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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한 전 대법관 "사법행정권 행사, 부적절해도 곧바로 형사범죄 아냐"
대법관들 모두 '공소사실 부인'…양승태 "픽션 같은 얘기, 공소 자체가 부적법"
2019-05-29 12:38:47 2019-05-29 12:38:47
[뉴스토마토 최서윤 기자] 사법농단혐의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박병대 전 대법관과 함께 기소된 고영한 전 대법관이 29일 첫 재판에서 법관의 재판과 달리 사법행정 담당자들은 조직의 위상을 강화하고 조직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정책과 목표를 설정하고 가능한 목표를 선택할 폭넓은 재량을 가지고 있다사후 보기에 다소 부당하거나 적절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해도 곧바로 형사범죄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고 전 대법관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재판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1회 공판기일에 피고인으로 출석해 모두진술에서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 모두 부인한 뒤 이 같은 의견을 밝혔다. 고 전 대법관은 양승태 대법원 시절 후반부인 20162~20175월 법원행정처장을 지냈다.
 
고 전 대법관은 행정처장 근무 당시 오로지 국민의 신뢰가 없으면 사법부가 존립할 수 없다는 무신불립의 신념 아래 우리 사법부가 어떻게 신뢰를 받을 것인가에 사법행정의 주안점을 뒀다면서 공소사실을 보면 그토록 노심초사하면서 직무를 수행한 부분들이 모두 직권 남용한 것이라고 기재돼있다. 법률해석을 둘러싸고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간 존재하는 헌법적 긴장상태를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할지 고민하며 재판에 반영한 것이 반헌법적으로 묘사돼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행정처장 시절 벌어진 일이라며 관련된 일을 제가 직접 지시하고 공모했다고 단정하고, 보다 근본적으로 피고인이 관여한 사법행정 운용과 관행이 위법 부당해 남용에 해당하고 이는 곧바로 형법상 직권남용죄를 구성한다고 전제하고 있다독일, 스위스, 일본, 미국도 징계 등 행정제재를 넘어 직권남용이란 형사 범죄로 기소되고 처벌한 사실을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상 유례없는 재판에서 사법행정상 재량권의 의미와 한계, 직권남용의 인식 등에 대한 활발한 논의의 장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만 죄형법정주의와 무죄추정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을 것이라며 부디 재판장과 두 분 판사님도 혹여 그간 일방적 시각에서 특정 프레임이 씌워진 이 사건 언론 보도를 접하며 갖게 됐을지 모를 선입견을 거둬내시고 간절한 소리에 귀 기울여 주시고, 과연 형사범죄에 이를 정도로 권한을 남용해 후배 법관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시킨 건지 형사법에 따라 판단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날 오전 재판은 우선 검찰의 공소사실과 죄명, 적용법조에 대한 모두진술을 듣고, 이에 대한 피고인들의 공소사실 인정여부 모두진술을 듣는 것까지 진행했다. 오후엔 변호인 모두진술에 이어 피고인과 변호인의 의견 진술이 보다 자세히 이어질 예정이다.
 
양 전 원장은 고 전 대법관의 진술에 앞서 제가 이야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아니라 다시 기회 주신다는 걸로 이해를 하고, 간단하게 끝내겠다그 모든 건 근거가 없는 것이고 어떤 건 소셜의 픽션 같은 얘기다. 모든 것을 부인하고 그에 앞서 이 공소 자체가 부적법하다. 자세한 건 나중에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박 전 대법관 역시 같은 취지로 공소사실만 부인했다.
 
양 전 원장은 20119~20179월 제15대 대법원장을, 박 전 대법관은 20142~20162월 법원행정처장을 역임했다.
 
양 전 원장 등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공모, 상고법원 도입 등 사법부 이익을 위해 행정부·입법부와 결탁해 재판 거래를 하고 행정처 운영에 이견을 갖는 법관들에 대해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는 등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20173월 사법농단 관련 문건 작성을 거부하며 사직서를 제출한 이탄희 판사 관련 언론 보도 후 대대적인 수사 끝에 약 2년 만인 지난 2월 양 전 원장과 두 전 대법관들을 재판에 넘겼다.
 
 
 
양승태(왼쪽부터)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서윤 기자 sabiduri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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