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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영화 ‘생일’, 그날 이후 견디고 버텨온 삶의 얼굴
‘세월호 참사’ 속 실제 유가족들의 삶 조명한 첫 번째 영화
남은 가족들 각각의 상처 깊이, ‘생일’ 통해 극복하는 고통
2019-03-21 00:00:00 2019-03-21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2014 4 16. 여객선 세월호를 탄 승객 중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 목숨을 잃은 승객 중 대부분은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다. 수학 여행을 가던 중 믿을 수 없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리고 5년이 지났다. 아직도 우리는 ‘2014 4 16을 절대 잊지 못한다. 전 국민에게 이 날은 잊을 수 없는 날이 됐다. 누군가에겐 고통이다. 누군가에겐 슬픔이다. 누군가에겐 아픔이다. 몰상식하고 몰지각한 누군가에겐 그 날이 기회였다. 그보다 더한 누군가에겐 제발 빨리 잊혀졌으면 하는 날이기도 했다. 그렇게 그 날은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트린 날이다. 그리고 충격은 진도 앞바다 깊은 바다 속에 가라 앉은 진실로 아직도 침몰한 상태다.
 
 
 
영화 생일은 그 날 이후 남겨진 삶에 주목한다. 그 날을 기억하는 수 많은 누군가는 아직도 우리 주변에 함께 하고 있다. 304명의 죽음은 어떤 식으로든 지금도 존재한다. 영화는 그들의 다양한 기억 속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힘들고 가장 아프지만 결국 견뎌야 하는 사람들, 바로 유가족들의 삶을 주목한다. 남은 가족들은 견딜 수 있고 버틸 수 있어서 버티는 게 아니다. 견뎌야 하기에 견디고 있고 버텨야 하기에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남은 삶이다.
 
시작과 함께 한 남자가 돌아온다. 이 남자는 주소가 적힌 종이를 들고 힘들게 집을 찾아간다. 어둑한 한 밤이다. 벨을 누른다. 문은 열리지 않는다. 집안에선 인터폰을 통해 이 남자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한 여자가 있다. 남자는 정일’(설경구) 여자는 순남’(전도연). 두 사람은 부부다. 순남에게 조용히 다가오는 어린 소녀 예솔’(김보민). 두 사람의 둘째 딸이다. 영화 생일은 그렇게 어색한 만남으로 시작한다.
 
영화 '생일' 스틸. 사진/NEW
 
돌아가는 세탁기, 물끄러미 밖을 바라보며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순남. 누구를 기억하는지 누구를 기다리는지 모를 표정이다. 감정을 읽기 힘든 표정이다. 슬픔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가끔씩 창문 너머로 들리는 동네 남자 아이들의 장난치는 소리. 순남은 그 모습을 지긋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이내 갑자기 집안 소파로 재빨리 뛰어와 몸을 누인다. 도어락 비밀번호가 눌리고 누군가 들어와 순남에게 와락 안긴다. “순남씨 나야라며 안기는 멀쑥한 차림의 남자. 순남의 큰 아들 수호’(윤찬영). 하지만 수호는 죽었다.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었다. 순남은 그렇게 아직도 아들을 떠나 보내지 못하고 있다. 순남의 꿈에서조차 수호는 그렇게 엄마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 수호를 순남은 아직 떠나 보낼 수 없다. 아들이다. 수호는. 그렇게 순남의 시간은 2014 4 16일에서 멈춰 있었다. 휴대폰 메신저 속 수호와의 대화도 멈춰 있다. 사고 직전 아들이 남긴 메시지 옆에 남아 있는 숫자 ‘1’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채. 그 지워지지 않은 숫자처럼 수호의 방도 그대로다. 때때로 뜬금없이 켜지는 현관의 센서 조명등도 고칠 수 없다. 혹시 수호가 온 것은 아닐까. 수호를 느끼고 싶다. 숨이 넘어갈 듯한 낡은 승용차도 바꾸지 못하겠다. 수호의 채취가 묻어 있는 자리가 선명하다.
 
영화 '생일' 스틸. 사진/NEW
 
정일은 그렇게 돌아왔다. 하지만 순남 예솔과 함께 할 수 없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정일은 미안해 한다. 아들의 죽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순남과 달리 차분하고 조금은 냉정하다. 냉정한 척 하는 것 같다. 그래도 가장이고 남자이니. 현실을 위해 남아 있는 가족을 챙겨야 한다. 하지만 순남과 예솔은 벽을 쌓고 있다. 정일을 받아 들일 수 없단 벽이다. 정일에게 조용히 내미는 이혼서류. 순남은 정일을 용서할 수 없는 것 같다. 아들 수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고 싶은듯싶다. 아니면 수호의 죽음 이후 자신이 겪었고 겪는 극한의 고통을 나누지 못한 서운함 때문일까. 순남은 정일에게 차갑다. 정일은 미안해 할 뿐이다. 그리고 주변을 맴돌며 그 벽을 조금씩 허물어 가고 싶어한다. 그렇게 조금씩 벽을 허문다. 정일을 어색해 하는 예솔도 점차 그 벽을 스스로 허물어 간다. 순남도 조금씩 조금씩 수호의 빈자리를 채워나갈 정일을 받아 들이는 것 같다. 하지만 때때로 수호의 기억을 들춰내는 주변 사람들의 관심에 아물어 가던 생채기는 또 다시 뜯기고 피가 난다.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는 쳇바퀴 굴레는 돌고 돌 뿐이다. 정일과 순남은 아프고 아프다. 수호의 빈자리는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 된다.
 
영화 '생일' 스틸. 사진/NEW
 
어린 예솔은 언제나 엄마의 슬픔에 휩싸여 살아왔다. 2014 4 16일 이후 예솔은 오빠 수호를 대신해 엄마의 보호자가 됐다. 때때로 감정이 폭발하고 힘들어 하는 엄마의 옆에서 약봉지를 가져다 주고 물을 떠주며 묵묵히 바라본다. 엄마가 힘들어하는 극한의 고통 탓에 이 어린 소녀는 자신의 감정 표현을 지워버렸다. 말이 없다. 보채는 것도 없다. 어린 시절 해외로 돈을 벌러 떠난 아빠 정일을 오랜 만에 만났다. 정일의 선물 공세에 그저 싸구려 스티커 한 장을 고른다. 학습된 결과다. 오빠의 죽음을 아는 걸까. 갖고 싶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다. 하지만 죽은 오빠는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데란 엄마의 상처를 알고 있다. 이 어린 소녀는 그저 묵묵하게 이 가족 안에서 살고 있다. 죽은 오빠의 새 옷을 사와 기뻐하는 엄마의 웃음에도 빈 쇼핑백을 들춰보고 고개를 숙인 채 발길을 돌리는 것이 예솔의 감정이다. 불쌍하다. 견딜 수 있어서 견디는 게 아니다. 예솔은 그저 견디길 강요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저 흔한 반찬 투정 조차 못한다. 그럴 수 없단 걸 이 어린 소녀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영화 '생일' 스틸. 사진/NEW
 
그렇게 순남과 정일 예솔은 한 가족이면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견디고 있었다. 순남이 왜 그렇게 견뎌야 하는지 또 정일은 왜 아들의 죽음에 올 수 없었는지, 오빠의 죽음이 어떤 의미이고 어떤 상처인지도 모른 채 스스로가 상처에 익숙해져 가는 어린 예솔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영화 생일은 남은 사람들의 삶이 가져오는 각각의 상처 깊이를 전한다. 그리고 그 상처는 영화 후반 수호 생일 잔치에서 봉합되면서 견뎌야 하는 삶의 고통이 끝이 아님을 전한다. 물론 잊지 않고 기억해야만 하는 떠나간 사람들과 그들을 추억하고 슬퍼만 해서는 안될 남은 사람들의 따뜻함이 온기를 남긴다. ‘참사로 기억될 거대한 상처이지만 치료를 거부한 채 아파해야만 하는 시간을 넘어선 남은 가족의 사랑이 영화 생일의 마지막이다. 이제 그들도 그만 아파하고 그만 힘들어 해야 한다고. 그들도 기억하고 우리도 기억하는 그 날의 일은 잊지 않고 있을 테니.
 
영화 '생일' 스틸. 사진/NEW
 
생일은 아직 진상조차 파악되지 못한 사건을 스크린에 옮긴 것을 비난으로 때릴 수도 있을 듯싶다. 남은 가족들의 상처를 치유하잔 모습에 거부감을 드러낼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 속에 등장한 보상금 논쟁에 또 다시 유가족들이 상처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의 아픔을 이용한 상업적 꼼수라고 욕지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덤덤하게 끌고 가는 영화 마지막 수호의 생일 잔치에서 주고 받는 남은 사람들의 대화 속에 가 담겨 있다. 그저 기억해 달라는 것뿐이다. 일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생일 날 모두 모여 기억해 달라는 것뿐이다. 그때 그 곳에 사람이 있었고, 그때 그 곳에도 삶이 있었으며, 그때 그 곳에 누군가의 가족이 있었다고. 추억은 잊혀진 것에 대한 되새김이지만 기억은 잊지 못하는 것에 대한 흔적이다. 영화 생일은 그때 그 날을 모두가 잊지 말아 달라고만 덤덤하게 말하고 있다. 304개의 각기 다른 그 날을 기억해 달라는 부탁이다. 4월 3일 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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