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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국민주권 개헌운동을 시작할 때
2018-10-08 07:00:00 2018-10-08 07:00:00
임채원 경희대 교수
2018년 9월26일에서 29일까지 이탈리아 로마에서 '현대 직접민주주의를 위한 글로벌포럼'이 열렸다. 한국의 촛불혁명도 이틀간 2차례에 걸쳐 소개됐다. 포럼에서는 미국과 스위스, 스웨덴,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뿐만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아시아에서 온 직접 민주주의 활동가, 저널리스트, 학자 등 500여명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촛불혁명에 관심을 보였다. 5분 분량으로 편집된 촛불혁명 소개 동영상은 참가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참가자들은 "그래서 그 다음은?"하고 잔뜩 기대 섞인 궁금증을 보였다. 2016년 시작된 촛불혁명은 부패한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 대통령과 정부를 탄생시켰다. 인수위원회를 대신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활동 기간 동안 '광화문 1번가'는 국민적 관심을 모았다. 지금도 중요한 정치적 쟁점은 국민들이 청와대에 직접 국민청원의 형태로 제기한다. 하지만 그 다음은 어떤 정치적 변화를 불러왔는가. 2018년 6월 지방선거는 집권여당에 정치적 승리를 가져다줬다. 하지만 그 다음은 무엇인가.

촛불혁명의 제도적 완성은 87년 헌법에서 더욱 진전된 국민주권적 헌법개정으로 일단락된다. 헌법개정안은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에서 초안을 작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통령이 헌법안을 국회에 발의했다. 그러나 정치권이 이해관계에 얽혀 제대로 된 공론조차 형성하지 못하면서 폐기됐다. 앞으로 정치권에서 헌법개정이 다시 제기될 가능성은 아주 낮다. 1987년 민주화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라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확대라고 한다면 촛불혁명의 정신은 그보다 더 확대된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다. 2016년 전국의 광장에는 매주 100만여명의 시민들이 국회와 헌법재판소를 견인하며 새 주권자 민주주의를 실현했다. 주권자 민주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간접 민주제와 시민의 정치참여라는 직접 민주주의가 결합, 근대 대의제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새 가능성을 보여줬다.

촛불혁명은 21세기 세계 어느 곳보다 활기차고 평화적인 주권자 정치혁명으로 소개됐다. 하지만 이번 로마 포럼에 참가한 다른 나라들 역시 비록 우리나라처럼 대규모 광장집회는 아니라더라도 차분히 새로운 혁명의 경과들을 만들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세계 최초로 중앙정부가 직접 민주주의 장관 제도를 신설했다. 물과 환경, 교통, 발전, 인터넷 접근성 등 5가지 정치 아젠다를 직접 민주주의 방식으로 추진하는 '5성 운동'은 2018년 4월 총선에서 제1당이 됐다. 5성 운동은 기존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직접 민주주의 제도들이 도입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직접 민주주의의 확대는 중앙정부보다 지방정부에서 더욱 강력한 정치적 아젠다와 이니셔티브가 되고 있다. 이탈리아 로마와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은 직접 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대표적 도시다. 한국에서는 직접 민주주의의 확대가 희화화되어 포퓰리즘 정도로만 소개되지만, 유럽은 21세기에 대의제 민주주의를 넘어선 새 정치운동의 하나로 발전시켜가고 있다.

비밀투표가 보장된 현대의 직접 민주주의는 1874년 스위스에서 국가 단위로는 처음 국민투표 방식으로 실시됐다. 시민발의 형태의 국민투표는 현재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스위스와 스웨덴은 매년 3~5차례 정도의 국민투표가 일어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대만이 올해 11월24일 9개의 아젠다에 관해 국민투표가 치러질 예정이다. 대만은 대의제 민주주의에 의한 정치개혁이 한계에 부딪히자 국민투표에 의한 직접 민주주의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미국은 캘리포니아주가 국민투표를 점차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직접 민주주의가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시민들의 주권자 의식이 광범위하게 확대되는 것과 맞물린다. 또 전자투표와 디지털 민주주의 등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유권자 운동이 있어서 가능했다. 청와대의 국민청원은 온라인 플랫폼으로 직접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기반이 한국에서도 확인되는 사례다. 시민참여 예산제와 숙의 민주주의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발의에 따른 국민투표가 직접 민주주의 제도적 틀로 소개되고 있다.

한국이 촛불혁명으로 정권교체라는 성과에만 안주하고 있을 때, 다른 나라와 도시에서는 직접 민주주의가 차곡 차곡 확대되고 있다. 직접 민주주의의 확대는 더이상 대의제만으로는 시민들의 다양한 정치적 요구를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공통의 인식에서 비롯됐다. 이제 촛불혁명을 제도적으로 완성하는 의미에서 시민발의를 시작으로 한 국민주권 개헌운동을 전개해야 할 때다. 더이상 정치권에만 그 일을 맡겨둘 수 없다.
 
임채원 경희대 교수(cwlim@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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