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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영화 ‘돈’, 지배할 것인가 지배 당할 것인가
여의도 증권가 배경, 신입 주식 브로커 통해 바라본 ‘돈’
‘돈’을 움직이는 진짜 힘, 그 힘에 지배 받는 다양한 인간
2019-03-08 00:00:00 2019-03-08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선택된 극소수에겐 넘치고 넘쳐도 모자란다. 선택 받지 못한 대다수는 갖지 못해 갖고 싶지만 언제나 그것에 지배를 받기만 한다. 지배를 당하기에 그 힘에 굴복하고 순응하고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끓고 패배를 인정한다. 선택된 극소수는 넘치고 넘치지만 언제나 항상 그것을 끌고 다닌다. 선택 받지 못한 대다수는 언제나 그것에 끌려 다닌다. 선택된 극소수에게 그것은 언제나 당연하다. 항상 당연하다. 선택 받지 못한 대다수에겐 언제나 악마일 뿐이다. 삶을 짓누르고 억압한다. 그것은 언제나 그렇게 자신의 주인을 선택한다. 그들이 선택한 주인은 언제나 극소수일 뿐이다. 그래서 선택 받지 못한 대다수는 그것의 주인이 되기 위해 삶의 밑바닥에서 아귀다툼을 한다. 발버둥친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선택 받지 못한 대다수를 비웃으며 선택된 극소수에게 힘을 부여한다. 그것을 우리는 권력이라고 부른다. 현대 사회에서 그 권력은 바로 이다. 돈이 권력이고 권력이 바로 돈이다. 물질만능주의 현대 사회에서 돈은 선택된 극소수와 선택 받지 못한 대다수의 계급을 나눈다. 강제력이다. 돈은 그런 것이다. 돈의 얼굴은 그래서 언제나 두 얼굴을 하고 있다. 극소수에겐 천사이지만 대다수에겐 악마다. 천사와 악마의 두 얼굴을 가진 ’. 영화 은 그 두 얼굴의 표정을 바라본다.
 
 
 
영화 시작과 함께 등장한 ‘1’‘0’ 열 개의 조합. 숫자 ‘100’. 증권사 신입 주식 브로커 조일현(류준열)의 꿈이다. 그는 부자를 원한다. 선택된 극소수의 계급 사회로 진입을 원한다. 돈은 그 사회로 진입하기 위한 입장권이다. 일현은 선택 받지 못한 대다수의 일원이다. 그는 그 입장권을 얻기 위해 대한민국 돈의 바다여의도 증권가 한 가운데 자신을 던진다. 학연 지연 그 어느 것도 없는 일현은 돈을 잡기 위해 발버둥친다. 하지만 돈이란 애꿎은 놈은 언제나 선택 받지 못한 대다수를 비웃기만 한다. 증권가 주식 브로커들은 이름이 아닌 수수료도 불린다. 증권가 장 시작과 장 마감을 통해 하루의 실적이 책정되는 사회. 그들은 그 안에서 그렇게 자신들이 선택된 극소수인지 선택 받지 못한 대다수인지를 평가 받는다. ‘이란 놈을 통해.
 
매일 매일 실적 ‘0을 기록하고 급기야 치명적인 실수로 고객의 돈을 날리게 된 일현. 해고 직전 위기에 몰린다. 선택된 극소수의 사회 편입을 위해 노력하지만 어차피 뜬구름일 뿐이다. 그 순간 뜬구름을 잡을 수 있는 실낱 같은 낚시 바늘 하나가 일현의 바람을 낚아 챈다. 여의도 증권가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큰 손과의 만남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바로 번호표’(유지태)라고 불리는 베일에 쌓인 사나이. 그는 일현에게 거액의 금액을 약속하고 주식 작전을 제안한다. 위험하지만 달콤한 이 제안에 일현은 예상대로 낚인다. 알고도 낚인 일현에게 주어진 대가는 너무도 달콤하다. 하루 아침에 그는 회사 전체의 수익을 아우르고 주무르는 큰 손이 된다. 선택된 극소수의 사회 문턱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영화 '돈' 스틸. 사진/쇼박스
 
하지만 달콤하고 위험한 제안에는 언제나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번호표의 작전은 통상적인 주식 거래와는 다른 방식이다. 결국 금융감독원의 감시에 잡힌다. 금감원 최고의 사냥개로 불리는 한지철(조우진)은 일현을 옥죄면서 자신이 쫓던 번호표의 실체를 노린다. 이제 일현은 혼란을 겪게 된다. ‘번호표의 달콤한 제안은 계속되고, 한지철의 조여오는 포위망도 계속된다. 그는 을 끌고 다니는 선택된 극소수도, ‘에게 지배를 받고 끌려 다니는 선택 받지 못한 대다수도 아닌 그 중간에 놓이게 됐다. 돈이 자신을 끌고 다니는 건지 자신이 돈에 끌려 다니는 건지 스스로도 혼란을 겪게 된다. 일현은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쫓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번호표한지철그리고 이란 두 얼굴의 천사와 악마가 지배하는 여의도 증권가 한 가운데에서 그는 표류할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를 구할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빠져 나올 수 없는 치명적인 독을 품은 돈의 마력에 자신의 인간성과 정체성 모두를 팔아 넘길 것인지. ‘은 그렇게 일현에게 한 가지도 두 가지도 세 가지도 아닌 셀 수도 없는 갈림길의 한 가운데로 그를 밀어 넣는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일현은 앞과 뒤 단 두 가지의 선택만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돈이 펼쳐 놓은 보이지 않는 마법에 취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있단 착각을 하고 살아 왔다. 이제 그는 직진’ ‘후진두 가지만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눈에 보이는 좌회전’ ‘우회전은 결국 허상일 뿐이다.
 
영화 '돈' 스틸. 사진/쇼박스
 
영화 은 금융가를 중심으로 현대 사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은 권력의 집합체 의 실체에 조금 더 접근한다. 증권가 그리고 금융 사회를 소재로 했던 기존의 한국 영화들이 정형화되고 구조적인 시스템 안에 갇힌 인물들의 감정 변화에 포커스를 맞춰왔다면 은 철저하게 상업적 작법을 구사한다. 일단 금융 관련 지식이 전혀 없다고 해도 영화 을 이해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 영화의 내러티브 자체가 주식 시장의 변화 무쌍한 초단위 포인트를 세밀하게 잡아 냈고 전문 지식을 요구하는 대사가 넘침에도 흐름의 이해를 음악으로 대체시켰다. 화면의 편집으로 강약을 조절했다. 위기감이 고조될 경우 박자감이 빠른 배경음과 함께 화면 흐름의 리드미컬함이 속도를 더한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영화 '돈' 스틸. 사진/쇼박스
 
리드미컬한 속도의 편집이 상당히 터프한 느낌도 주목된다. 금융의 핵심이라고 불리는 주식은 살아 숨쉬는 생명체라고 말하지 않던가. 영화 속 주식 시장은 일종의 먹이 사슬이 완성된 정글과도 같이 그려진다. 쫓고 쫓기는 시스템 속 육식과 초식의 지배와 피지배의 역학 관계는 주식 브로커와 펀드 매니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배하는 번호표의 관계로 설명이 된다. 이 관계의 설정이 남성적이고 날 것의 느낌도 강하다. 이런 표현 방식은 연출의 감성적 문제다. 놀랍게도 이 영화는 여성 감독이면서도 그의 데뷔작이다. 도식화되고 구조적으로 틀을 깰 수 없는 금융권 소재 영화란 점을 고려하면 눈에 띄는 연출 방식이다. 상업적으로 해석하고 풀어내는 연출력이 탁월하단 평가 외에는 달리 설명이 불가능하다.
 
영화 '돈' 스틸. 사진/쇼박스
 
의 실체에 접근하고 돈이 어떻게 우리 사회를 지배하며 그것을 지배하려는 극소수의 선택된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 베일을 벗겨내는 영화 이다. 물론 우리는 그것이 누구인지 그 베일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당할 수 밖에 없는 돈의 마력 때문이 아닐까. 지금도 우리는 알고도 당하고 당했지만 또다시 그 함정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스스로를 보고 있다. 그게 바로 그 자체가 갖고 있는 마력의 본질인 탐욕이다. 결국 탐욕을 지배하는 것도 지배를 당하는 것도 각각의 개개인일 뿐인데 말이다. 개봉은 오는 20.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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