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의 만인보로 보는 일상사 27화)교복과 함께 한 당신의 한 시절
"까만 학생복 윗도리 / 단추 다섯 개"
입력 : 2019-06-03 00:00:00 수정 : 2019-06-03 00:00:00
한국 교복의 역사는 제법 길다. 그만큼 말도 많았고 변화도 거듭되었다. 지난 몇 년간 교복 시장은 4대 브랜드에 의해 점유되었고 비싼 교복 가격을 잡기 위해 학부모 교복 공동구매와 학교 주관 구매제가 시행되기도 했다. 교복 가격의 인하와 교복 시장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2016년 초 공정거래위원회는 교복 디자인의 표준화를 제안했다. 사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들도 작은 규모 학교의 교복 생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표준교복 도입을 추진해 왔다. 2013년 충청북도에서 처음 시행된 표준교복은 이후 강원도와 부산에도 도입되었지만 이를 채택한 학교들은 많지 않은 실정이다.  
 
김병우 충북도교육청 교육감이 새로 제작된 표준교복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교복사의 굴곡
몇 년 전 젊은이들 사이에서 부모님 시절의 옛날 교복을 입어보고 양은도시락을 흔들어 먹어보는 체험이 유행처럼 번졌던 적이 있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본 검은색 상·하의 교복에 검은색 모자를 삐딱하게 쓰거나, 빳빳하게 풀 먹인 흰 칼라에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검은 치마를 입고 기념사진을 찍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그들에게는 부모 세대의 추억을 공유하는 흥미로운 놀이문화가 된 것이다.
 
한반도에서 교복의 역사를 본다면 성균관 유생들의 복장부터 논해야 하겠지만, 근대적 의미에서의 교복은 1880년대 근대학교들이 설립되면서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1886년 이화학당이 설립되었을 때 다홍색 무명치마저고리로 시작한 이 학당의 교복은 얼마 후 흰색 저고리 검정 치마로 바뀌었다. 한편, 1907년 최초로 서양식 교복을 도입했던 숙명여학교(당시 이름은 명신여학교)는 자주색 원피스와 분홍색 보닛을 썼다가 1910년 자주색 치마저고리의 한복으로 대체되기도 했다. 1920년대의 여학생복은 한복이고 남학생복은 양복이었는데, 1930년대로 들어서면서 일제가 여학생복도 모두 양장으로 바꾸게 된다.
 
일제 강점기 한반도에서는 세 가지 종류의 의복이 통제되었다. 첫째는 흰옷이고, 둘째는 학생·교사·공무원들의 제복, 셋째는 국민복 또는 노동복이다. 일제는 위생을 명분으로 조선인들의 백의 착용을 금지하고 색의를 강요했으며, 흰옷을 입은 조선인들이 길을 걸어가면 먹물을 끼얹고 흰옷 입은 사람의 관청 출입을 막았다.
 
반면, 일제가 고안해 내고 착용을 강요했던 제복과 국민복은 전시체제와 관련이 있었다. 1940년, 태평양전쟁으로 인해 전시물자통제령이 내려져 있던 일본에서는 국민의 의복을 합리화·간소화 한다는 목적으로 ‘국민복령’이 제정되었고, 이에 따라 본토, 식민지 할 것 없이 남성들은 국민복을 착용했다. 남학생들은 전쟁체제에 적합한―이른바 ‘국방색’이라 불리던―카키색 제복을 입어야 했다. 여학생들은 1920년대의 한복에서 30년대의 서양식 의복(특히 일본 여학생들의 교복인 세일러복의 도입)으로, 그리고 40년대에는 다시 일명 ‘몸뻬’(일본어)라 불리는 노동복 바지로 교복을 대신했다. 군복과 비슷하게 만들어진 국민복은 1942년 이후 남학생들의 교복으로 사용되었고, 총력전 시기에 국민복을 입고 전투에 참가한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군복의 대체 의복이기도 했다. 
 
추억의 검정 교복과 교련복을 입은 젊은이들. 사진/뉴시스
 
식민지 잔재의 교복으로 독재의 세월에 맞서다
 
1945년 해방을 맞으면서 학교별로 특성을 살린 교복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1968년 문교부의 중학교 평준화시책이 실시되면서 중학생 교복은 흰색 윙칼라(여학생복)와 검정색 스탠드칼라(남학생복), 감색 또는 검정색 상·하의(여름에는 흰색 상의)로 통일되어 1983년 교복 자율화 조치가 일어날 때까지 착용되었다. 식민지시기부터 1960년~1970년대 그리고 1980년대 초까지 볼 수 있었던 <말죽거리 잔혹사>식 한국 남학생 교복의 원류는 일본에서 건너온 일본학생들의 교복, 이른바 ‘가쿠란’이었다. 
 
까마귀떼 자오록 내려앉는다 보리밭두렁
까만 학생복 윗도리
단추 다섯 개
누가 넘어지면
으라차차
입속의 흰 이빨 가지런했다
이런 고교생들
이런 고교생들 혁명의 한쪽 맡았다

1960년 4월혁명은 4월에 시작하지 않았다
< … >
4월혁명의 저 근원

해방의 시대
전란의 시대
독재의 시대
관제시위 어용시위에 길들여진 소학생들 중학생들

이제는
반독재의 시위
반부정부패의 시위로 바뀌어
교문을 넘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까마귀떼 날아올랐다
검은 모자
검은 제복
검은 운동화로 우르르 쏟아져나왔다

< … >
(‘고교생들’, 21권)
 
1960년 4월 19일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온 학생들은 교복 차림이었다. 이승만 정권의 관제시위로 단련된 학생들이, 식민지시대의 유산인 군복스타일의 까만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그 식민지 부일세력으로 재편된 독재 권력에 맞서, 보리밭을 날아오르는 까마귀떼처럼 스스로의 의지로 비상한 것이다.
 
교복자율화는 짧게 끝나 1986년 교복이 부활되었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교복의 디자인이 다양해졌는데, 이는 대중문화의 변혁기라 할 만한 90년대의 특성과도 연관이 있다 하겠다. 90년대의 청소년들은 획일적인 교복 속에서 획일적인 사고를 강요받던 시대를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1961년 수해복구에 나선 교복입은 학생들 모습. 사진/뉴시스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오는 교복 문제들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교복문화와 교복시장의 모습도 많이 변모했다. 새롭게 야기된 교복 관련 문제들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종종 올라오는 것도 익숙한 광경이다. 게시판에 학생들이 올리는 건의사항은 불편한 교복을 생활복이나 체육복으로 대체해 줄 것, 품이 작은 웃옷(학생들 사이에서 일명 일본어 ‘마이’로 불리는 옷)의 부직포 같은 재질 개선과 크기 개선, 길이가 짧아서 불편한 치마 대신 편한 반바지 착용을 허용해 줄 것, 웃옷 위에 겨울 외투를 입는 규정으로 인한 비활동성을 개선 즉 웃옷 없이 패딩을 입어 보온과 활동성을 확보하게 해달라는 요청 등등, 여름에는 더 덥고 겨울에는 더 추운 교복, 움직이기 불편한 교복, 성차별적 요소를 안고 있는 교복의 문제점들이 죽 열거되어 있다.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교복 폐지를 요청하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2000년대의 학생들이 스스로 교복을 작고 꽉 끼게 줄여 입는 바람에 교복 생산자들도 점차 그렇게 바꾸어 생산해 온 것이 아니냐고 비판한다. 물론 어느 시대건, 좀 더 멋지게 보이고 싶은 학생들의 자연스러운 욕구가 있어 왔고 이는 학생들 개인의 특성에 따라 교복에 손을 대게 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누군가는 상의의 단추를 풀고 다녔고 또 누군가는 치마의 길이와 바지의 품을 줄였다. 
 
군산중학교 취주악대장 이길혁이
항상 교복 윗단추 두 개는 끌러두는 이길혁이
라꿈빠르씨따를 잘 불러
별명이 라꿈빠르씨따
때론 진실이 모자라고 과장이 넘쳐
누가 모르랴
처음 만난 여학생도 대번에 알아차리고 떠난다
늘 사랑은 짝사랑이요
늘 사랑했다는 말
여자 많다는 말 거짓말이라

그래도 지휘단에 올라서면
지휘봉 들면
그 무아지경에 온몸 푸르러
온몸 푸르러

< … >
(‘라꿈빠르씨따’, 7권)
 
그러나 교복으로 통제된 개성을 그 정도 분출한다고 해서 무슨 큰 문제가 있을까. 문제는 S라인을 강조해 광고를 하는 교복생산업체이고 TV에 나오는 아이돌들에게 교복과 유사한 의상을 입혀 섹시댄스를 추게 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다. 일본의 학원물 만화에 나오던 교복 형태가 한국의 TV드라마에 등장해 확산된 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 안 그래도 짧은 교복 치마가 앉으면 더더욱 미니스커트로 깡총 올라가니 편하게 수업을 받지 못해 여학생들을 위한 ‘책상 앞 가림막’까지 출현한 실정이다. 라인이 들어간 아동복 사이즈의 웃옷은 너무 짧아서 팔을 들기도 어렵다는 하소연이 반복된다.
 
교복 치마 밑에 체육복 바지를 받쳐 입은 여주인공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것도 현실을 반영한 것이지만, 작금의 현실에서는 여자교복이 불편해 남자교복을 입게 해달라는 요청까지 보인다. 교복 치마건 교복 바지건 남녀학생들이 자유롭게 선택해 입게 하고, 나아가 교복이건 사복이건 자유롭게 선택해 입고 등하교를 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몸에 꼭 끼게 입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헐렁하게 입고 싶은 사람은 또 그렇게, 각자의 취향대로 개성 있게 입는 유연함이 우리 사회에 유연한 사고방식을 확장시키지 않을까. 비싸고 질 나쁜 교복에 온갖 불필요한 규정으로 학생들을 옥죄기 전에 그 규정을 요구하는 어른들이 한번 이 교복들을 체험해 보는 새로운 ‘시간여행’도 괜찮을 법 싶다.
 
지난 5월23일 세종시 교육청에서 열린 전국 최초 '편한 교복 패션쇼'. 학생들이 세종시 4개 중고교 교복을 입고 패션쇼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성현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역사학 박사(percepti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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