면 충분하다는 의견 역시 제기됐다. 김영완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일반산업현장 근로자 등 다수 노동자들에겐 아직 변호사를 선임해 법원에 접근하는 것보다는 노동위를 통한 이의제기가 훨씬 쉽고 간편해 접근성에서 앞서고, 지노위와 중노위를 합쳐 6개월 안에 사안을 종결토록 해 신속성도 있으며, 시민법과 노동법의 간격이 좁혀지고 있다고 했다. 강승헌 고용노동부 사무관(변호사)지난해 사법연감을 보면 사건 처리 기간이 평균 1293·2255·3147일이 걸리는데, 지금 법원 시스템의 획기적 개선이 힘든 상황이라며 우리가 50여년 이상 운영해 온 노동위 제도는 신속성도 있고, 무료 공인노무사를 두고 있어 경제성도 있다면서 현 제도를 보완·운영해나가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노동법원도입한 독··vs. ‘일반법원형··
 
해외 사례도 다양하다.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 유럽 다수 국가들은 전문법원으로서 노동법원을 설치해 운영하고, 미국과 일본은 일반법원에서 처리한다. 다만 일본은 우리 노동위와 유사한 기능의 노동심판소를 사법부 내에 두고 있다. 한인상 국회 입법조사관은 각국의 제도를 소개한 뒤 노동분쟁의 양태와 규범, 사법체계와 노사관계 현실은 국가마다 다르다고 결론 지었다. 한 조사관은 “18·19대 때부터도 노동법안 관련 법안들이 발의됐는데 회의록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상정 이후 전혀 논의 시작 자체가 이뤄지지 못한 것이라며 진지한 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서윤 기자 sabiduri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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