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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우상’, 결국 이 영화 자체가 ‘허상’이다
‘한공주’ 만든 이수진 감독, 인간 감정 더욱 끌어 내린 연출
각기 다른 ‘우상’, 그리고 관객이 쫓는 실체…“정말 우상일까”
2019-03-11 00:00:00 2019-03-11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이 영화에서 우상은 중의적이다. 먼저 우상(偶像)이다. 신처럼 숭배되는 대상이나 사람이다.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이상(理想)이다. 유사 이례 인간의 여러 본성 중 가장 유혹적이고 빠져들기 쉬운 속성이다. 사실 이 이상은 우상(愚相)의 이면이다. 본질적으로 다가설 수 있는 바람의 가장 넓고 큰 개념이다. 쫓고 있고 바라고 있고 원하지만 그것을 잡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가능할 수 있지만 그것을 쫓다 보면 모두가 함정에 빠지기 쉽다. 우리 주변에서 우리가 가장 쉽게 빠져 들 수 있는 오류다. 이상향은 결국 상상의 범주 안에서만 살아 숨쉬는 그것이다. 결코 불가능하진 않지만 가능함으로 만들기에는 자연스런 방식으론 불가능한 지점이다. 그래서 우상은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한다. 누구라도 바라지만 누구도 다가설 수 없는 지점이다. ‘우상은 그 함정에 빠져 든 세 사람의 행적을 통해 그 이상허상이란 점을 분명히 명시한다. 따지고 보면 이상허상으로 만든 가장 결정적인 요소가 모두가 쫓는 우상의 함정이었단 점을 세 사람은 모르고 있었다. 결국 우상(偶像)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허상일 뿐이었다. 남아 있고 존재한 것은 그저 우상(愚相)이었을 뿐이다. 그 우상(愚相)이 만든 함정이 결국 우상(偶像)이었단 점은 지금도 우리는 모른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 구명회(한석규)완성이 그것을 증명한다.
 
 
 
영화 한공주를 통해 한국 영화계에 강렬한 등장을 알린 이수진 감독은 두 번째 장편 우상에선 더욱 더 인간이 숨기고 있는 악마성의 실체에 접근한다. 이 감독이 그려낸 우상의 악마성은 사회가 만들어 낸 인간성 본질에 가깝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본질은 선에 가깝다. 하지만 악의 유혹은 언제나 달콤하다. 유혹적이다. 그래서 본질은 언제나 악의 결과로 이어진다. ‘우상의 중의적 함의가 그것을 말하고 증명한다. 이미 시작부터 우상은 답을 내리고 관객들을 그 답으로 끌고 간다.
 
방식의 차이다. ‘우상은 어렵다. 하지만 본질이 어려울 뿐이다. 이미 처음부터 답이 정해졌으니 답을 찾을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관객들은 그 답을 찾기 위해 과정을 끼워 맞출 것이다. 이수진 감독의 연출 계산이 밑바탕에 깔린 이유다.
 
영화 '우상' 스틸. 사진/CGV아트하우스
 
구명회, 유중식(설경구), 최련화(천우희) 세 사람 모두 명확하다. 명회는 차기 경남 도지사를 꿈꾸는 도의원이다. 가장 유력한 후보다. 도민 전체 뜨거운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아들이 뺑소니 사고를 냈다. 사고 피해자 시체를 집으로 가져왔다. 사체 유기 시도까지 한다. 아내가 아들을 도왔다. 아내의 속내는 이렇다.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 허상을 잃기 싫었을 뿐이다. 아내의 허상은 명회에겐 이상이다. 절대 잃어선 안될 우상이다. 그는 아들을 자수시킨다. ‘우상을 포기하는 게 아니다. 우상을 위해 허상을 이용하려 든다. 사건을 최대한 빨리 수습하기 위함이다. 그의 후원자이자 정치적 뒷배인 국회의원(김명곤)자네에겐 드라마가 있다며 명회의 출신 성분과 함께 아들 사건 활용이 우상으로 접근함에 더욱 힘을 줄 것이라 부추긴다. “자넨 예수 같다. 방귀만 뀌어도 대중들은 할렐루야를 외친다는 말로 명회의 불안한 심리를 더욱 자극한다. 이제 명회는 돌이킬 수도 없는 선택을 한다. 그는 허상을 이용해 자신의 이상이던 우상이 되려 한다.
 
영화 '우상' 스틸. 사진/CGV아트하우스
 
명회의 아들 뺑소니 사고 피해자는 발달 장애가 있는 남자다. 그 남자의 아버지 유중식은 아들을 끔찍이 사랑한다. 영화 시작과 함께 쏟아지는 내레이션은 중식과 그의 아들 부남의 관계를 전한다. 발달 장애 아들의 자위를 대신해 줄 정도로 그는 아들을 사랑한다. 사랑이라기 보단 관리다. 관리라기 보단 동질감이다. 그는 불안한 내면을 담고 있는 듯하다. 아들에 대한 사랑이라기 보단 아들을 통해 자신 삶의 테두리를 지키고 싶었던 듯싶다. 그래서 아들을 지키고 싶었다. 머리도 같은 색깔로 염색을 했다. 일종의 동질감 상징이다. 중식은 자신 내면에 아들 부남을 끌어 안고 있다. 아들 죽음 이후 명회와 명회 가족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지만 그 분노는 사실 아들 죽음에 대한 원인과 결과가 아니다. 가족이란 울타리 파괴에 대한 불만이다. 그래서 아들 부남과 결혼시킨 조선족 출신 련화에 대한 집착으로 변질된다. 이제 중식은 아들 죽음에 대한 분노를 련화의 행적을 쫓는 동력으로 전환시킨다. 중식은 이제 부남의 상징을 련화와 그의 뱃속 아이에게로 쏟아낸다. 련화를 찾아야 한다. 련화가 이제 그에겐 부남이고 가족이다.
 
영화 '우상' 스틸. 사진/CGV아트하우스
 
하지만 중식은 련화를 찾는 과정에서 자신도 몰랐던 비밀을 하나 둘 알게 된다. 련화는 대체 왜 부남의 곁에서 사라진 것일까. 부남이 사고로 죽던 날은 련화와 신혼여행을 간 바로 그날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발견된 련화의 행적은 의문투성이다. 그리고 명회 역시 련화를 쫓는다. 아들 사건 돌발 변수가 발생한 것이다. 아들의 차에 치여 죽은 부남이 결혼을 했고 부인이 있었단 점. 사건의 목격자가 나타난 점. 죽은 부남의 아내 련화가 현장에 있었을지 모른단 점. 명회는 우상허상이 될지 모른단 불안함에 련화를 찾아 나선다. 련화를 쫓는 중식과 명회. 도대체 사건의 실타래는 어떻게 꼬인 것일까. 중식과 명회 두 사람이 쫓는 련화가 품은 비밀은 무엇 일까. 그 비밀이 중식의 우상과 명회의 우상을 지켜 줄 비밀일까. 아니면 두 사람의 우상허상으로 만들 폭탄일까. 혹시 사라진 련화는 자신만의 우상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감춰 버린 것일까. 영화는 꼬이고 비틀리고 뒤섞인 세 사람의 행적과 그 행적을 움직이게 만드는 불안한 심리를 동력으로 우상의 진짜 얼굴이 허상일지 이상일지에 대한 혼란을 불러 일으킨다.
 
영화 '우상' 스틸. 사진/CGV아트하우스
 
우상은 만든 이수진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전작 한공주에서 선보인 깊은 감정을 더욱 심연 그 이하로 끌고 들어간다. 감정의 깊이는 그 감정을 느끼는 주체가 주인이다. 하지만 주인이면서도 그 깊이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우상속 세 사람 모두 본인들이 무엇을 쫓고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에 속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우상의 중의적 함의가 인간성 본질이란 해답을 정하고 출발하기에 이 영화가 어렵게 다가온다. 그 어려움은 스토리 흐름을 이해하는 관점이다. 관점은 어디에 두는 지에 따라 변화된다. ‘우상은 스토리 정보 전달 주체인 대사를 통해 흐름을 쫓는 방식이 아니다. 그 대사가 인물들 감정과 그들이 쫓는 우상의 실체를 전달할 수는 있지만 그것조차 허상일 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불편하고 불친절해졌다. 세 인물의 전사와 후사가 불명확하게 그려진 것도 의도이고 연출이다.
 
영화 속 모든 장면과 의미 그리고 구성과 장치 모두가 맥거핀일 뿐이다. 그것 역시 우상허상의 경계선을 그려내려는 감독의 의도로 다가온다. 발달 장애인 부남의 죽음이 세 사람의 우상허상일 수 밖에 없단 힌트를 주는 듯하지만 그것 역시 관객들이 쫓는 상업 영화의 내러티브 해석법 자체가 완벽한 허상이라고 꼬집는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영화 자체가 허상이다.
 
영화 '우상' 스틸. 사진/CGV아트하우스
 
우상속에 등장하는 물의 이미지가 세 사람의 불안한 내면을 그리고 있다면 관객들이 허상으로 빠지는 것에 대한 유일한 안전장치일까. 명회의 내면을 담아낸 물의 본질, 중식의 목적을 그리는 쏟아지는 비의 은유, 련화의 고립을 대변하는 소나기의 강제성. ‘우상허상으로 다가서는 것을 막아서는 이 영화 속 거의 유일한 장치가 이 감독이 관객들의 허상을 부셔버리고 싶던 이상이었을까. 아니면 그의 영화적 우상이었을까.
 
기존 영화의 작법 자체가 우상에선 완벽한 허상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본질이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그럼에도 우리는 그 우상에 속고 있다. 속으면서도 도착하고 만나게 될 우상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던 허상임을 뻔히 알고 있는데 말이다. 이수진 감독은 우상을 통해 영화적 이상이 쫓는 허상의 실체를 완벽하게 증명해 냈다. 이런 영화적 작법은 전무후무란 타이틀조차 아깝다. 본질마저 꿰뚫어 버린 이 감독의 시선을 관객들은 피할 수 있을까. 개봉은 오는 20.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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