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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어둠에서 ‘빛’을 보는 꿈…장미여관 드러머와 나눈 '진심'
2018-09-13 16:37:26 2018-09-14 10:43:45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인디씬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를 가득 메우는 대중 음악의 포화에 그들의 음악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지난 6일 밴드 장미여관 드러머의 임경섭이 대중에게 꼭 공개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서 메시지를 보내왔다. 
 
“오늘이 아니라면 두 번 다시 용기를 낼 자신 없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와 핏줄이나 다름없이 가까이 지내는 소수의 사람들만 알고 있는 아주 개인적인 사연입니다. 저는 장애 4급 시각 장애인입니다.”
 
‘망막색소변성증’이란 불치병을 그는 앓고 있다. 시력이 점점 떨어지다 끝내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되는 병이다. 밴드에 한창 재미를 붙이던 스무살 무렵 ‘인지’했던 이 병이 최근엔 점차 심화되고 있다. “요즘 부쩍 다리, 팔에 알 수 없는 멍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여기저기 저도 모르는 사이 무엇인가에 많이 부딪혔다는 거지요. 부쩍 걱정이 늘어 잠을 못 자는 일도 늘었습니다.”
 
밴드 장미여관 드러머 임경섭. 사진/조은채 뉴스토마토 인턴 기자
 
라이브와 방송활동이 잦은 장미여관 활동을 하면서 이 때문에 수많은 오해들도 쌓여가기 시작했다.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그의 요청에 속 깊이 자리하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12일 장미여관의 첫 공연이 시작된 곳이라는 합정역 인근 카페 ‘노피디네콩볶는집’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제 SNS로만 알리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오해가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그 해묵은 오해들을 풀고, 널리 알려야 저 역시 속이 시원해질 것 같았습니다.”
 
학창시절만 해도 ‘망막색소변성증’이 장애임을 그는 몰랐었다. 가로등이 별로 없는, 달동네에서 살던 그는 온 세상이 그저 ‘어두운 잿빛’이며 모두가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벽을 짚고 움직이는 게 그 때부터 습관이 됐어요. 어느 날 친구가 벽을 왜 짚고 가냐, 했을 때 갸우뚱 하긴 했지만 심각하게 생각은 안 했었거든요.”
 
절망에 휩싸이고 만 건 스무살 시절이었다. 군 신체검사를 받던 그는 눈 문제가 장애이며 불치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장미여관 말고 다른) 밴드를 하고 있던 때였는데 어마어마한 두려움이 오기 시작했어요. 지하실 악기도 다 부숴버리고, 하루 종일 벽만 보고 있기도 했어요. 심적으로 견디질 못 했었던 거죠.”
 
임경섭이 보내준 정상인(왼쪽)과 망막색소변성증(오른쪽)의 시야 차이. 사진/망막색소변성증 협회
 
어머니의 등쌀에 못 이겨 다시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할 수 있는 건 드럼 뿐이니 관련된 일을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7080클럽부터 서울 내 각 구청의 문화센터 등을 돌며 드럼에만 매진했고, 입소문도 꽤 나면서 다시 일어설 힘도 얻었다. 2011년에는 대학동창이었던 강준우를 서울에서 만나 육중완을 소개 받았고, 셋은 장미여관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실제 라이브 연주를 많이 하는 장미여관의 특성상 활동 중 어려움도 많았다. “드럼 같은 경우 (공연 중) 여러 팀이 같이 사용하면 세팅 시간이 더 길어집니다. 연주자마다 신체조건이 다르기에 최소 6개 이상의 스탠드 높이를 맞춰야만 무리 없이 연주를 할 수 있습니다. 저처럼 시력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세팅 시간이 배로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한 손으로 후레쉬를 비춰가면서 스탠드 나사를 조이고 세팅을 해야 하니까요.”
 
장미여관 드러머 임경섭. 사진/조은채 뉴스토마토 인턴기자
 
어두운 무대 뒤 환경 탓에 그는 음악 동료들, 방송 관계자들과 사이도 소원해졌다. “제 평소 성격이 낯을 좀 가리고 사교적인 성격은 아닙니다. 내성적이라고 한다면 그럴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인사를 안받는다거나 차갑다는 세간의 오해가 들려올 때마다 사실이 아니니 힘들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모든 오해를 풀고 싶었습니다.”
 
‘영원’이 없는 초시계 같은 삶이라 생각하면 그는 자꾸만 마음이 조급해진다. “‘점점 악화되는 병이다보니 더 나빠지기 전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 전에 해봐야 하는 것들에 대한 생각도 있고요. 여행도 다니고 그런 소소한 생활에 대한 것들 말이에요.”
 
“이번 고백은 사실 장인, 장모님께는 말씀 드리지 못한 사실이에요. 이번 일이 알려지고 걱정하실 수는 있겠지만 와이프가 괜찮다고, 신경쓰지 말라고 해서 알리겠다고 결심했어요.”
 
컴컴한 어둠 속에 있는 듯하지만 그는 찬란한 빛을 향해 나아가려 노력 중이다. 평소 좋아하는 싱어송라이터 이규호처럼 ‘진정성 있는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다. 
 
“제가 ‘세상 밖으로’라는 노래를 듣고 많이 울었어요. 참 많이 와 닿았거든요. 혼자 만의 세상에 있다가 밖으로 나가려 할 때,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감정’에 관한 곡인데요. 두려움 속에서도 주변 사람(그게 팬일 수도 가족일 수도, 내 안의 모습일 수도 있지만)을 통해 이겨나간다는 내용이에요… 저도 그런 진정성이 담긴 음악을 해야겠단 생각이 있어요.” 
 
장미여관 드러머 임경섭. 사진/조은채 뉴스토마토 인턴기자
 
자신이 그리는 진정성 있는 음악을 그는 여행지에 빗대 설명해줬다. “신혼여행으로 하와이를 간 적이 있어요. 그 날은 구름이 적당히 낀 날이었어요. 약간 어두운 그 사이에서 한 줄기 해가 새어 나오는데 너무나 아름다웠던 기억이 나요.”
 
“저도 제 눈 얘기로 빛에 대한 가사를 쓰고 있는 곡이 있어요. 어두운 상황에서 그 한 줄기 빛처럼 희망을 갖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겠다는 내용이에요. 내 가슴으로 느껴온 것들, 내 이야기를 음악으로 표현할 생각이에요. 그게 10년이 걸릴지도 모르겠지만요. 차근차근.”
 
인터뷰를 마친 후 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제 주제가 무거운 편이라 부담을 드린 게 아닐까 걱정이 되고 그렇습니다.” 
 
“다음에는 밝은 내용으로 뵐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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