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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출국’ 이범수, 지금도 성장하는 무색무취의 배우
2018-11-14 12:04:33 2018-11-14 16:52:2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우선 너무 궁금했던 지점이다. 이범수는 배우로서 사실 굉장히 다른 지점에서 소비돼 온 독보적인 인물이다. 충무로에서 배우를 소비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연기력이 첫 번째다. 그 연기력은 흥행력까지 담보하고 있단 해석도 담겨 있다. 두 번째는 장르 소화성이다. 현대극에 어울리는 배우가 있고 사극에 어울리는 배우가 있다. 또 액션에 특화된 배우가 있고, 멜로에 강점을 지닌 배우도 있다. 물론 거의 모든 배우가 장르를 넘나들지만 그 경계를 부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단 것은 누구나 다 안다. 덧붙여 한 가지를 더하자면 캐릭터의 선악 소화력이다. 이른바 악역 전문 배우들이 있다. 그들 대부분이 코미디까지 소화한다. 악역과 코미디의 교집합은 임팩트다. 반면 선역 즉, 주인공은 다른 지점이다. 사실상 이 모든 것 경계를 허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불가능이다. 하지만 인물이 이범수라면 다르다. 그의 필모그래피가 증명한다. 영화 출국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이범수. 사진/디씨드
 
데뷔 28년을 맞는 이범수는 영화계에선 독보적인 색깔을 보유한 인물이다. 사실 그 색깔을 따지자면 어떤 뚜렷함이라기 보단 무색무취에 가까운 배우적 강점을 지닌 인물이라고 설명하는 게 옳다. 필모그래피를 살펴봐도 그렇다. 강력한 악역으로 인상 깊은 시기가 있었다. 때론 인간미 넘치는 드라마의 중심을 잡기도 했다. 어쩔 때는 완벽한 코미디의 호흡을 드러낸다. 그리고 출국에선 지금까지 본 적 없던 아버지로 컴백했다.
 
너무 과찬이십니다(웃음). 글쎄요. 시기들이 좀 있는 것 같아요. 어떨 때는 강한 인물에 끌리는 시기가 있어요. 악역은 배우로선 워낙 자유로움이 보장돼 있어서 재미가 있죠. 드라마나 코미디에 대한 맛도 분명 다르지만 그 느낌을 원할 때가 있어요. 이번엔 오영민이란 인물이 발산하는 부성애가 너무 끌렸어요. 대학 시절로 돌아가면 그런 것 같아요. 지도해 주시던 교수님이 배우는 아무런 맛도 없는 그렇지만 어디에나 필요한 물 같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게 이젠 이해가 되네요.”
 
그런 의미라면 이미 한 창 몸값이 올라 있는 것을 넘어 제작에까지 참여할 정도로 이름값이 올라간 그가 출국처럼 작은 영화에 눈길을 돌린 점도 조금은 이해가 됐다. 흥행 공식과는 정 반대의 영화였다. 아니 흥행을 노린 영화라기 보단 제작 자체에 의미를 둔 작업으로 그는 봤던 것 같다. 그 지점에서 배우로서 조금 더 성장하는 점을 이범수는 꿰뚫고 바라봤다. 그래서 그에겐 출국이 출연 그 이상의 의미였던 것 같다.
 
이범수. 사진/디씨드
 
사실 주변에서 좀 우려의 시선을 많이 보내기도 했죠. 신생 영화사 제작에 신인 감독이고, 제작비도 충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흥행성과는 거리가 있었죠. 더욱이 스토리도 상당히 무겁고. 그런데 그 지점이 절 끌어 당겼어요. ‘내가 저 입장이라면 어떻게 했을까그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죠. 영화 속 영민처럼 저도 두 아이의 아빠이다 보니 이젠 이런 스토리가 다르게 와 닿더라고요. 가슴이 먹먹하더라고요. 며칠 뒤 다시 읽어보고 출연을 결정했죠.”
 
이범수 정도의 배우가 연기력 하나만으로 중심을 잡고 영화 자체의 이야기를 끌고 갈 작품에 매력을 느꼈단 점이 오히려 크게 와 닿았다. ‘신의 한수인천상륙작전이 연달아 흥행에 성공하면서 그는 한 창 주가가 오를 대로 오른 위치였다. 하지만 반대로 배우로서의 갈증은 더욱 크게 오기도 했던 시기란다. 그래서 출국속 영민에게 오롯이 감정 이입이 됐던 것 같다며 웃는다. 머쓱한 웃음이지만 오랜만에 그는 배우로서 연기적 날개를 제대로 편 듯 홀가분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였다.
 
기분이요? 지금 꽤 홀가분해요. 그럼에도 한 켠에는 남아 있죠. 영민은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글쎄요. 그런 생각도 지금 드네요. 제 딸 유치원 운동회에 참석해서 달라기를 했던 기억이 떠올라요. 아빠들은 아시잖아요(웃음). 그게 뭐라고 몸은 안 되는데 마음만 앞서서 달리다가 꼭 넘어져서 하하하. 내 자식을 위해서 부모로서 보여줄 수 있는 어떤 집념을 드러내고 싶었죠. 평생 공부만 한 영민이 가족을 찾기 위해 어떻게 할까. ‘테이큰속 아빠처럼 멋지게? 아니죠. 하지만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매달렸겠죠. 살리려고.”
 
이범수. 사진/디씨드
 
그는 인터뷰 도중 의외의 답을 전하기도 했다. 물론 전제 조건은 있었다.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작은 영화라는 표현에 거부감은 아니었지만 배우로서 자신이 바라보는 영화에 대한 가치관을 분명히 전했다. 실질적으로 작은 영화이면서 흥행에 대한 기대감이 큰 작품이 아님에도 그가 출연을 결정했던 것은 영화계 선배로서도 어떤 책임감도 아니었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저에 대한 사용법을 다르게 보는 지점에 감동 받았죠. 굳이 말씀 드리자면 이런 장르의 영화가 내게 와서 좋았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신의 한수’ ‘인천상륙작전끝나고 계속 비슷한 캐릭터만 들어왔었죠. 그런데 나도 모르는 내 이면의 어떤 감정을 건드리는 이런 작품이 들어오면 배우들은 뭔가 짜릿함을 느껴요. 제가 그랬죠. 일종의 프러포즈인데. 너무 기뻐요. 그래서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런 지점은 제작까지 영역을 넓히며 활동 중인 이범수에게 다른 지점을 볼 수 있게 했단다. 스스로가 배우로서 고민하고 지내왔던 지점, 영화를 제작하면서 느끼고 고민했던 지점 등이 출국을 통해 조금씩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경험을 하고 있단 것. 또한 그 경험은 성장을 위한 자양분이자 원동력이라고 전했다. 많은 것을 이루고 또 경험하고 있는 이범수의 입에서 나온 단어로선 상당히 생소했다.
 
이범수. 사진/디씨드
 
“20년이 넘게 배우로서 살아오고 있는 제가 최근 영화(자전차왕 엄복동) 제작에도 참여하다 보니깐 시야가 넓어지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그 전에는 모르고 지나갔고 몰라도 됐던 부분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죠. ‘출국을 하면서 그런 점이 한 번에 들어오게 되더라고요. 함께 고생한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고생에도 고맙고 더한 책임감도 느끼게 됐고. 이런 점들을 다 아우르다 보니 저 스스로도 많이 성장한 것 같아요. 너무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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