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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태의 경제편편)인터넷은행 규제완화의 조건
2018-09-05 07:00:00 2018-09-05 07:00:00
말많던 인터넷전문은행 지분규제 완화 문제가 일단 보류됐다. 지난달 30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30여개의 민생법안은 처리됐지만,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은 통과하는데 실패했다.
 
이날 규제프리존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상가 임대차보호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로 국회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인터넷은행법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7일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혁신 필요성을 강조하며 국회 처리를 요청한 바 있다. 이어 16일 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 간 오찬회동에서도 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문 대통령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안에서도 인터넷은행법에 대한 반대의견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인터넷은행에 대한 재벌의 침투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아직 견고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문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여당 지도부가 추진하는 규제완화란 인터넷은행에 대한 산업자본의 지분제한을 대폭 높이자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재벌이 인터넷은행을 자회사로 삼을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재벌의 금융지배에 대해서는 이제 이론적인 논란이 사실상 필요없다. 지난날의 경험이 말해준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의 종금사 부실, 2003년 신용카드 부실사태, 최근의 동양생명 사태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는 그 해악을 여러 차례 겪어왔다. 또 이명박정부 시절 무모하게도 은행에 대한 산업자본의 지분한도를 10%까지 늘려준 일이 있었다. 그렇지만 박근혜정부 시절 경제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면서 다시 줄어들었다. 요컨대 은행에 대한 재벌의 지배를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지난날의 경험에서 우러난 ‘경험적 진리’인 셈이다. 
 
현재의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야당 시절 그런 이치를 따랐다. 지난해 집권한 후 최근까지도 그랬다. 그런데 최근 경제상황이 다소 어려워지고 고용상황이 악화되면서 표변했다. 규제완화를 명분으로 인터넷은행 지분규제까지 풀어버리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런 시도가 지난달 국회에서 일단 좌절됐지만 멈출 것 같지는 않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30일 기자회견에서 "당내에서 의견 수렴과 당론 결정 과정이 필요하다"며 정책 의원총회를 필요하면 하겠다고 말했다. 아마도 반대의견 설득작업을 더 벌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31일 열린 당정청 전원회의에서는 박영선 의원이 반대의견을 다시 개진했다. 그렇지만 ‘원팀’을 강조하는 최근 정부여당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결국은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정부 여당의 지도부가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지분규제 완화를 강행하고 싶다면 그 부작용과 위험을 막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제시돼야 한다. 이를테면 대주주에 대한 자격심사를 엄격히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7월 규제개혁위원회는 금융사 대주주에 대한 적격성 심사 강화가 규제완화에 역행한다면서 퇴짜놓은 바 있다. 규제개혁위원회의 그런 결정 자체가 우선 시대착오적이다. 그리고 재벌 금융사가 저지르는 금융자원 독식이나 시장교란, 소비자 권익 침해 등 여러가지 문제를 외면한 결정이었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 강화는 재벌 금융사의 횡포와 부작용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규제위가 금융당국을 사실상 무장해제시킨 것이다. 
 
그렇게 금융당국을 무장해제한 다음 재벌금융사의 해악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물론 정부여당이 규제장치를 일부 두겠다고 공언하지만, 진실해 보이지 않는다. 
 
노조 추천 이사제를 도입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은행 경영진이 무모한 결정을 하지 못하게 사외이사가 견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대부분의 경우 사외이사가 ‘고무도장’ 노릇만 해왔다. 인터넷은행의 규제가 풀리면 다른 금융사에 비해 더 책임있는 사외이사의 견제가 요구된다. 아마도 그런 역할은 노조추천 이사가 1당백의 정신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노조추천 이사제에 대해 금융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금융사들이 지금까지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왔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도입을 가로막아 왔다. 지금 인터넷은행에 대한 지분규제를 완화하려는 마당에 그런 보완장치마저 거부해서는 곤란하다.   
 
은행 지분규제 완화는 경험적 진실과 상식에 어긋나는 일임이 분명하다. 그 부작용과 해악을 막을 장치를 확실히 하지 않으면 훗날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금융시장과 국가경제에 어떤 해악과 동요가 일어날 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견고한 보완대책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제우스 신이 거인족 티폰의 도전을 막기 위해 그의 몸을 시칠리아의 아이트나 산으로 꾹 눌러둔 것처럼. 그런 다음 규제완화를 추진해도 늦지 않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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