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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김영민 줌마 대표 "단순 택배사업 아닌 공유경제 모델 확산 꿈꾼다"
개인이 빠르고 쉽게 택배 보내는 서비스… 홈쇼핑서 일하며 경험한 소비자 불만이 창업 계기
"데이터와 공유경제 기반…물류업계 노동문제, 일자리창출, 대중소기업 협력 풀 열쇠"
2018-10-18 07:00:00 2018-10-18 07:00:00
[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최근 사람들에게 입소문을 타며 인기몰이를 하는 서비스가 있다. '홈픽(HomePick)'이라는 택배서비스다. 사업 모델은 간단하다. 고객이 스마트폰 앱이나 인터넷을 통해 택배를 주문하면 기사가 고객이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가서 받아가는 서비스다. 우체국이나 다른 택배회사보다 시간이 조금 더 빠르고 간편하기는 하다. 하지만 여기까지 보면 딱히 대단한 택배서비스라는 생각이 안 들 수 있다. 하지만 속을 보면 간단치 않다. 우선 명색이 택배서비스인데 대규모 물류창고는 없고 대신 주유소 유휴부지를 활용해 물품을 적재한다. 주유소는 정유업계 맞수인 SK와 GS가 공동 제공한다. 택배 수거는 스타트업 ’줌마‘가, 배송은 CJ대한통운이 맡았다. 홈픽은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넘은 스타트업과 관련업계 주요 기업이 협업해 만든 서비스로 주목받고 있다. 홈픽에서 가장 중요한 고리는 바로 물류스타트업 줌마다. 연결점이 없던 SK와 GS, CJ대한통운은 줌마를 통해 택배사업으로 연결됐다. 홈픽의 시작은 미약했다. 김영민 대표가 "택배를 보낼 때 꼭 우체국까지 가야 하는 불편을 겪어야 할까"라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그 고민이 상생경제와 공유경제라는 접점과 만나더니 업계 주요 대기업이 참여하는 사업모델로까지 발전했다. 김영민 대표는 "각자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려면 필요한 곳에서 적절한 공유가 일어나야 한다"며 "홈픽을 통해 앞으로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싶다"고 말했다.(편집자)
 
김영민 줌마 대표가 택배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10년 넘게 홈쇼핑 회사에서 일한 경험 덕분이다. 당시 김 대표는 NS홈쇼핑에서 물류 관련 팀장으로 일하면서 반품에 대한 소비자 불만을 수차례 경험했다. 그간 홈쇼핑은 상품구매 주문을 접수해서 배송하는 데만 주력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홈쇼핑의 반품 과정은 소비자의 요청을 받아 데이터를 택배사에 보내면 택배기사가 2~3일 이내에 회수하는 시스템"이라며 "반품이 제대로 안 이뤄질 경우 '반품 요청 일주일이 지나도록 왜 아직 회수가 안 되느냐'는 고객 불만이 폭주했고, '답답해서 직접 우체국 가서 반품하고 왔는데 이게 얼마나 번거롭고 힘든지 아느냐'는 항의도 많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오랫동안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개인이 간편하고 빠르게 택배를 보낼 수 있는 시스템에 관해 고민하게 됐다. 동시에 택배업계 사업모델의 문제점도 인식하게 됐다. 그는 "기존 택배사들은 홈쇼핑사나 인터넷쇼핑업체 등을 화주로 모집해 대량으로 상품을 배송하는 것에만 집중했고 개인의 주문을 받아 택배를 수거하고 배송하는 것까지는 신경을 못 썼다"며 "지난해 국내 택배시장 규모가 23억원인데 물량의 90%가 물품을 배송하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고객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신속하게 택배를 수거하고,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동시에 결재도 하게 한다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가 고민 끝에 도출한 아이디어가 바로 홈픽이다. 홈픽의 피커(Picker)가 고객 주문으로부터 1시간 안에 고객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택배를 수거하고 배송하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문제는 피커가 주문으로부터 신속하게 대응하려면 반드시 거점이 필요했다. 그가 생각해 낸 거점은 바로 주유소다. 그는 "물류 측면에서 보면 거점에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했는데, 주거나 사무실 밀접지역과 가깝고 누구나 쉽게 왕래할 수 있어야 하며 거점에 수거된 물품을 집하할 유휴공간이 확보돼야 한다"며 "이 모든 것을 충족한 곳이 주유소"라고 말했다. 시장조사를 마친 김 대표는 지난해 3월 회사를 세우고 주유소 섭외를 위해 SK에너지에 사업을 제안했다. 그는 "SK에너지와 6개월 정도 협의를 하면서 지난해 11월 사업성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이후 SK에너지의 사업지주인 SK이노베이션을 통해 올해 3월 최종적으로 사업화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때 GS칼텍스 쪽에서 함께 하자는 제안이 오더라. 운이 좋게도 주유업계 1·2위인 SK와 GS 모두와 협력, 줌마 입장에서는 훨씬 더 많은 홈픽 거점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부연했다.
 
김영민 줌마 대표. 사진/줌마

올해 6월 서울을 대상으로 시범 서비스를 시작한 홈픽은 9월부터 전국 서비스를 개시했다. 홈픽은 정유업계 대기업인 SK와 GS의 협업, 물류스타트업과 대기업과의 상생경제 구축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시장에서 빠르게 안착 중이다. 김 대표에 따르면 홈픽은 현재 전국 450개 주유소를 거점으로 삼았고, 피커는 500여명을 확보했다. 또 하루 주문 건수 5000건을 돌파했다. 김 대표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빠르게 사업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 같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이 원하는 시간에 물품을 수거하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소비자 불만이 생기지 않도록 프로세스를 세밀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홈픽이 단순히 대기업과 손잡았고 소비자의 니즈를 잘 파악했기 때문에 인기를 얻는 것만은 아니다. 사업을 이끈 김 대표의 철학과 신념이 바탕이 됐다. 택배사업에서 김 대표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데이터'와 '공유경제'다. 그는 우선 데이터에 대해서는 "고객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1시간 이내로 피커들이 물품을 수거하려면, 또 홈픽이 고객에게 정확하고 믿을 수 있는 서비스라는 말을 들으려면 택배에 대한 데이터가 쌓여야 한다"며 "홈픽이 전국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데이터 구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1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고객으로부터 어느 정도 물품이 수거되는지를 계산해 피커들의 구역을 배분하고 있다"며 "신뢰성 있는 데이터를 통해 합리적 가격을 받고 피커들도 일정한 휴식을 가질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가 이처럼 데이터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국내 택배시장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시장조사를 해보니 국내 택배시장은 규모에 비해 물류에 관한 데이터가 제대로 없었다"며 "단순히 많은 주문을 받고, 보다 많이 배송하는 게 최고라는 인식이 일반화됐다"고 이야기했다. 그에 따르면 최근 물류업계에서 대두된 노동여건 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데이터가 없으니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할 수 없고 기존 업체들은 생산성에만 포커스를 맞췄다"며 "택배기사들로 하여금 1톤 택배차량에 무조건 많이 싣고 많이 배송해야 한다고 요구하게 됐고, 물량 경쟁이 과열되면서 배송 단가는 떨어졌고 택배기사 등 노동자의 근무여건도 악화됐다"고 분석했다. 김 대표는 아울러 "일반 택배기사들은 오전 7시에 출근해 저녁 8~9시까지 일하는 게 보통이지만 홈픽 피커들은 오전 8시50분까지 해당 거점 주유소로 출근해서 오후 6시에 퇴근한다"면서 "데이터를 중심으로 소비자의 패턴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피커들의 노동강도를 줄여나가고 동시에 고객에게 만족할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냐 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강조했다.
 
김영민 줌마 대표. 사진/줌마
 
그는 홈픽의 방향성을 공유경제와 결합해 설명했다. 그는 "홈픽은 주유소라는 거점을 SK와 GS에서, 배송사업은 CJ대한통운으로부터 공유받았고, 줌마는 다른 사업자들에게 수거라는 서비스를 공유하고 있다"며 "각자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려면 이처럼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공유해야 하는데, 앞으로 사회가 나아갈 방향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모든 사업구조는 승자독식과 독점을 추구하는 형태였고, 이런 탓에 자원의 왜곡이 심각해졌다"며 "앞으로는 '내가 이 시장을 다 석권하겠다'는 닫힌 경영이 아니라 공유를 기반으로 한 열린 경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생각은 홈픽의 서비스 구조에도 반영됐다. 줌마는 고객에게 물품 수거만 한다. 배송사업까지도 노릴 법도 하지만 배송은 CJ대한통운 몫이다. 김 대표는 "택배서비스가 완벽히 구현되려면 밸류체인과 이해관계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스타트업인 줌마가 사업을 다 맡아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고객이 원할 때 언제든 달려가는 고객맞춤형 서비스는 줌마가 가장 잘하기 때문에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에만 특화하려고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맥락에서 김 대표는 제2, 제3의 줌마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상생경제와 공유경제의 모델이 더 널리 정착될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그는 "줌마는 홈픽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일한다"며 "홈픽과 같은 형태의 서비스가 줌마에서만 그치지 않고 서로 공유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나와야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협업이 활발해지고 그로 인해 고용문제 등이 해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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