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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통합을 위한 '명분'과 지배를 위한 '강요'의 부조화
2018-10-04 06:00:00 2018-10-04 09:03:10
중국공산당은 창당 이후 30여년 간 수차례 위기 상황에서도 한줄기 빛으로 살아남아 대륙을 움켜쥐었다. 각성된 소수로 시작된 중국공산당 혁명이 급기야 대륙을 삼키는 거대한 불꽃이 되었던 것은 민초들의 끝없는 신뢰 덕이다. 이것이 아래로부터, 주변으로부터 금이 가고 있다.
 
내년이면 중국은 고희(古稀)를 맡는다. 그런데 고희의 넉넉함과 여유로움보다는 조급함이 도처에서 목격되고 있다. 특히 중국으로 귀환한 홍콩과 마카오에서 더욱 많이 눈에 띈다. 공자님 말씀에 인생 칠십이면 마음이 가는대로 살아도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중국은 고희, 즉 종심(從心)의 나이에 이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도를 강조하고 강요하기까지 하고 있다. 당이 국가를 이끌고 국가가 인민을 영도하는 체제가 점점 강화되면서 인민의 성원에 기반을 둔 명분에 기초한 정치는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다. 위기가 심화될수록 인민의 속으로 들어가 해결 방안을 찾고 문제의 출로를 찾던 초기 공산주의 혁명 시기의 순수함은 사라지고 지배의 명분은 점차 퇴색돼 가고 있다.
 
중국이 홍콩과 마카오를 지배하는 이유는 이들 지역이 원래부터 중국의 일부였기 때문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중국이 홍콩을 귀속시키는 역사적 명분으로 활용됐다. 150여년 만에 본토에 귀속된 홍콩은 자본주의적 사고에 기초한 생활 방식과 사회주의적 사고에 기초한 사고방식이라는 일시적인 과도기를 거쳤다. 세월이 흘러 2018년 가을 현재 홍콩의 중국 귀환 이후 태어난 젊은이들이 이제 막 성년을 지났다. 이들은 태어나자마자 홍콩 차이니즈였다. 지금 홍콩은 이제 막 사회 진출을 시작한 ‘귀환동이’들의 정체성과 홍콩과 중국의 혼재된 과도기 생활을 경험한 세대의 정체성과 오랜 기간 홍콩 주민이었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한 울타리에 섞여 있다. 중국은 홍콩과 마카오, 타이완의 통합을 염두에 둔다면 우선 홍콩 내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통합해 함께 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중국은 이들에게 단일한 정체성을 강조하고 강요할 뿐이다. 
 
언론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고 검열에 대한 볼멘소리도 들린다. 홍콩과 마카오를 드나드는 공항 곳곳에서는 안전 강화를 명분으로 통과 트랩이 설치되고 안면인식과 지문검사가 진행되고 있고 어떤 곳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 대학 내에서 종교 관련 대책 회의가 자주 열리고 심지어 외국인 교원의 종교 활동에 대한 노골적인 제약도 뒤따르고 있다. 현장에서 이를 보고 듣고 느끼는 사람들은 마치 자꾸 뭔가가 옥죄는 느낌을 갖게 된다고 불만과 불평을 쏟아낸다. 홍콩의 경우 2013년과 2014년 ‘센트럴을 점령하라(Occupy Central)’ 이후 이러한 현상이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중국 내부에서와 달리 중국 바깥에서 벌어지는 중국에 대한 우려와 불만 그리고 숨막히는 답답함은 중국에 대한 이미지를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중국에서 당과 국가가 인민을 지배한다는 지배 정당성은 중국공산당이 정치적, 사회적 지배 명분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인민 내부 착근은 중국공산당의 생존과 발전에도 매우 중요한 요소다. 특히 당과 국가가 인민을 지배하는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명분을 획득하지 못하면 지배 정당성을 잃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눈을 중국 밖으로 돌려보자. 홍콩과 마카오, 타이완 등 중화권 지역은 중국이 주창하는 통합된 중화를 건설하는데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지역들이다. 이들 지역은 인민 내부의 절대적 신뢰에 기초한 깊이 있는 지지라는 중국과 중국공산당의 통치 정당성을 획득하기 매우 어려운 지역이다. 현대 중국과 체제가 다르고 걸어온 역사가 다르고 사고가 다르고 생활 방식이 달라서다. 통합을 이루려는 이들 지역에 대한 중국의 접근은 새로운 사고를 요한다.
 
그러나 최근 벌어지고 있는 홍콩과 마카오 내부의 움직임, 특히 중국 당국에 대한 신뢰의 저하와 반감의 증가는 중국의 지배 정당성의 근본이 밑에서부터 흔들린다는 증좌다. 중국이 대륙에서 하던 방식대로 인민을 대하는 것이 이들 지역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대륙 방식을 고집하거나 혹은 대륙 방식이어야 함을 강조한다면 통합 ‘명분’은 없고 지배 ‘강요’만 남게 된다. 그 자리에는 명분은 사라지고 분노만이 싹트게 된다. ‘인생 칠십이면 마음이 가는대로 살아도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 없다’는 여유로움과 느긋함이 중국에게 필요하다. 지배 명분은 강요한다고 해서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양갑용 성균관대학교 성균중국연구소 연구실장(jiay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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