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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정성장 "중 비핵화 전략·미 보상리스트 부재 속 한국, '합의창출자' 역할해야"
"핵신고 리스트-종전선언 교환, 북 입장에서 비현실적…미국 양보 필요로 해"
"방북 전 미국과 사전조율 …정부 차원 북핵 TF 만들어야"
2018-09-17 06:00:00 2018-09-17 06:00:00
[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미 백악관은 지난 10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요청했으며 이미 조율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북한은 올해 정권수립 70주년 기념일(9·9절) 행사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등장시키지 않음으로써 미국과의 대화의지도 분명히 했다. 지난달 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3차 방북 취소로 한때 경색됐던 북미관계가 또다시 급변하는 중이다. 올해 10월이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변수는 남아있다. 북미 양국은 북한 내 핵시설 신고와 종전선언의 교환 순서·방식을 놓고 여전히 의견차이를 보이고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 나아가 주도적으로 합의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정성상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지난 10일 경기 성남 세종연구소에서 기자를 만나 “중국은 북한에 대한 ‘적극성의 부재’ 문제가 있으며 미국도 북한에게 무엇을 줄 것인지에 대한 리스트는 갖고있지 못하다”며 “한국 정부가 중심을 잡고 미국과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와 타협점을 찾을 수 있게 이끌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는 기본적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한다고 언급한 정 본부장은 올해 말 북한이 보유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중 50% 해외반출을 시작으로 하는 구체적인 비핵화 일정표도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각 단계별로 상응하는 보상을 국제사회가 제공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9.9절 시진핑 방북 무산으로 북한 실망 커" 
 
지난 9일 북한의 정권수립 70주년(9·9절) 기념식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중국 측 특별대표로 방북한 리잔수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장을 극진히 환대했다. 북한은 10일자 노동신문에 김 위원장과 리 상무위원장이 주석단에 올라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다수 게재하면서 “(중국)대표단의 방문은 불패의 조중친선을 다시 한 번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 위원장 일행이 귀국 전 연회도 성대하게 마련했다. 이를 두고 많은 이들이 ‘북중 밀월을 과시했다’는 해석을 내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의 생각은 다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불발로 인한 북한의 실망감이 크다는 것이다. 정 본부장은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 세 차례나 중국을 방문해 시 주석을 만났고, 북한으로서는 올해 가장 중요한 사건이 정권수립 70주년 기념일임에도 시 주석이 오지 않은데 대해 나름대로 배신감도 느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5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우리 측 특사를 더 환대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미 지난달 말 중국 측 인사들이 시 주석의 방북을 준비하기 위해 사전에 북한에 들어갔지만 현실화되지 않았다는 말도 있다. 시 주석 방북이 불발된 이유를 정 본부장은 “(중국의) 북한에 대한 전략부재”로 설명하며 “자신(시 주석)이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결과를 항상 초래하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미국에 대해서도 정 본부장은 “북한에게 요구할 리스트는 갖고 있지만 북한에게 무엇을 줄 것인지 보상의 리스트는 갖고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미국도 제대로 된 전략을 가지고 북한과의 협상에 임한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주장·요구에 근거하다 보니 협상이 쉽사리 진행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노동신문은 지난달 26일 미국의 선 비핵화 요구를 ‘부당하고 강도적’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중국에게 큰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고, 미국의 협상전략 부재 속 결국 한국 정부가 중심을 잡고 북미 양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오고 타협점을 찾을 수 있게 해야한다는 것이 정 본부장의 주장이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이 말하는 비핵화가 ‘북한의 비핵화’라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가 단순히 중재자에 머무는 것이 아닌 주도적으로 합의점을 이끌어내는 ‘합의창출자’ 역할을 해야한다”며 “좀 더 현실적인 목표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 북미 양국이 모두 수용할만한 수준의 비핵화 방식을 제안하고 설득해 새로운 합의점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중국과 미국의 비핵화 전략부재 속 한국이 ‘합의창출자’ 역할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사진/뉴스토마토
 
"2020년까지 연도별 비핵화 방안 제시해야" 
 
이와 관련 ‘북한이 핵 신고 리스트를 제출하면 종전선언이 가능하다’는 식의 의견이 나오는데 대해 정 본부장은 “비현실적인 판단”이라고 선을 그었다. “핵 신고 리스트를 북한이 제출했다는 것은 북한이 갖고 있는 모든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다. 시작부터 절반 정도는 미리 양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다음 협상에서 북한은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그 모든 것을 종전선언 하나랑 바꾸겠다고 했을 때 북한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대신 정 본부장은 “북한으로부터 핵 신고 리스트를 받아내기 위해서는 미국도 상당한 정도의 양보, 예를 들면 경제제재 완화 혹은 초기단계 외교관계 수립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내부 강경파 반발 등을 고려했을 때 미국이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어보인다.
 
이와 관련 정 본부장은 트럼프 대통령 현 임기 내 북한의 핵무기·핵위협 제거와 원자로·재처리시설의 영구 불능화, 우라늄 농축시설 해체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북한의 ICBM만 우선 해외로 모두 반출해도 미국에 대한 핵억지력이 사라지게 됨을 감안한 것이다. 운반수단이 없으면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더라도 미국을 공격할 수가 없으며, 한국·일본을 공격하기도 어렵다는데서 착안했다. “북한이 공개하는 수량을 기준으로, 1단계로 올해 말까지 북한이 보유한 ICBM의 50%를 해외로 반출한다. 2단계로는 내년 여름까지 나머지 50%도 반출하며, 3단계는 2019년 말까지 북이 보유한 핵탄두의 50%를 해외로 반출한다. 마지막으로 4단계에서는 2020년 여름까지 나머지 50%의 핵탄두를 반출하면서 원자로와 재처리시설을 영구 불능화하고 우라늄농축시설을 해체한다. 이 과정에서 각 단계별로 국제사회가 북한에 상응하는 보상을 제공하는 방안을 고려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이 지난 2월7일 서울 광화문 달개비에서 열린 세종프레스포럼에서 발표 중인 모습. 사진/세종연구소
 
북한 비핵화 테스크포스(TF)구성 필요
 
올해 말까지 북한이 1단계를 완료하면 미국은 정치적 선언 수준의 종전선언을 수용하고 우리 정부가 올해 내 남북 철도·도로 착공식을 진행할 수 있도록 대북제재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종전선언을 하게 되면 한미동맹이 약화되거나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김 위원장이 직접 “종전선언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것 아니냐”며 선을 그은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의 사전조율은 필수다. 18~20일 3차 남북 정상회담 전 미국과 상당한 정도의 조율을 하면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합의 내용은 높은 실행력을 갖게 된다. 반면 그렇지 못한 경우 향후 미국과의 조율 과정에서 또 다른 마찰이 생길 수 있다. 정 본부장은 “한국 정부가 정말 치밀한 전략을 수립해서 가야하는데 과연 어느 정도에 있는지 모르겠다”며 “때로는 정부가 현명하고 스마트하게 움직이지만, 어떨 때는 그렇지 못하다는 느낌을 줄 때도 있다”고 우려했다. 정 본부장의 우려가 쓸데없는 걱정이기를 바랄 뿐이다.
 
정 본부장은 정부 차원의 ‘북한 비핵화 태스크포스(TF)' 구성 필요성도 제기했다. 안보전문가, 핵 전문가들의 치열한 토론을 거쳐 실현가능한 비핵화 방식과 북한이 이를 수용할 경우 제공할 반대급부, 대북제재 중 무엇을 풀어주는게 바람직한지 등을 합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중국 내에 정교한 대북 협상전략이 없다는 정 본부장의 인식이 맞다면, 우리 정부가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필요한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차원에서 필요한 조치로 보인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이 지난 3월8일 강원도 홍천 소노펠리체에서 열린 제23차 한일정책대화에서 발표 중인 모습. 사진/세종연구소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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