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시론)1963년생의 가을
2018-11-06 06:00:00 2018-11-06 06:00:00
그는 술잔을 기울이면서 내년에는 명예퇴직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리고 명예퇴직을 하더라도 당분간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경기가 좋지 않다는 설명이 곁들어졌다. 은행원으로 30년 동안 근무한 그는, 한 집안의 장남으로 살아오면서 얼마 전까지는 부모님께 다달이 생활비도 드려야했고, 이제 대학 1학년인 둘째 아들의 뒷바라지도 걱정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자신이 무너지면 한 집안의 경제와 미래도 무너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정신 바짝 차리고 살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진지하게 삶의 보따리를 풀어 놓고 있었다. 길가에 떨어진 낙엽들도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며 그의 얘기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간간히 겨울을 재촉하는 바람이 호프집 문을 두드리던 시월의 어느 날 밤이었다.
 
그는 1963년생. 올해 56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가 은퇴를 앞두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는 대도시에서 태어나 산업화가 한창 진행 중이던 1970년대 초·중반에 초등학교를 다녔던 세대다. 교사(校舍)가 부족하여 오전·오후로 나누어 이부제 수업을 했으며, 고교시절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사건(1979)과 광주민주화운동(1980)에 대한 기억도 또렷한 연배다. 고3때까지 짧은 머리와 교복을 입고 다녔기에, 이른바 스포츠머리와 마지막 교복세대로서의 문화를 함께 추억한다. 그리고 그는 ‘학력고사’ 첫 해인 82학번이다. 대학시절에는 정권을 향해 강하게 항거하던 민주화운동의 주체세력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하는 등, 참으로 많은 크고 작은 사건이 활발하게 일어났던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또한 한창 일하던 시기인 30대 중반에는 IMF사태라고도 불리는 ‘외환위기’(1997년 12월)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고, 40대 중반에는 ‘금융위기’(2008)의 파고가 있었다.  
 
그런 삶의 이력을 가진 계묘년(癸卯年) 출생의 토끼띠인 그가 50대 중반을 넘기고서 이제 곧 은퇴의 시간을 헤아리고 있는 셈이다. 몇 몇 독자들은, 왜 이 시점에 하필 1963년생을 화자로 등장시켰을까. 그의 은퇴를 화두로 꺼냈을까. 의아심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그가 ‘베이비부머(Baby Boomer)’ 세대의 마지막 해 출생자인 1963년생이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 토끼띠의 은퇴를 현실로 받아들여야하기에 만감이 교차하는 것이다.    
 
‘베이비부머’란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부터 1963년까지 태어난 세대를 가리키는 용어다. 각 나라의 사정에 따라 그 연령대가 조금씩 다르지만, ‘전후세대’라는 것과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난 시기’ 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미국의 경우는 1946년 이후 1965년 사이에 출생한 사람들이며, 일본은 1947년부터 1949년 사이에 출생한 세대가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나는 예로 든 그가 1963년생의 평균적 삶의 사례라고 제시할 만한 공식적인 통계는 갖고 있지 않다. 어찌 보면, 굴곡 많은 우리의 현대사에 비추어보면, 그는 비교적 잘 살아온 사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2018년 7월에 발표된 어느 생명보험 회사의 통계에 눈길이 간다. 우리나라 비 은퇴자들이 예상한 본인의 실제 은퇴시기를 57세라고 밝힌 것이다. 공교롭게도 대다수 일반인들이 느끼는 은퇴연령 인구가 베이비부머 세대의 마지막인 1963년생의 은퇴시기와 맞아떨어지고 있다. 그의 은퇴 소식이 좀 더 각별하게 좀 더 현실감 있게 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무원의 정년이 만 60세라고 할 때, 올해 만 60세가 되는 1958년생도, 곧 만 64세가 되는 1955년생도 이제는 은퇴라는 큰 강물로 흘러간다. 어떤 이는 이들을 가리켜, 부모에 대한 효도를 실천하였으며, 자식에 대한 부모로서의 의무를 위해 최선의 삶을 살았던 마지막 세대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거기에는 자식으로부터는 부양받을 생각이 없다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뜻이 내재되어 있다. 우리 사회는 어떻게든 이들의 노고를 품어주고 다독거려주어야 한다. 머지않아 ‘고령사회’의 일원으로 진입하는 이들의 삶에 국가는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가을이 짧아지고 겨울이 일찍 찾아오고 있다. 우리의 계절은 겨울이 빨리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디 1963년생인 그의 가을에도 모든 베이비부머에게도 아름다운 단풍으로 붉게 타오르기를 기대한다.       
               
오석륜 시인/인덕대학교 비즈니스일본어과 교수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