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주 52시간 근무제도가 무섭다
입력 : 2018-10-11 16:13:19 수정 : 2018-10-11 16:27:02
주 6일 근무를 한다. 딱 하루 쉬는 토요일도, 명절 연휴와 공휴일인 경우 노트북을 켜두고, 스마트폰을 통해 긴급 뉴스를 살펴보며, 필요하면 기사를 쓰곤 한다. 회사 강요가 아니다. 스스로 정해 지금도 지키고 있는 기자로서의 원칙이다.
 
생각지도 않았던 기자가 되면서, 출발부터 동기들보다 서너 발 뒤쳐졌다. 살아남으려면 명성 높은 선배들은커녕 동기들을 따라 잡는 게 급선무였다. 취재원의 설명을 10%도 이해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 취재를 다녀와서 의미를 찾는데 며칠이 걸리곤 했다. 마감시간은 빛의 속도로 다가오는데, 태평양보다 넓어 보이는 입력창에 기사를 채우지 못해 속 태우는 때가 많았다.
 
그래서 한 것이 자발적 야근이다. 남들보다 부족하니 정해진 업무시간에 그들과 경쟁하려면 전일 저녁 시간에 남아서, 또는 당일 새벽에 남 몰래 먼저 출근해 부족한 것을 보충해야 했다. 취재원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다시 공부하고, 남들은 모르는 기사 소스를 발굴하고, 방송 뉴스 멘트를 들으며 기사를 어떻게 축약하는지 연습했다. 경제연구소와 학회에서 발간한 보고서와 논문은 출력해서 펜으로 밑줄을 쳐가며 읽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런 노력도 어느 순간 한계가 왔다. 아무리 고민해도 팩트의 의미가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쓰던 노트북 파일 보관함을 열어 단어 검색을 해봤더니 보관했던 자료들에서 답을 찾았다. 기쁨은 잠깐. 그동안의 노력이 내 안의 틀을 짜버렸고 그 틀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지난 기사를 다시 보니, 그 내용이 그 내용이었다. 정말로 충격이었다.
 
틀을 깨야 했다. 남는 시간에 서점으로 가서 눈에 띄는 제목의 책이 있으면 무조건 펼쳐봤다. TV홈쇼핑에서 쇼 호스트가 어떤 대화술로 설득을 구하는지도 눈여겨봤다. 취재원의 말을 훔쳐보려고 복화술도 연구하고, 신체언어(바디랭귀지) 책도 읽었다. 재미로 보던 드라마와 영화를 요즘은 어떻게 인물과 사건의 관계를 엮어나가는지 작가의 심정으로 관찰하곤 한다. 그러면서 생각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있다. 그럼에도 이미 정해진 틀을 벗어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확실히 깨지 못하면 자멸은 순식간이다.
 
이런 와중에 주 52시간 근무제도가 시행됐다. 워라벨(일과 가정의 양립)을 표방한다고 하지만, 기자가 생각하는 주 52시간은 좀 다르다. 많은 이들은 구글 같은 글로벌 기업이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엄청난 연봉과 복지에 환호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성과에 대한 엄청난 압박감은 보지 못한다. 소위 ‘잡무’라 부르는 고정업무는 거의 자동화됐다. 창의적인 결과물을 내야 한다. 1년 내내 고민해도 한 건을 내놓기도 어려운 과제다.
 
주 52시간 근무제도의 본질은 근무시간의 축소가 아닌, 창의적인 업무로의 전환이다. 급여를 받는 프로페셔널이라면, 그만큼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주 52시간 근무제도는 그동안 기업들이 보지 못했던 직원들의 능력을 제대로 판별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래서 무섭다. 그렇게 시간을 투자해서 20년 가까이 언론계에서 간신히 버텨왔는데,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민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채명석 산업1부 재계팀장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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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명석

재계를 담당하고 있는 채명석 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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