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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중화민족주의의 허상과 우리 민족끼리
2018-09-10 06:00:00 2018-09-10 08:30:39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은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유치한 중국이 세계인과 중국인에게 제시한, 잘 지어낸 감성적인 구호였다. 전신은 ‘하나의 중국’이다. 신중국 건국 후 마오쩌둥과 뒤를 이은 지도자 덩샤오핑은 이를 외교정책의 근간으로 삼았다. 타이완을 중국의 일부로 간주, 중국과 수교하는 국가에 타이완과 단교할 것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면서 타이완 고립에 나선 것이다. 우리 정부 역시 중국과 수교하면서 오랜 우방이었던 타이완과 단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의’ 시리즈 결정판은 시진핑 주석 체제 들어 더욱 강화되고 있는 중화민족주의다. 그 핵심은 ‘중국몽’이다. 시 주석 스스로도 지난 3월 폐막된 제 19차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중국의 부흥은 중화민족의 최대 염원”이라며 미국을 능가하는 초강대국 건설을 주장한 바 있다. 중국몽이 사실상 중화패권주의라는 점을 시사한 셈이다. 초강대국 미국에 버금가는 중국의 부상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미국과의 갈등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지점에서 시 주석이 언급하고 있는 ‘중국의 부흥이 중화민족의 최대염원’이라는 주장은 실체가 없는 공허한 허상이라는 점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중국 90%가 넘는 한족과 55개 민족(소수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복합국가라는 것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중국의 55개 소수민족에는 독립갈등을 겪고 있는 장족과 위구르족은 물론, 회족, 묘족, 그리고 칭기즈칸의 후손인 몽고족과 우리와 같은 조선족이 모두 포함돼 있다. 시 주석의 표현대로라면 이들 모두가 중화민족의 일원으로 중국의 부흥을 염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화민족이란 하나의 단일민족 개념이 아니라 사실상 중국 인민 모두를 포괄하는 감성적인 용어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중국의 역사를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면, 중국이 번성했던,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었던 시기, ‘中華’의 시대는 예외 없이 지금 중국의 지배민족인 한족이 아니라 소수민족이자 이민족들의 시대였다. 멀게는 수나라와 당송시대에서부터 원(元), 청(淸)시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을 지배했던 대제국의 지배자는 한족이 아닌 오랑캐들이었으며 한족들은 이민족에게 정복당했던 시대였다. 중화민족의 핵심을 한족이라고 한다면 중화민족 부흥은 한족들에게는 치욕의 역사와 다름없다.
 
신장의 웨이우얼(위구르)족이나 티벳의 장족들도 중화민족이라면 중화부흥은 이들의 독립이 돼야 할 것이다. 사실 민족이라는 단어는 정치지도자들에게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가끔씩은 국가보다 상위개념으로 작용한다.
 
남과 북으로 분단된 우리나라에서도 민족은 국가와 체제를 뛰어넘는 상위개념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비합리적인 상황을 조성하기도 한다. 평창 올림픽 때도 그랬고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남과 북은 언제든지 정치적 필요와 합의에 따라 단일팀을 구성하기도 하고 스포츠분야의 교류협력을 강화하면서 민족을 전면에 내세우곤 해왔다. 남과 북이 스포츠분야에서만이라도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성을 확인하고 교류협력을 확대하는 것만으로도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종종 우리 주변에서 (미국이나 중국 등 주변 강대국 같은) 외세의 개입 없이 ‘우리 민족끼리’ 우리 미래를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터져 나온다. 비핵화를 비롯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현안은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치고 의견을 모아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지만 남북관계 개선 등 다른 문제는 우리끼리 해야 한다는 자주적인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의 국제질서는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구체적인 협의조차 어렵게 하고 있다. 우리끼리 결정할 수 있는 게 극히 제한적이다. 비핵화를 비롯한 북한문제는 우리 뿐 아니라 한반도 주변국과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이해관계와 핵확산 저지라는 세계질서가 걸려있는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국제질서는 초강대국의 힘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민족이 국가를 뛰어넘는 상위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중화민족주의로 무장한 중국의 실체를 통해 우리가 생각하는 민족주의의 현재에 대해 곰곰 되짚어봤으면 싶다.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didero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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