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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신보라법’과 출산에 대한 사회적 책임
2018-08-13 08:00:00 2018-08-13 08:00:00
최근 몇 년간 한국사회는 저출산 역대기록과 세계기록을 갈아치우며 ‘인구절벽’을 향해 씩씩하게 나아가고 있다. 올해는 합계출산율이 0.98명 정도로 추락해서 세계 신기록을 세울 것이 유력해지고 있다.
 
한 여성의원이 최근 출산휴가에 관한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자신의 출산을 앞두고 있다는 이유로 일부 네티즌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눈총을 받아야 할 대상은 입법부의 무신경과 불비함이다.
 
신보라 의원은 국회법 제32조(청가 및 결석)에 “의장은 여성의원이 임신 또는 출산으로 인한 휴가를 원하는 경우 이를 허가하여야 한다. 이 경우 휴가기간은 90일로 하되 그 기간의 배정은 출산 후에 45일 이상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하는 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4개 원내정당 의원 60여명이 발의에 참여해서 법안 통과도 유력하다.
 
여성의원이 적었고 임기 중에 출산하는 경우는 더욱 적었기 때문에 국회법에 관련 규정을 준비할 필요를 못 느꼈을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세상의 변화에 대한 입법부의 무지와 불비함이 드러난 것이다. 전국 160여개 지방의회도 이런 무신경을 이어받아 출산휴가 조례가 있는 곳이 단 2곳이라고 한다.
 
지금도 국회의원 보좌진 중에서 출산을 앞둔 여성들은 실직과 경력단절에 대한 고민이 크다. 말로는 유급 출산휴가를 보장한다고 하지만 실제는 ‘그림의 떡’이기 때문이다. 2010년부터 2015년 상반기까지 9700여명에 달하는 여성근로자가 육아휴직과 출산전후 휴가 중에 ‘경영상 필요’로 해고됐다고 한다.
 
지난해 전국 6대광역시 가운데 인천을 제외한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울산과 지방의 47개 중소도시에서 29곳, 그리고 77개 군 중에서 56곳의 인구가 줄었다. 이렇게 젊은 세대는 수도권으로 이동하지만 출산율은 계속 저하하고 있다. 인구변화에 의한 ‘지방소멸’이 구조적이고 불가역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사회는 여성 근로자의 출산에 관한 사회적 책임에 관해서는 여전히 야만에 가깝다. 의원실의 개별적 경영과 업체의 개별적 경영의 필요성을 내세워 나라의 미래를 낳는 여성들을 추방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구속 등 형사처벌도 불사해야 할 행태를 도리어 ‘합리적 선택’으로 받아들이는 습속이 지배하게 된 것은 국가경영을 책임진 지도층이 ‘출산에 관한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거나 해태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국가정책 및 결정과 관련된 성별 분업에서 나타나는 과도한 불비례성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단할 수 있다. 2016년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중앙행정기관의 여성공무원 중에서 고위공무원은 3.4%에 불과하고 공공기관 관리자도 16.4%에 그쳤다. 양성이 50%씩 정비례할 수는 없더라도 지나친 비대칭은 인구변화 뿐만 아니라, ‘미투운동’과 ‘워마드 편파수사 논란’ 같은 사회발전 및 통합에 관한 문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7월 뉴질랜드 노동당 대표가 된 재신더 아던(Jacinda Ardern)은 TV 방송에서 “뉴질랜드 여성들은 출산할지 아니면 경력단절을 피할지를 놓고 고민한다. 당신도 고민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아던은 “출산은 사회에 진출한 모든 뉴질랜드 여성의 문제”라면서 “출산은 여성의 권리이고 직업을 갖는데 어떤 불이익도 받아선 안 된다”고 역설했다. 총리로 취임한 다음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아이를 낳았고 출산휴가를 다녀왔다.
 
동거중인 총리의 출산휴가는 여성의 출산과 육아에 대한 전통적 관념과 ‘경력단절의 빌미’가 되는 사회적 관행을 돌아보게 한다. 세상의 커다란 변화는 때론 특수한 개인에게서, 때론 아주 구체적인 사안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한국사회는 인구변화에 대해 ‘불비한 사회’(unprepared society)라는 낙인을 면하기 어렵고, 젊은 세대의 ‘출산파업’은 합리적 선택의 소산이란 점을 부정하기 어렵게 됐다. 이번 국회법 개정이 ‘나비효과’가 되어 국회 보좌진과 지방의원에게도 공평한 보장이 이뤄지고, ‘출산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제고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겠다.
 
김병규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인구변화분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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