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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현의 만인보로 보는 일상사-20화)기원이 담긴 풍경
“서낭당에 돌 던져 / 가는 길 무사하기를 빈다”
2019-02-18 06:00:00 2019-02-18 06:00:00
이른바 ‘짝퉁 조기’로 푸대접 받던 제주산 부세가 그 황금빛 외양 덕분에 중국 상인들에게 몇 년째 인기를 끌고 있다. 황금빛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이 그들의 설인 춘절 차례상에 이 생선을 올리면 복이 온다고 믿는 때문이라 한다. 제주시 한림수협이 밝힌 2019년 1월 부세 경매량은 2천801상자이고 판매 금액은 28억6천8백만원인데, 2018년 같은 기간보다 두 배 가량 판매 금액이 증가했다고 하니, 몇 년 사이에 가격을 폭등시킨 중국 상인들의 ‘큰손’이 놀라운 한편, 제주 어민들에게는 반가운 일이 될 듯하다.
 
부적문화와 기대심리
 
연말연초 여기저기서 ‘2019년은 황금돼지해’라는 표현이 쏟아져 나왔다. 10간(干)과 12지(支)를 조합한 올해가 기해(己亥)년 돼지띠(亥)이고 오행의 원리에 따라 기(己)는 토(土)의 기운 즉 노란색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는데, 우주만물의 현상 변화를 설명하기 위한 추상적인 철학적 원리가 어느덧 구체적인 ‘황금돼지’로 물화(物化)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돼지만으로도 재물복을 떠올리는데, 하물며 ‘황금’이랴. 오행의 본뜻과는 상관없이, 시장은 돼지를 황금빛으로 둔갑시켜 부를 기대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자극할 각종 상품들을 내놓을 태세이다. 2007년 정해(丁亥)년이 작은 불(陰火)의 성질을 띤 돼지해로 정(丁)은 오행상 붉은색이었지만, 그때도 황금돼지해라 일컬어졌던 이유 역시 재물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심리를 이용하려는 상술이 한 측면을 차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사람들이 돼지를 재물복의 상징으로 보고 기대와 희망을 건다고 해서 나쁠 것도 없고 나무랄 일도 아니다. 팍팍한 일상 속에서 복권 한 장 사보려는 서민들의 기대심리와 작은 희망을 어찌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복과 행운이 기대되는 해라서 출산율이 올라갔던 2007년처럼, 같은 이유로 2019년의 출산율이 올라간다면 한국사회의 저출산 문제에도―문제의 궁극적 해결에는 전혀 상관없지만―나름 일시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2019년 기해년'을 맞아 열린 황금돼지 저금통 나눠주기 행사. 대전 선영어린이집 아이들이 황금돼지 저금통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와 비슷한 기대심리로, 액운으로부터 자신이나 가족을 보호하고 복을 부르려는 마음이 잘 반영된 것이 부적이다. 일종의 수호신 같은 대상에 의지해 현실 속 불안심리를 극복하려는 인간들의 의지가 부적에 담겨 있다. 부적은 그 주술성으로 인해 종종 단순히 미신적 요소로 취급되기도 하지만, 실상은 애니미즘·토테미즘·샤머니즘에서 불교·도교·유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소들이 얽혀 있고 설화와 민담이 스며있는데다가, 암호 같은 글씨와 그림, 문양들이 갖는 상징성과 예술성까지, 복합적인 문화적 함의를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대문에 ‘입춘대길’을 써 붙이고 중국인들이 그들의 선호 색인 빨간색에 ‘복’(福)자를 써 거꾸로 붙이는 것도 같은 염원이다. 또한, 팥으로 악귀를 물리치는 것이나 새집에 이사 들어갈 때 박을 깨서 귀신이 놀라 도망가게 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벼락 맞은 대추나무의 영험성을 믿고 염주로 만들거나 범어로 된 진언이 적힌 부적을 몸에 지니는 것은 기복신앙이 뒤섞인 불교의 특성이고, 충효사상·도덕심을 고취하는 시구를 적은 부적 즉 도덕부를 지니는 것은 유교의 영향이다.
 
사실 이와 유사한 관습, 금기, 민간신앙적 요소들은 어느 나라에나 있어온 문화이고 서양에도 부적인 애뮬릿(amulet)이 있음을 상기할 수 있다. 불교의 염주처럼 기도의 도구인 가톨릭의 묵주도, 몸에 지니는 행운의 마스코트도, 특정한 종교적 입장을 떠나서 볼 때 일종의 부적과 같은 위안을 주는 것이다. 구약 성경의 출애굽 사건 당시, 여호와가 애굽에 내린 열 번째 재앙인 장자의 죽음을 피할 수 있도록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인들에게 알려준 방법, 즉 흠 없는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라는 것 역시 일종의 부적과 같은 역할로 해석할 수 있다.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 관계자들이 오촌댁 대문에 입춘대길(立春大吉)과 건양다경(建陽多慶)이 쓰인 입춘방을 붙이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돌 하나에 염원 하나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를 지날 즈음 만나게 되는 서낭당의 돌무더기는 사람들의 염원을 보여준다. 보통 돌무더기만 있거나 나무와 함께(나무 아래에) 있는 경우는 개인적 기원이 행해지는 곳으로 여기고, 당집이 있는 경우는 마을의 수호신을 섬기는 마을공동체의 제당(祭堂)으로 여기게 된다. 서낭당의 명칭은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달라 선왕당(仙王堂), 국사당(國師堂), 국수당, 국시당, 천왕당, 서황 등으로 불린다. ‘서낭’의 어원 역시 설이 분분해 산신신앙과 관련된 산왕(山王), 상왕(上王), 천신신앙과 관련된 천왕(天王) 등이 있는데, 산신신앙이 천신신앙에서 연유했다는 점에서 천왕당으로 불리기도 한다.
 
서낭당이 중국의 성황(城隍)신앙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으나, ‘성황’을 적에 대한 방비로 쌓은 성벽과 성 주위를 둘러싼 못(해자, 垓子)으로 이해할 때, 산신·천신신앙에 토대한 민중의 ‘서낭당’을―게다가 북방 유목민족에게서도 거의 같은 돌무더기가 보인다는 점에서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이 민간신앙을―굳이 ‘성황당’이라는 한자를 차용해 표현하는 것은 식자층의 사대주의 내지 모화사상(慕華思想)에 기인한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국사당’으로 불린 것도 민간에서의 서낭보다 국행(國行)서낭과 호국(護國)의 의미가 가미된 것으로 볼 때 중국식 ‘성황’의 맥락이라 하겠다.
 
서낭당에 돌 던져
가는 길 무사하기를 빈다
아버지한테 배운 것도 아닌데
네살만 되면 돌 던진다
서낭당에 돌 던져
미운 사람 잘못되기를 빈다
손해 보기를 빈다
그러나 미운 사람 죽기를 빌지 않는다
여기까지가
농사꾼의 묵은 저주이다
아무리 모진 사람도
여기까지가 저주이다
그런데 일제말
배 곯을 때
눈 뒤집힌 사람들
걸핏하면 돌 하나 던져
부자 아무개 자식 죽게 해달라고
부자 아무개 애비 고종명하지 말게 해달라고
빌어 마지않았다
서낭당 돌무더기 자꾸 쌓였다
그 비는 것
박대곤이 여편네가
부잣집에 고자질해서
빈 사람 수동이 녀석
부잣집 카네오까네 바깥마당에 불려가서
그 집 머슴에게
그 집 큰아들 카네오까 타로오에게
몽둥이찜질당하였다
그 뒤 수동이 녀석
한밤중 부잣집 카네오까네 집에 돌 던졌다
서낭당에 던지는 대신
던지며 비는 대신
귀신 형용으로
부잣집 안방 창호지 뚫었다
그러다가 주재소에 잡혀갔다
< … >
(‘서낭당’, 3권)
 
경주 서낭당 밑에 쌓여 있는 돌무더기. 사진/뉴시스
 
몽골의 ‘어워(ovoo)’ 그리고 석전(石戰)
 
몽골의 어워는 우리의 서낭당과 매우 흡사한데, 돌무더기 위에 나무기둥이 세워져 있다. 이 나무기둥을 오색천이 휘감고 있는데 주로 파란색이 많고 이 천은 ‘하닥(khadag)’이라 불린다. 이것이 티벳인에게 가면 주로 흰색 스카프인 ‘하타(khata)’가 되고 네팔인에게 가면 ‘하다(khada)’가 된다. 몽골인은 불교도도 기독교도도 어워를 지날 때―자신의 종교와 내적 충돌 없이―시계방향으로 돌무더기를 세 번 돌며 기도하고 소원을 빈다. 이 몽골식 서낭당인 어워는 몽골뿐 아니라 시베리아와 유라시아 대륙 북부 곳곳에서 발견된다. 여기에도 하늘과 사람을 이어주는 샤먼이 있고 하늘숭배사상이 있다. 우리의 서낭당이 이 북방 유목민족의 어워와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직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몽골 지배기의 영향일 수 있으리라. 원뿔형 돌무더기 위에 나무기둥 혹은 나무가 서 있고 오색천이 매달려 있는 어워와 서낭당은 한 마을의 수호신이자 지역의 경계표지이며 안녕과 평안을 비는 개인의 기원이 담긴 기도처이고 천·지·인이 만나는 신성한 장소였던 것이다. 
 
인류의 문화가 이리저리 옮겨가고 뒤섞이고 융합되는 세계사 속에서 한반도의 서낭신앙을 두고 자생설이냐 전래설이냐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여기저기서 발견되는 유사한 문화적 양상들 사이의 연관성과 상호작용의 역사를 탐구하고 조명하는 것이 더 가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서낭당에 얽힌 많은 이야기들 중, 다음의 시가 보여주듯이, 그 유래를 석전 전설에서 찾는 입장이 있어 흥미롭다. 
 
한양 서대문 밖 만리고개
그 고개야
으레 석전 놀이터
정월 대보름 지나고 나서
찬바람 치는 날
아현패와 
삼문패가
돌팔매 던지며 달려들어
아현패가 이기면
아현 쪽 풍년이 들고
삼문패가 이기면
삼문 쪽 동쪽 벌에 풍년 들지

< … >

옛 고구려
물속에 들어가
물속 돌 주워 던져
상대방을 물리치는 고된 석전놀이
조선 세종조에도
물불 안 가리는 석전군 특대를 두어
석전으로
북쪽 야인을 쫓아낸 적 있다

마을마다 서낭당 있지
서낭당은
마을 지키는 석전터
돌 쌓아놓은
석전터라

스르르 싸움 없는 세월 되놈 왜놈의 세월
오면가면
길 떠나는 이
돌 하나 보태어
비는 곳이 되어오더라 서낭당이라
싸우는 곳이
설설 손 비벼
비는 고개 서낭당이나 되고 말더라
그 서낭당에
돌 대신
가랑잎들 내려오더라

행년홀홀(行年忽忽) 해 가더라 해 오더라
(‘만리고개’, 29권) 
 
박성현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역사학 박사(percepti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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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 대학 지위는 성균관대가, 최고 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 원)이 승계하였습니다. http://blog.daum.net/macmaca/2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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