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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 '트럼프 변수'에 탈황설비 투자 안갯속
미국 "선박 연료유 규제 단계적 시행" 압력…해운업계도 스크러버 장착에 관심
2018-10-23 16:25:50 2018-10-23 16:25:54
[뉴스토마토 양지윤 기자] SK이노베이션이 친환경 탈황 설비 신설에 1조원을 투자하는 계획을 내놓은 지 1년 만에 뜻밖의 변수에 직면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오는 2020년 시행 예정인 국제해사기구(IMO)의 황산화물(SOx) 배출 규제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신규 사업에 차질이 생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또 2020년 이후에도 해운업 침체가 이어질 경우 연료비 지출이 늘어난 해운사들의 경영이 악화해 수요 감소가 뒤따를 것이란 시각도 있다.
 
지난 19일 트럼프 미 행정부가 국제해사기구의 선박연료 황 함량 규제 시행을 연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온 뒤 국내외 해운·정유업계의 당혹감이 커졌다. 앞서 2016년 말 IMO는 2020년 1월부터 세계 선박 연료유의 황 함량 기준을 기존 3.5%에서 0.5%로 강화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해운사들은 선박용 경유로 바꾸거나 선박에 탈황장치인 스크러버를 달아 기존 연료인 벙커C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 황산화물 배출량이 거의 없는 액화천연가스(LNG) 연료 추진선을 조선사에 발주하는 것도 대안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11월 SK울산 콤플렉스에(CLX)에 1조원을 투자해 감압 잔사유 탈황 설비(VRDS)를 신설키로 하며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 저가의 감압 잔사유(원유 정제 후 남은 찌꺼기 기름)를 탈황 설비에 투입해 저유황 연료유, 경유, 나프타 등 고부가 제품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은 오는 2020년 7월 VRDS를 완공하면 하루 3만8000배럴 규모의 저유황유를 얻을 수 있다. 시장에서는 선박 연료유 환경규제 강화를 전후로 경유 등 경질유의 수익성 증대를 예상하며 SK이노베이션이 국내 정유사 가운데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것으로 전망했다.
 
SK이노베이션의 울산 콤플렉스 전경. 사진/SK이노베이션
 
그러나 최근 들어 대외 여건이 우호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른바 '트럼프 리스크'가 변수로 떠오르면서 사업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내 소비자 물가상승을 이유로 선박 환경규제의 단계적 시행을 주장하고 있어 IMO의 입장 변화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IMO 규제 연기는 조약에 참여한 국가의 3분의 2 이상 동의가 필요해 현실적으로 바꾸기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이에 미국은 파나마, 라이베리아 등을 상대로 단계적 규제 시행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오는 26일 폐막하는 IMO 회의 결과에 해운, 정유, 조선업계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IMO의 결정은 저유황 연료유 수급에 미칠 영향이 큰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박 연료유 수요처인 해운업계의 동향도 심상치 않다. 세계 1위 컨테이너선사인 덴마크 머스크는 내년 1월부터 운임에 새로운 유류할증료를 적용할 방침이다. 선박 연료유 규제에 앞선 선제적 조치다. 머스크는 2020년 황산화물에 대한 규제로 기존 연료비의 60%에 달하는 20억달러(2조2700억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문제는 머스크보다 작은 해운사의 경우 선복(화물적재) 수급 상황에 따라 연료비 증가분을 운임에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점.
 
특히 현재의 공급과잉 상황이 수년간 이어지면 화주들의 입김이 강해져 중소형 해운사의 재무건전성이 한층 악화할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 일부 해운사들은 탈황장치를 선박에 장착하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선박용 경유의 수요 증가로 벙커C유와의 가격 차가 확대되면, 오히려 선박에 탑재하는 스크러버 수요가 늘어날 수 있어 정유사의 신규 투자를 최적의 방안으로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양지윤 기자 galile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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