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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태의 경제편편)금융위기 10년, 세계는 더 험악해졌다
2018-09-19 06:00:00 2018-09-19 06:00:00
지난 15일로 세계 금융위기가 일어난지 만 10년이 지났다. 당시 세계적인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표면화된 금융위기는 발달된 금융시스템에 편승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확산됐다. 주가는 폭락하고, 여러 금융사들이 문을 닫거나 제3자에 인수됐다. 세계적인 은행 씨티은행과 자동차회사 제너럴모터스(GM)도 미국 정부의 지원으로 간신히 연명했다. 이로 인해 ‘아메리카소비에트연방’이라는 조어가 한때 나돌기도 했다.  
 
위기가 터지자 당시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 국은 재정정책과 대폭적인 금리인하, 양적완화를 통해 거액의 자금을 살포했다. 각 국의 기준금리는 연 0% 또는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 결과, 세계 경제는 간신히 더 이상의 추락은 모면했다. 그렇지만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여전히 저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각 국 중앙은행들은 양적완화를 통해 사들인 자산을 아직도 상당히 보유하고 있다. 양적완화를 그만두는 순간 경기는 다시 후퇴할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다. 말하자면 오늘날의 세계경제는 금융완화를 통해 공급된 ‘돈의 바다’에 떠도는 조각배와 비슷하다. 그 결과 대부분의 나라들이 부동산가격 폭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금융위기 초기 수습과정에서 세계 각 국은 협조적인 자세를 보여줬다. 보호무역을 자제하고 국가 간 통화교환협정 등을 체결하는 등 위기를 다스리기 위해 함께 힘썼다. 이제 그런 협조 분위기는 실종됐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 등장 이후 보호주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미국은 높은 성장을 구가하고 있음에도 ‘아메리카퍼스트’를 강행하고 있다. 마치 오디세우스의 휘하 장병을 잡아먹으려던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와 흡사하다. 게다가 미국은 홀로 금리까지 올리고 있다. 올해 안에 2차례 더 올리고 내년에도 더 인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터키와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신흥국들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다시 말해 금융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개방경제 국가인 한국도 세계 금융위기의 폭풍을 피해갈 수 없었다. 주가가 크게 떨어지고 환율은 급등하는 등 큰 동요를 겪었다. 침체된 경제를 회복시키겠다고 공언하면서 집권한 이명박정부로서는 적지 않게 당황스러웠다. 위기 극복은 온 국민의 힘이 있어 가능했다. 무역 1조달러 돌파라는 기념비까지 세웠다. 최근에는 국제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최상급에 버금가는 신용등급을 부여받고 있고, 국가부도위험 수치도 역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참으로 잘 견뎌왔다고 하겠다. 
 
한국이 버틸 수 있었던 요인은 몇 가지 꼽을 수 있다. 첫째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겪고 극복한 경험이 큰 밑천이 됐다. 외환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유사한 위기가 닥쳤을 때의 대응방법을 체득했고 교훈도 많이 얻었다. 그런 경험적 자산과 교훈이 있었기에 한국은 당황하지 않고 버텨낼 수 있었다. 인구대국 중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 우리에게 큰 시장이 되어준 것도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금융위기 10년을 거치면서 한국 경제의 모습은 크게 일그러졌다. 사실 한국도 다른 나라들처럼 금리를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낮췄다. 환율도 정부 정책과 함께 남북 대결 심화에 따라 높은 수준으로 유지돼 수출을 도왔다. 경제성장 여건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국 경제는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 성장률은 2011년 이후 2∼3%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간신히 3.1%의 성장률을 달성했지만, 올해는 3% 유지 여부가 확실치 않다. 한국 경제의 성장 방정식이 잘못됐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게다가 장기간 유지한 저금리 기조도 이제는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이 금리를 앞장서 올림에 따라 한미간 금리도 역전됐다. 금리 격차가 1.0%포인트에 가까워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실제로 그렇게 커진다면 외국인 자금 유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국내 금리도 올려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국내 경제가 여전히 부진하기 때문에 한국은행은 결단하지 못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가 처음 일어났을 때보다 세상은 오히려 더 험악해졌다. 국가 간에 약육강식의 논리가 더욱 힘을 발휘한다. 이럴 때 믿을 것은 자기 자신 뿐이다. 한국은 개방경제 국가이므로 수출과 국제수지 흑자 유지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원활한 선순환 구도와 견고한 경제 토대를 재구축할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 그래야 바깥에서 어떤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동요하지 않고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10년의 흐름은 바로 이런 숙제를 남겼다. 한국 경제의 앞날은 이 어려운 숙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달렸다.
 
차기태 언론인 (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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