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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곤의 분석과 전망)김근태를 기억하는 다른 방법
2019-01-07 06:00:00 2019-01-07 06:00:00
지난 연말,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기일이 어김없이 돌아왔다. '민주주의자 김근태상' 시상식, 추모문화제, 추모미사, 마석모란공원 김근태 묘역 참배 등의 행사가 이어졌다.
 
가족과 지인들은 물론 문희상 국회의장, 유은혜 부총리 외 유수의 여당 인사들이 행사에 참여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대변인은 "'희망은 힘이 세다'라는 신념하에 일생을 약자의 편에 서서 든든한 기둥이 되어준 그의 모습은 김근태 정신으로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있다"는 논평을 통해 고인의 삶을 추모했다.
 
많은 사람들이 김근태를 기억하고 기리고 있다. 돌아보면 이명박·박근혜정부 때 그 크기가 더 컸던 것 같다. 김근태를 기억하는 방법과 내용은 제 각각이겠지만 공통분모는 아마도 반독재, 민주주의를 위한 투사로서의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
 
'바뀐 세상'에서 한몫하는 어제의 투사들이 많다. 김근태를 추모하기 위해 모란공원에 모인 여당 인사들 다수가 그렇고 심지어 자유한국당 등 보수정당에도 적지 않다.
 
그들의 현재가 어떻든 간에, 목숨 걸고 군사독재와 싸운 이들은 존중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평가는 어제에 대해서가 아니라 오늘에 대한 것이어야 마땅하다.
 
1987년 이후를 냉정히 따져보면, 여당 잘하기에 비하면 야당 잘하기는 너무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김근태를 다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는 여당 잘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 더 고민하고 노력했고 부딪혔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김근태는 "2년 전 실세 권노갑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노라"고 양심선언을 했다. 한 때는 너나없이 권노갑 돈 마다치 않았던 대선주자들 모두가 동교동과 차별화를 시도할 때 나온 고백에 대한 동료 주자들의 답은 "혼자 깨끗한 척한다"는 비아냥이었다. 대선 이후 여야를 가리지 않은 대선자금 수사의 전조였을지도 모르겠다.
 
탄핵 열풍으로 열린우리당이 과반의석을 획득한 2004년 총선 후 노무현 대통령이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는 개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대통령의 소신이다"라며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라는 열린우리당 총선 공약을 부인하자 김근태는 "계급장 떼고 치열하게 논쟁해보자"고 결기를 세웠다. 하지만 운동권 후배였던 다른 여당 의원이 "나같이 밑에 있는 사람과 토론하자"고 치받으며 청와대를 보호했다.
 
2006년 5·31 지방선거 참패 이후 처음으로 당권을 쥔 김근태는 사회적 대타협을 내걸고 전경련, 민주노총 등을 연달아 방문하며 '뉴딜 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그때도 '누구 마음대로 그런 약속을 하냐'는 싸늘한 반응은 여권에서 나왔다.
 
'여당 정치인' 김근태가 '반대의 기록'만 남긴 것은 아니다. 정부와 여야의 '묻지마 지원'이 이어졌던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애초부터 신중론을 펼치며 브레이크를 걸었던 이가 '김근태 복지부장관'이었다. 그는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진실이 국익에 우선한다고 이야기 했다가 네티즌들에게 몰매를 맞았다"고 회고했다.
 
김근태가 앞장서 2007년 개정된 지방세법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과 강남주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통과된 법이었다. 공동과세를 통해 강남의 세수를 강북에 지원할 수 있게 만든 것으로 서울시에 소득재분배 기능을 도입한 획기적인 법안이다.
 
여당 정치인 생활 10년 간 실패와 좌절은 많았고 성공은 적었다. 그래도 김근태의 반독재 투쟁 20년만큼이나 여당 생활 10년을 되새겨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금!
 
"반성과 성찰 속에 집권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비전과 대안이 명확하지 않은 채 (전 정권) 반대 반MB정부 정서 덕분에 정권을 잡는다면 다시 정체와 좌절이 찾아올지 모른다"
 
김근태가 세상을 떠나기 3개월 전, 남긴 글이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taegonyo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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