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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네 부모가 18억이 있다 치자!”
2019-03-11 00:00:00 2019-03-11 00:00:00
영화 ‘돈’이 지난 6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개됐다. 주인공인 주식 브로커 조일현은 베일에 쌓인 큰 손 ‘번호표’에게 묻는다. “그렇게 돈 벌어서 도대체 어디에 쓰려고 합니까!” 영화에선 조일현은 돈에 취해 부를 축적하며 사회적 계급을 높여간다. 그는 돈을 만지면서도 돈을 몰랐다. 돈에 의해 점점 무너지고 잠식돼 가는 스스로의 모습은 불안하고 초조하기만 했다. 돈이 자신을 파괴하고 있단 것을 알게 된 후 그는 돈의 ‘악마성’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영화 ‘돈’은 현실에서 있을법한 가상의 내용을 그렸다. 그런데 영화에서나 있을법한 현실 얘기가 최근 전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며칠 전 한 지상파 고발 프로그램에서 방송한 재벌가 사모님 자살 사건이다.
 
2016년 국내 거대 언론사 계열 재벌가 사모님이 한강에서 투신했다. 친정 식구들에게 남긴 유서를 통해 남편과 자식들의 감금 폭행이 있었단 내용이 세상에 알려졌다. 친정 식구들과 전 가사도우미 증언에 따르면 남편은 돈 때문에 아내와 자식들 사이를 갈라놨다. 자식들은 돈을 내놓으라며 엄마를 지하실에 감금하고 폭행했다.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키려 했고 구급차에 타지 않겠다며 소파를 잡고 늘어진 엄마의 손을 잘라버리라고 소리쳤다. 구급차에서 기지를 발휘해 친정으로 도망친 그녀의 온몸은 폭행 상흔으로 뒤덮혀 있었다.
 
모든 원인은 돈이었다. 돈의 힘은 막강했다. 돈을 위해서라면 부모도 감금할 수 있고 때릴 수도 있었으며, 부모의 손을 잘라버리라고 다그칠 수도 있었다.
 
돈에 의한 패륜범죄는 영화 단골 소재이다. 2002년 개봉해 흥행한 ‘공공의 적’이 그 시작이다. 성공한 펀드매니저 조규환은 돈을 위해 부모를 살해하고 범죄를 은폐하지만 형사 강철중에 의해 꼬리가 잡힌다. 재미있는 건 이 영화를 만든 강우석 감독 위치다. 당시는 ‘영화는 곧 강우석’이란 등식이 성립되던 시기였다. 충무로 파워맨 순위 1위는 무조건 강우석이었다. 강 감독이야말로 영화계에서 가장 ‘큰 돈’을 만지고 움직이던 최고의 비즈니스맨이었다. 그런 그가 ‘공공의 적’을 세상에 내어놓은 이유는 뚜렷했다.
 
강 감독은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비즈니스를 하면서 주변에 돈 때문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 돈이 충무로에 들어와서 어떻게 사람을 망가뜨려 가는지를 봤다. 나라도 확실하게 어떤 게 나쁜 거고 어떤 게 덜 나쁜 건지 그려야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17년이 지났다. 오히려 세상은 더욱 돈에 취해가고 있다. 돈에 의한 사회의 병리적 현상은 이제 영화가 아닌 현실이 됐다. ‘공공의 적’에서 강철중이 후배 형사에게 말한 실제 대사다. “만약에 네 부모가 18억이 있다 치자. 그럼 넌 네 부모를 죽여서 그 돈을 갖고 싶을 거야. 왜? 넌 원래 나쁜놈이니깐!” 지금 우리는 세상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며 강철중에게 따져 물을 수 있을까. 돈, 인간성 말살 그리고 패륜. 현실과 영화의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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