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시론)다시 공직개혁을 생각함
2019-02-01 06:00:00 2019-03-11 09:59:37
이강윤 칼럼니스트
수구세력의 조직적 저항으로 개혁작업이 발목잡힌 건 국회 의석분포와 밀접한 정치사안이니, 야당 저항과는 크게 상관없는 ‘공직개혁(공기관 포함)’에 국한한다는 점 미리 밝힙니다(청렴성실한 공직자께는 해당되지 않으니 혹여 상처받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관존민비’의식은 조선시대 얘기라구요? 과거(고시) 급제의 ‘선민의식’은 진작 끝났다구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위민행정’이란 구호 기억하실 겁니다. 원 뜻은 그렇지 않습니다만, ‘위할 위(爲)’ 자 때문에 “내가 (희생해서) 너희들 국민을 위해 일해준다”는 의식이 조장됐습니다. 공복의 자세가 아니라 ‘갑 의식’이고, 여기에서 ‘갑질’이 나옵니다. 상당수 공직자들은 나랏돈 쓰는 걸 경건하게 생각하기보다는 당연한 권리로 여깁니다. “배정예산 다 써야 내년에 줄지 않는다”며 보도블록 교체공사를 부랴부랴 한겨울에 하는 것 수 십년 째 봐오지 않습니까. 하루 종일 지켜봐야 통행차량이 수 백 대도 안되는데 마을 앞길 왕복 4차선으로 닦아놔 주민들이 차선에 고추나 벼 말리는 거 많이들 보셨을 겁니다. 예산따오기 경쟁만 하다보니 이렇습니다. 현재의 공직업무방식으로는 자기 칸막이 내부만 볼 수밖에 없습니다. 부처 간 할거의식과 업무영역 땅따먹기를 없애지 못하면 행정비효율과 예산낭비라는 고질병은 불가피합니다.
 
선출직이건 비선출직이건 연수를 빙자한 관광성 해외출장은 모조리 없애야 합니다. 꼭 필요한 경우에 ‘진짜로 보고배워’오도록, 그리하여 나랏돈 값어치 제대로 하도록 체크시스템을 2중3중 강화해야 합니다. 선출직공무원이라 해서 일반 공무원들과 달리 취급할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특활비’는 당연히 전면폐지 수준으로 축소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선민의식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점입니다. 싱가폴 공무원제도 한 번 볼까요. 싱가폴은 우수인력을 국가가 ‘관리’합니다(우수인력 선정기준 및 인권침해적 요소가 있는 관리방법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학창시절부터 공직후보자로 점 찍은 뒤, 유학보내 엘리트로 만들어 공직을 맡깁니다. 그러나 그렇게 양성된 공직자들에게 선민의식이나 갑질은 거의 없습니다. 왜 없을까요? 철저한 교육과 의식개혁, 징계가 주요인입니다. 한 눈 팔거나 비리 저지르거나 갑질부리면 즉각 퇴출입니다. 때로는 가혹한 수준의 배상까지 물립니다. 공무원으로 만드는데 나랏돈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이게 싱가폴 청렴의 토대이자 국가경쟁력의 원천입니다. 이런 걸 벤치마킹해야 합니다.
 
비리 관련자는 물론이고, 무능력자도 중도퇴출시켜야 합니다. 관가에 ‘인공위성’이라는 은어가 있습니다. 보임할 자리가 없어서 교육이나 외부기관으로 빙빙 도는 고위직 공무원을 지칭합니다. 관료중의 관료, 행정고시의 ‘꽃’들이 모인다는 기획재정부에 특히 많습니다. 비능률-비합리의 극치입니다. 신분보장이 대한민국공무원의 업무자세(무책임, 면피, 나태 등)를 고착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점, 부인하지 못할 겁니다. 공무원합격증이 평생을 보장하는 전근대적 의식과, 퇴직 후 두세 임기 정도는 자리 보장해주는 구조도 물론 깨야 합니다. “재취업과 고액연봉은 공직 중 ‘고생’에 대한 보상”이라는 의식이 굳어진지 오래입니다. 공직자들 고생은 넉넉잡아 2000년대 이전 일입니다. 작년 공무원 평균급여는 6500만원 선입니다. 박봉 아닙니다. 그러므로 ‘당연한 보상’이라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공사이긴 합니다만, 이해 불가능한 조직도 있습니다. KBS는 간부진이 전체 직원의 반을 넘습니다. 그 간부들 중 30% 정도는 자리가 없어 놀고 먹습니다. 대부분 억대연봉입니다. 더구나 정년도 연장돼서 그 유휴인력들의 정년퇴직만 세월아네월아 기다리며 억대연봉 주고 놀리는 건 죄악에 가깝습니다. 월 200만원도 못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800만명입니다.
 
정치권의 업무간섭과 외압에 공무원들이 맞설 수 있으려면, 낙하산인사 없애고, 총리-장관은 공무원들의 ‘정정당당한 뒷배’가 돼줘야 합니다. 정치권물갈이와 특권박탈이 그래서 필수적입니다. 요약하자면, 선출직을 포함한 공직자의 의식이 바뀌지 않고서는 정권이 아무리 바뀌어도 나라는 그대로입니다. 정치가 직업인 사람들은 당선되면 공무원이고, 떨어지면 시민일뿐입니다. 특별대우해줄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국민들이 촛불정부에게 명령한 개혁이자 적폐청산입니다.

이강윤 칼럼니스트(pen3379@gmail.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