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올해 추석 극장가는 그 어느 때보다 장르적으로 편중된 경향을 보였다. ‘물괴’ ‘안시성’ ‘명당’ 세 편이 동시기에 극장가에 출격했다. 이들 영화에서 가장 생경한 캐스팅을 꼽아봤다. 대동소이하겠지만 대부분 ‘명당’ 속 흥선대원군을 연기한 배우 지성을 꼽을 것이다. 그 동안 안방극장에서 자주 극화됐던 조선 말의 시대상이 ‘명당’의 배경이다. 지성이 연기한 ‘흥선대원군’은 아직 권력을 잡기 전 이른바 ‘상가집 개’로 불리던 ‘흥선군’ 시절의 모습이었다. 몰락해가는 왕가의 자손이다. 사실 권력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던 이름뿐인 왕족이다. 이 배역은 그 동안 중후하고 카리스마 넘치던 중견 배우들이 도맡아오던 인물이다. 분명히 유약해 보이고 또 분명히 존재감에서 뒤 떨어질 수 밖에 없는 배우 지성이 이 배역을 맡았다. 물론 영화를 본다면 이 같은 생각의 잘못된 지점을 관객들은 저마다 잡아낼 것이다. 이제 ‘흥선대원군’의 라인업에 배우 지성도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됐으니.
지성.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언론 시사회가 열리고 며칠 뒤인 이달 중순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지성은 영화 ‘명당’ 속 ‘흥선군’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대중들이 익히 짐작할 수 있는 매너 좋고 조금은 유약해 보이고 또 일부가 그를 바라보는 지극히 애처가스런 모습의 지성만이 남아 있었다. 마초적인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권력을 쫓는 야망과 욕망으로만 이뤄진 ‘명당’ 속 ‘흥선군’의 모습은 찾아 보려 해도 찾을 수 없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너무 좋게 봐주신 것 같아서 너무 감사 드려요(웃음). 전 제가 부족한 걸 분명히 알고 있어요. 그래서 이번 ‘명당’ 속 ‘흥선군’ 역할에도 많은 부담이 있었죠. 다행히 흥선대원군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가 ‘명당’이 아니고 다양한 사람들의 속내를 엿볼 수 있는 얘기였기에 저도 그저 곁다리로 하나 걸치면 되겠다는 생각에 참여했을 뿐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대작 영화들이 몰려서 주변에서 우려도 많은 데 올바른 선의의 경쟁이 이뤄졌으면 좋겠고 모두가 사랑 받은 결과를 얻기를 바랄 뿐이에요.”
누구라도 궁금했고, 누구라도 물어보고 싶었고 지성 본인도 의아했을 것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명당’ 속 ‘흥선군’은 아직 권력을 잡기 전, 그러니깐 ‘흥선대원군’이 되기 이전의 모습이다. 자신을 숨기고 장동 김씨(실제 역사 속 안동 김씨) 일가에게 ‘상가집 개’로 불리는 굴욕을 당하면서도 가슴 속에 칼을 품고 사는 이중적이면서도 야망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다. 물론 지성도 과거 드라마에서 이런 색채의 역할을 맡아 본 경험이 있다. 하지만 ‘흥선’이란 이름은 무게감부터가 분명 다르다.
지성.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아유 그럼요. 당연하죠. 글쎄요. 전 작품을 결정하고 나면 주변에 ‘어떨 것 같냐’고 물어보는 성격이 아니에요. 그저 매니저에게 정도만 물어 보는데(웃음). 어울릴 것 같다고 해서 뭐 용기도 얻었죠. 하하하. ‘명당’ 속 ‘흥선’은 권력을 잡기 이전 젊은 시절의 모습이잖아요. 자료가 많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상상을 해봤죠. 그렇게 모욕을 당하면서 처절하게 살아온 이유가 뭘까. 어떤 절박함이 있지 않았을까. 그 점에 중점을 둬 봤어요. 그랬더니 ‘흥선’의 속내가 좀 이해가 되기 시작했어요.”
왕가의 몰락한 일원으로 살아가면서 ‘흥선’은 ‘삶에 대한 가치관이 분명히 바뀌지 않았을까’란 상상을 해봤다는 지성이다. ‘그것이 열등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을까’란 상상까지 더해졌단다. 결국 이런 점은 ‘명당’ 속 후반부로 갈수록 같은 대의를 품고 있던 박재상(조승우 분)과 대립할 수 밖에 없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런 점은 ‘명당’에 대한 호불호를 낳는 지점이기도 했다. 지성 역시 이 지점에 대해 조심스럽고 고민스러웠던 점을 토로하기도 했다.
“’명당’ 자체가 실제 역사적 흐름만을 그린 게 아니라 상상이 많이 덧입혀 졌잖아요. 흥선이란 인물의 일대기를 그린 게 아니라 ‘명당’을 이끌어 갈 동력의 주요 포인트만 다뤄지기에 연기하기가 쉽지는 않았죠. 후반부로 갈수록 납득하기 힘든 지점이 있다는 지적도 알고 있죠. 그래서 ‘흥선’의 절박함이 좀 더 표현됐더라면 이란 아쉬움이 있기는 해요. 하지만 그게 정답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아요. ‘명당’은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는 작품이 아닌 픽션이기에(웃음).”
지성.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그는 인터뷰 내내 자신을 노력형 배우라고 표현했다. 그를 일고 있고 또 그의 연기를 봐온 대중들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지점이다. 잘생긴 외모와는 달리 유약해 보이는 이미지는 분명 배우 지성에겐 약점이자 단점이다. 그럼에도 여러 작품에서 스펙트럼이 넓은 연기를 선보여 왔다. 또 그 역할을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왔다. 그는 충분히 자신의 노력을 더하고 있었다.
“전 제가 능력이 출중하지 못한 배우란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어요(웃음). 사실 콤플렉스 덩어리에요. 예전 데뷔 초기에는 현장에서 ‘넌 연기하지 마라’는 소리부터 더한 막말도 많이 들었어요. 하하하. 그만큼 연기를 전 못했어요. 좀 힘든 가정사도 있었고. 사실 그 힘들었던 가정사가 절 버틸 수 있게 도와줬던 것 같아요. 거기에 아내인 보영씨가 절 잡아줬죠. 그리고 아빠가 된 지금은 제 가정이 절 노력하게 만들어 주고 있어요. 이젠 배우로서의 올라섬보다는 가정이 제일 중요해요. 그래서 포기하고 놓는 지점이 많아요. 그러니 더 편해지고(웃음) 물론 노력은 계속하고 있고요.”
연예계 최고 애처가 중 한 명인 지성이다. 인터뷰 동안 ‘노력’이란 단어와 함께 아내 이보영에 대한 사랑을 끊임없이 언급했다. 그리고 항상 웃고 또 웃는 표정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모든 것이 행복하고 또 즐거운 시간이란다. 아빠가 되고 포기를 알게 되면서 스스로를 옥죄던 것에서 벗어난 느낌이었다. 보다 편안하게 연기를 바라보고 작품을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된 듯 하다. 영화 ‘명당’ 속 ‘흥선’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일상에서의 아빠이자 남편 지성이다.
지성.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예전의 어려웠던 가정사가 없었다면 지금의 배우 지성은 정말 없었을 거에요. 그래서 그 시절도 저에겐 감사해요. 지금의 배우 지성과 아빠 지성, 남편 지성을 만들어 준 원동력이니. 이젠 많이 모든 것을 내려놨지만 조금만 아주 조금만 욕심을 부린다면 대중들에게 사랑 받는 배우가 되고 싶은 바람이 아직은 있어요. 20년 넘게 배우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건 하나에요. 내 진심을 전하는 방법은 말도 행동도 아닌 연기뿐이란 걸. 크게 더 바랄 것도 없어요. 지금처럼 딱 지금처럼만 저를 필요로 하는 배역에 즐겁게 제가 쓰여지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아가는 거죠(웃음)”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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