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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 해외에선 이미 철수…"한국지엠도 수순 밟기"
GM, 2014년부터 해외시장 구조조정 본격화…이르면 내년 국내 철수 전망도
2018-10-24 18:08:02 2018-10-24 18:08:02
[뉴스토마토 김재홍 기자] 한국지엠이 연구개발(R&D) 법인 분리를 강행하면서 국내 철수설이 재점화됐다. 제너럴모터스(GM) 본사가 최근 수년간 글로벌 시장에서 잇따라 철수 결정을 내렸던 전례를 감안하면 한국 철수도 이미 수순 밟기에 돌입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한국지엠 측은 부인하고 있지만, 노동조합과 2대 주주인 KDB산업은행이 반발하는 가운데 법인 분리가 추진되면서 의혹은 한층 커졌다.  
 
GM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지난 2009년 6월 미국 정부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미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고 구조조정에 주력했던 GM은 2013년 12월 쉐보레 브랜드의 유럽 철수를 결정했다. 독일과 영국에서 운영하는 자회사 오펠과 복스홀에 집중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직후 호주 홀덴 공장 폐쇄 방안을 발표했다. GM은 호주에서 철수설이 불거졌을 때 '우리는 여기 남을 것이다(We are here to stay)'라고 광고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GM은 2001년부터 12년 동안 호주 정부로부터 25억달러(호주달러, 한화 약 2조원)를 지원받았지만 추가 지원을 거절당하자 공장 폐쇄를 단행했다. 
 
GM은 2014년 1월 바라 CEO의 취임을 기점으로 해외시장 구조조정을 본격 추진했다. 그는 세전 영업이익 10% 기준을 세우고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사업장의 철수를 검토했다. 2015년에는 인도네시아, 태국, 러시아에서 떠났으며 2017년에는 오펠과 복스홀을 PSA그룹에 20억유로(약 2조4000억원)에 매각했다. 2017년 5월 인도에서도 철수했다. GM은 할롤 공장이 위치한 구자라트 주정부에 추가 지원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공장을 폐쇄했다. 당시 할롤 공장 매각 과정을 진두지휘한 사람이 바로 카허 카젬 현 한국지엠 사장이다. 그가 지난해 8월 한국지엠으로 옮기자 국내 철수설이 제기된 이유다. 남아공 시장에서는 일본 이스즈와 합작으로 상용차 사업을 진행하다가 지분 전량을 이스즈에 매각했다. 
 
앞서 GM이 2009년 위기에 처하자 독일 정부는 오펠의 파산을 막기 위해 45억유로(약 6조원)의 자금 지원을 약속하면서 캐나다 마그나로 매각을 추진했다. 그러나 GM은 독일 지방선거 등을 이용해 자체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하며 추가 지원을 요구하는 등 독일 정부를 압박했다. GM이 올해 4월 20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지난 2월 기습적으로 군산공장 폐쇄 방안을 발표한 것과 비슷하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24일 "GM은 미국과 중국 시장을 제외하고는 저수익 시장으로 분류해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면서 "호주 사례와 같이 일자리와 공장 폐쇄를 무기로 자금 지원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구조조정으로 절감한 비용을 자율주행차, 전기차 등 미래 자동차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며 "돈이 안 되는 사업은 접고 미래를 준비하겠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해외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한국지엠도 GM의 글로벌 구조조정 계획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국지엠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누적 적자규모가 2조5000억원을 넘었다. 올해도 영업손실 규모가 1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지엠이 최근 R&D 법인 분리를 강행하자 국내 철수설이 다시 제기됐다. 사측은 지난 4일 이사회, 19일 임시주주총회를 잇달아 열고 '지엠 코리아 테크니컬센터 주식회사' 설립 안건을 통과시켰다. 특히 19일 임시주총이 노조가 주총장을 봉쇄하고 산은 측 관계자가 참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강행돼 논란이 일었다.
 
한국지엠은 연내 임직원 1만3000명 중 연구직 등 3000여명을 신설법인으로 이동시킨다는 계획이다. 반면 노조는 이를 두고 구조조정 및 국내 철수의 사전 단계라면서 강력 반발하고 있다. 노조는 지난 22일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쟁의신청 안건에 대해 행정지도를 결정하면서 총파업은 보류됐지만, 이날부터 청와대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릴레이 노숙 투쟁을 진행하는 등 법인 분리를 막는다는 계획이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카젬 사장이 인도법인 사장을 지냈다는 점에서 구조조정이나 철수설에 대한 의혹을 가질 수는 있다"면서도 "GM 본사에서도 추가적인 자금을 투입하는 만큼 철수설은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설법인 설립은 R&D 분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함이지, 다른 목적은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최근 한국지엠의 행보를 감안하면 빠르면 내년쯤 국내 철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영석 선문대 교수는 "한국지엠이 국내 시장에서 점유율이 낮고 적자 규모는 커지고 있어 GM 입장에서는 빨리 나가고 싶을 것"이라면서 "GM은 이미 해외시장 철수 경험이 많은 데다, 앞으로 제기될 수 있는 법적 쟁점에 대한 검토를 이미 끝내고 예정된 수순을 밟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도 "산은이 한국지엠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자금 지원을 결정했는데 자칫 혈세 낭비가 될 수 있는 상황에 처했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가 지속성장을 하려면 노사 관계가 원만해야 하는데, 한국지엠은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며 "결국 한국에서 떠나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김재홍 기자 maronieve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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