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모의세상읽기)인류의 영역을 넓히는 힘
입력 : 2019-05-10 06:00:00 수정 : 2019-05-10 06:00:00
최고의 상상가(想像家) 한 명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쥘 베른을 말한다. 뭔가 새로운 것을 상상하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물리학과 생물학의 지식에서 출발하려는 버릇이 있는데 쥘 베른은 현대 생물학과 물리학의 세례를 받지 못한 사람이다. 그는 런던의 리젠트파크에 최고의 공공 동물원이 설립된 해인 1828년에 태어나서 물리학의 기적의 해라고 불리던 1905년에 사망했다. 그런데도 그가 최고의 상상가가 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누구나 재밌는 발상을 하지만 아무나 경계를 뛰어 넘지는 못한다. 상식을 토대로 하고 지식의 최전선의 안쪽에 머무르고 만다. 세상을 바꾸려면 경계를 뛰어넘어 전선을 바꿔야 한다. 쥘 베른은 바로 경계를 넘은 사람이다. '해저 2만 리'(1870)에는 무한한 바다가, '지구 속 여행'(1864)에는 무한한 땅이, 그리고 '지구에서 달까지'(1865)와 '달세계 일주'(1865)에는 무한한 하늘이 있다.
 
최초의 물속 여행은 '해저 2만 리' 이전에 이미 실현되었다. 1778년 미국 독립전쟁 때 영국 군함을 공격한 달걀 모양의 잠수정 터틀(Turtle)과 1863년 프랑스 해군 잠수함 플론져(Plongeur)가 진수했다. 터틀은 사람의 힘으로 작동한 반면, 플론져는 압축 공기를 동력으로 사용했다. 이것이 당시 기술의 전선이었으며 쥘 베른의 상상은 여기에서 시작했다. 그는 무한한 에너지를 사용하는 잠수함을 상상했다. 1954년 미국은 세계 최초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을 진수시켰다. 그 잠수함의 이름은 'SSN-571 노틸러스'다. '해저 2만 리'의 노틸러스 호가 실현된 것이다. 
 
땅속으로의 여행은 어떨까? 땅속으로 여행하기 위해서는 그곳에 생명이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땅속에는 생명이 살 수 있는 공간이 없다. 공기와 물이 있기는커녕 뜨거운 용암이 흐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쥘 베른의 생각은 달랐다. 쥘 베른은 '지구 공동(空洞)설'이라는 가설을 내놓는다. 땅속은 텅 비어 있고 생각처럼 뜨겁지 않다는 것이다. 만약 지구 내부로 갈수록 뜨거워진다면 지구는 이미 폭발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만약 땅속에 빈 공간이 있다면 거기에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어떻게 갈 것인가? 쥘 베른의 상상은 '지구 속 여행'을 낳았다. 
 
지구 속이 비어 있다는 쥘 베른의 가설은 틀렸다. 당시 지식 세계의 한계였다. "난 성냥과 철도와 전차와 가스, 전기, 전보, 전화 그리고 축음기가 태어나는 것을 보았다"라고 쥘 베른은 흥분해 말했다. 성냥과 전화기에 깜짝 놀라는 시대였던 것이다. 그의 상상력을 낮게 보아서는 안 된다. 그는 당시 과학의 전선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경계를 넘었다. 문제는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상상력이다. 쥘 베른의 19세기 생각이 21세기에도 통해서 영화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2008)가 히트를 쳤다. 우리는 현대 과학의 전선을 돌파하는 상상은커녕 한참 뒤에서 공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쥘 베른이 바다보다 먼저 자신의 세계로 만든 곳이 있다. 달이 바로 그곳이다. 쥘 베른은 지구와 달 사이의 경계를 넘어 사람들을 달에 데려가려고 했다. 달은 이제 전설의 고향이 아니라 인간의 영역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다. 자동차가 대중화되고 비행기가 발명되기 전까지 최첨단 교통수단은 배였다. 쥘 베른 시대에 보고된 UFO들은 모두 배처럼 생겼다. 그런데 쥘 베른은 지금과 같은 로켓 모습을 상상해냈다. 
 
SF는 '과학소설'이지 '공상(空想)과학소설'이 아니다. 하지만 난 공상과학소설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철저한 과학소설이 뭐가 재밌겠는가? 뭔가 새로운 생각을 담고 있어야 재밌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공상이 되어서는 재미가 없다.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상상을 해야 한다.
 
상상은 인류의 영역을 넓히는 힘이다. 영역 확장은 전선에서 일어난다. 전선에 한참 못 미치는 곳에서 하는 생각은 상상이 아니다. 그것은 잘해야 학습이다. 반대로 현대 과학에 발을 딛지 않고 전선 너머에서 하는 생각은 막연한 공상일 뿐이다. 상상이란 현대 과학의 최전선에서 새로운 생각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상상을 하려면 과학의 최전선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상상을 위해서는 꼭 과학자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쥘 베른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과학에 특별히 열광하지 않습니다. 과학 공부를 한 적도 없고 실험 같은 것은 더더군다나 없지요. (…) 하지만 내가 엄청난 독서광이라는 건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일단 지식의 전선을 넓히자.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penguin1004@m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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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나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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