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70년 ‘영풍’, 한국 비철금속 산업 역사를 쓰다
핵심역량 전환으로 성공, 글로벌 대표 소재기업 등극
입력 : 2019-02-14 14:23:13 수정 : 2019-02-14 15:19:52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국내 아연 시장 점유율 85%를 차지하고 있는 세계 1위 아연기업인 영풍그룹이 올해로 70주년을 맞이한다.
 
영풍은 한국 비철금속 산업을 이끌어 온 소재 기업으로 현대제철, 풍산, 동국제강 등 주요 제강사들에게 아연을 공급하는 매우 중요한 원료 공급처다. 영풍이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아연산업에서 확고한 입지를 점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내실 위주의 수익 경영과 B2B 위주의 핵심 역량 전환 전략이 주효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설립 초기 당시 수산업, 농업, 무역업 등 주로 소매업 위주의 사업 영역을 갖고 있던 영풍은 1970년 정부의 중화학공업화 정책 추진 기조에 맞춰 본격적으로 제련업으로 방향을 바꿨다. 최근 들어서는 세계 최초의 유가금속 회수법인 TSL(Top Submerged Lance) 공법으로 공법으로 유가금속 회수율 96.5 퍼센트를 달성했다. 그리고 아연순도는 99.995퍼센트의 우수성을 보이고있다.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에 소재한 영풍 석포제련소 전경. 사진/영풍그룹
 
1949년 설립한 해방둥이 기업, ‘M&A 강자’
영풍그룹은 지난 1949년 11월 장병희 회장(1913~2002)과 최기호 회장(1908~1980)이 창업한 해방둥이 기업이다. 설립 당시에는 시인이자 자본가로 유명한 주요한 전 부흥부 장관(1900~1979)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제2공화국 출범 이후 주 시인이 입각하면서 장병희·최기호 설립자가 함께 이끌어가는 ‘2각 체제’로 바뀌었다. 장 설립자는 1929년 황해도 사리원농업학교를 졸업했고 1938년에는 대구신학교를, 벨기에 루뱅대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지식인이었다.
 
영풍의 발전사는 한국 산업의 근대화 역사의 궤적과 맞아 떨어진다. 일찍이 해외 유학 경험으로 수출 경제의 중요성을 파악한 장 설립자는 1951년 애국해운을 설립했고, 이후 영풍해운으로 성장시켰다. 1962년 6월에는 소재 기업인 대유티탄을 인수·합병했고, 같은 해 11월에는 양양상사를 흡수 합병해 영풍상사로 탈바꿈시켰다. 곽규태 순천향대 글로벌문화산업학과 교수는 “영풍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 이후 한국에서 인수·합병(M&A)을 통한 비즈니스 혁신이 본격화되기 50년 전부터 과감한 M&A를 추진해 사업 다각화를 시도한 기업”이라면서 “과거의 관성에 머무르지 않고 조직의 체질을 계속해서 바꿔 나가려는 창업주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이후에도 영풍은 기업 M&A를 이어나갔는데, 1967년 영풍 어업, 1972년에는 경인철강 등을 사들였다.
 
석포제련소, 세계 최고 생산성 자랑
영풍이 오늘날 세계 아연시장 점유율 1위(매출 기준 10%)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초석은 1970년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에 소재한 석포제련소 설립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석포면은 일제시대 당시 아연, 철광석 등을 나르는 저탄장이 있었던 물류기지였다. 당시 정부는 중화학공업화의 일환으로 영풍그룹이 아연 제련을 담당할 것을 요청했다. 이때부터 영풍은 소매기업에서 B2B(사업자간 거래) 기반의 소재 기업으로 탈바꿈한다.
 
영풍이 아연 제련 기술을 확보하는 데에는 간난신고의 노력이 필요했다. 당시 제련업 선진국이었던 일본 기업들은 영풍 측에 기술이전을 하는 데 매우 미온적이었다. 회사 소속 근로자들이 유수의 기업 주변에서 숙식을 하며 연구개발 담당자들을 만나고 설득했지만 그들은 쉽게 기술을 알려주지 않았다. 결국 창업자들이 일본 재계와 교섭한 끝에 일본 현지 전문가가 석포제련소 건립 과정에 자문을 해 주는 내용으로 기술이전이 이루어 졌다. 영풍 관계자는 “최근 일부 환경단체가 ‘일본의 공해산업 설비가 그대로 석포제련소에 이전됐다’고 비난하지만 사실과 다르다”면서 “자문 수준의 지식 이전을 설비와 자본 유입으로 오해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영풍 석포제련소 3공장 내에 있는 TSL 설비에서 아연과 희소금속을 추출한 뒤 남은 슬래그가 창고에 쌓여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TSL 공정 세계 최초 상용화, 산업 판도 바꿔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영풍 석포제련소의 아연 생산량은 연간 8000톤에서 1만톤 수준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영풍은 지속적으로 제련기술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를 단행하는 한편, 조업량도 늘려 2017년 기준으로 연간 36만톤의 아연을 생산하는 대형 제련소가 되었다. 제련 선진국인 일본이 약 10만톤 가량의 생산량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후발주자인 한국의 영풍 석포제련소는 4배 가까운 양을 생산하는 셈이다. 기술이전을 꺼려했던 미쓰이, 미쓰비시 등 일본 선두기업들이 지금은 영풍 석포제련소에 견학와 기술을 배워가고 있다.
 
2006년 ‘TSL’이라는 공정을 세계 최초로 완성시켰다. 영풍 석포제련소는 이 공정을 통해 세계최고의 아연제련수율을 달성했다. 또한 TSL 공정을 도입한 뒤에는 아연 제련을 하고 남은 잔재에서 금, 인듐, 은부산물, 동 등 희소금속들도 회수하고 있다.
 
영풍 석포제련소 관계자는 “봉화군 석포면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조업량을 무한대로 늘릴 수는 없으므로 최대한 다양한 부가가치를 지닌 금속을 뽑아내는 기술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자원순환’ 기술이다. TSL 공정은 ‘아철산아연’이라는 부산물을 1400도의 고온 상태에서 용탕을 시킨 후 발생하는 연기가 다시 집진기에 도달하는 시간과 온도 조건에 따라 특유의 금속 고체를 만든다. 즉, 1000도 이하에서는 아연 분말이 나오며, 각 온도마다 금, 은, 동 등이 나온다. 나머지는 시멘트공장에 판매할 수 있는 슬래그가 되어 가치화 된다.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줄이는 공법도 석포제련소 특유의 노하우다. 아철산아연의 수분을 23%대에서 15%대로 줄이기 위해 경소백운석을 활용해 보니 열 에너지도 아끼고 이산화탄소 발생량도 줄일 수 있었다. 영풍 측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생산되는 부가가치만 약 40억원 가량이 된다고 한다.
 
TSL을 처음 고안한 것은 일본 업체였다고 한다. 하지만 전 세계 어떤 기업도 이를 도입하려고 하지 않았다. 안전이 생명인 대규모 설비 투자는 모험보다는 운용 기록을 더 신뢰하는 분위기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영풍그룹은 달랐다. 장형진 영풍그룹 회장은 TSL의 가능성을 믿고 투자를 단행해 1993년 세계 최초로 실제 아연 제련과정에서 TSL을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 기술은 생산성 향상은 물론 친환경적인 생산 공법으로 인정받아 과학기술부와 환경부로부터 국산신기술(KT)과 환경신기술(ET) 인증을 받았다. 2009년에는 광업 분야의 최고 권위 국제학술지인 ‘광물공학’(Minerals Engineering)에 사례 연구로 실리기도 했다.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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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들은 더 죽어가고 병들고 ~그 흙속에도 중금속이 지금도 흘러흘러 스며서 언젠가내 새끼 입으로 들어오겠지~~앞에 그 지랄 떨어서 지금은 폐수 안보내고 계실까나? 전부 정수 처리해서 다 내 보내고 있는거죠?방송보고 완젼 개 슬픔 ㅜ ㅠ

2019-02-16 04:12 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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