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벨바그풍 에픽하이 '불면'의 이야기들, 세계를 감싸다
입력 : 2019-03-13 18:48:23 수정 : 2019-03-13 18:48:23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불면'을 주제로 한 에픽하이의 새 앨범은 '누벨 바그'의 향기와 닮아 있다. 50년대 프랑스 영화계에 일었던 이 경향은 기존 영화사적 관점을 송두리째 바꾼 '새로운 물결'이었다. 보헤미안적 기질의 이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며 포근함을 느끼는 듯한 카메라적 기법의 도입과 기존 영화 형식의 파괴. 
 
"누벨 바그풍 영화들을 좋아합니다. 침대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친밀하고 아늑한 씬들의 느낌이요. 앨범명 때문에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영향을 받은 게 아니냐는 말들을 많이 들었는데, 저는 사실 그 영화 본 적 없습니다."
 
미국 음악전문 채널 MTV와의 인터뷰에서 그룹 에픽하이의 타블로는 새 앨범을 '누벨 바그'에 빗대 설명했다. "전작들에 비해 여러 이유로 차분하고 평화로운 앨범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 트랙 'Lullaby for a Cat'은 우리가 여태껏 만든 음악 중 가장 평화로운 음악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에픽하이 '슬립리스 인' 커버. 사진/아워즈
 
지난 11일 발매된 '슬립리스 인(sleepless in __________)'이 전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발매 즉시 세계 25개국 아이튠즈 KPOP앨범 차트 1위를 기록했고, MTV와 빌보드 등 미국의 주요 음악 매체들은 앨범 발매 직후 특집 기사로 그룹을 다루며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16년간 K팝 바운더리에서 활동해 온 그룹의 상징성과 이들의 신보를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분위기다.
 
타블로는 MTV와의 인터뷰에서 "K팝 산업은 기대수명이 일반적으로 짧은 영역에 속한다"면서도 "16년째 우리가 한 그룹으로 음악 활동을 이어오는 것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이 때론 매 앨범이 마지막 앨범이 될 수 있을거라는 압박과 특별한 느낌을 동시에 갖도록 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MTV는 신보가 타블로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불면'이 "그의 삶 자체"였으며 성장 경험으로부터 나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어릴 적 공부를 열심히 하던 중 (불면으로) 코피를 흘리면 학교에서나 가정에서나 그것을 굉장히 가치 있게 여기는 풍토가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것은 아주 끔찍한 일이었어요. 그러한 일들을 겪고 자라면서 열정과 불면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에픽하이. 사진/뉴시스
 
앨범 곳곳엔 '불면'에 관한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들이 묻어 있다. 앨범을 여는 첫 곡 '슬립리스(Sleepless)'부터 그의 경험담이다. 
 
그는 MTV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핸드폰 때문에 잠에 들지 못한다. 나 역시 핸드폰을 저 멀리 두고 자는 버릇이 생겼다. 그런데 어느날 밤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폰이 음성인식 기능으로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상상. '잠 자는데 문제가 있니?'. '마음이 아프니?' 첫 곡은 그런 생각으로 만든 노래다"고 설명했다.
 
'No Different'는 열정과 불면 사이의 관계에 대한 그의 고민이 묻어나는 곡이다. 그는 '미래를 건설하려 노력했지/ 우리가 얻은 것들은 부서진 과거 뿐이네(We tried to build a future/All we got’s a broken past)'라는 가사와 관련해 "그게 우리 삶이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어떤 것을 설계하려 할 때 그것이 부러지고 마는 상황이 발생한다. 하지만 가사는 이미 깨진 과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이야기"라고 답했다.
 
MTV는 에픽하이의 신보를 '정신 건강'을 다루는 글로벌 음악의 트렌드에서 조명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타블로는 "15년 전 1집 때부터 우린 우울 같은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왔던 것 같다"며 "최근 몇년 사이 많은 가수들이 그런 주제로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 현상 자체가 기쁜 일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에픽하이. 사진/아워즈
 
같은날 빌보드는 에픽하이를 방탄소년단(BTS)이 영감을 받았던 그룹이라고 소개했다. 또 "BTS 멤버 슈가와는 이소라의 '신청곡'에서 합을 맞춘 적이 있다"며 이번 앨범의 신곡 '이터널 선샤인'에서의 협업은 어땠냐고 타블로에게 물었다. 
 
이에 대해 타블로는 "슈가의 창작 범위는 놀라울 만큼 대단했다. '턴업 쏭'부터 '멜로 쏭'까지를 넘나들었고, 작곡을 정말로 사랑한다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며 "재능있고 좋은 뮤지션은 많지만 그처럼 열정을 계속 이끌고 가는 뮤지션이 되기는 힘든 일"이라고 설명했다.
 
또 K팝이 유튜브 등 인터넷 발달과 함께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것과 관련한 자신 만의 생각도 답했다. 그는 오히려 인터넷의 급속한 발달로 리스너들의 선택 영역이 넓어짐에 따라 두려움이나 압박감이 강화되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누군가가 우리의 얘기를 듣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끝나는 날일 겁니다. 우리가 계속 음악하기를 원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말이죠. 나이를 먹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죽은 것도 솔직히 두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있는 음악을 못할 수 있다는 생각에 미치면 두려워 지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누벨바그풍 '불면'에 관한 새 이야기들은 지구 전역을 감싸고 있다. 그가 밝힌 두려움이 현실화될 일은 아직까지 없어 보인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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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익도

자유롭게 방랑하는 공간. 문화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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