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뛰다 발가락까지 휘어져"…아시아나 협력사 케이에이 직원들의 눈물
직원 대부분이 20대 여성…최저임금에 높은 노동강도…불법파견 의혹에 고용부 현장조사
2018-08-01 15:50:06 2018-08-01 15:59:41
[뉴스토마토 구태우 기자] 아시아나항공의 지상 여객지원을 담당하는 협력업체 케이에이의 노동 여건이 매우 열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케이에이는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설립한 회사로, 최근 고용노동부는 본지가 제기한 불법파견 의혹과 관련해 현장조사에 착수했다. 이곳의 직원들은 주로 20대 여성으로 불규칙한 스케줄의 근무와 높은 노동강도에 시달린다.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은 이들을 더 고되게 만들었다. 1일 <뉴스토마토>는 케이에이 직원의 근무실태를 심층 취재했다. 
 
돗대기시장 같은 출국장 뛰다 무지외반증까지
케이에이 직원들은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하는 승객의 탑승권 및 비자 확인, 단체 수화물 처리, 입국·환승 안내 등을 한다. 올해 기준 506명(기간제 121명)이 근무 중이다. 대부분이 정규직이지만,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3년차 직원의 월급이 최저임금(월급 기준)보다 7230원 높은 158만1000원이다. 고용은 안정됐지만, 처우는 비정규직이나 다름없다.
 
케이에이 직원들은 종일 출·입국장 게이트와 게이트 사이를 뛰어다닌다. 하루 3만 걸음 이상을 움직인다고 직원들은 설명했다. 직원 1명이 하루에 맡는 비행편은 10여개. 매 비행편마다 1시간 전 출국 게이트에 도착해 승객의 탑승을 지원한다. 비행기가 이륙하면, 다른 게이트로 뛰어간다. 아시아나항공 객실사무장이 탑승 승객의 특이사항과 지시사항을 워키토키(무전기)로 알려준다. 이륙이 지연되지 않게 최대한 지원하는 게 이들의 역할이다.
 
 
 
기상, 정비 상태, 따이공(보따리상)은 변수다. 이중 따이공은 특히 꼼꼼하게 챙겨야 할 대상이다. 푸동공항(상하이)편 게이트 앞에는 이민용 가방, 캐리어, 박스들이 늘 어질러져 있다. 따이공은 면세점 매출의 일등 공신이다. 한해 면세 화장품 매출 중 따이공이 차지하는 규모가 3조원에 달할 정도다. 이들은 면세점에서 화장품 등을 대량으로 구매해 중국으로 반입한다. 15kg 이상인 수화물은 기내에 반입할 수 없다. 직원들은 무게를 초과하는 따이공의 짐을 일일이 위탁수화물로 부친다. 초과 금액을 아끼려고 떼를 쓰고, 잔꾀를 부리는 따이공들을 직원들은 일일이 상대해야 한다.
 
케이에이 직원들은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린다. 굽높이 3~5센티미터의 구두를 신고 늘 뛰고, 무거운 짐을 들었다 내렸다 하기 때문이다. 근육통, 염좌, 무지외반증을 앓는 이들도 다반사다. 무엇보다 여성 직원들은 무지외반증과 물집으로 고통을 호소한다. 무지외반증은 엄지 발가락이 휘어지면서 뼈가 튀어나오는 질환이다. 한 여성 직원은 "발 모양이 변해 신발을 신으면 맞지도 않고 발이 아프다"며 "발은 항상 부어있고, 물집이 잡히고, 가렵다"고 말했다. 대안은 없다. 진단서를 끊어가면 밑창이 편한 고무화로 바꿔주는 게 전부다.
 
 
잦은 새벽 근무…편의점 도시락에 위장병까지
김선혜(가명)씨는 최근 퇴사했다. 입사 1년6개월 만에 항공산업 종사자의 꿈을 접었다. 20대인 김씨는 중국어학과를 졸업하고 지난해 케이에이에 입사했다. 취업의 달콤함은 수습기간이 끝나자마자 무너졌다. 낮은 처우, 높은 노동강도로 결국 퇴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불규칙한 스케줄 근무로 위장병을 앓는 등 건강이 나빠진 게 결정적이었다.
 
케이에이의 교대조는 S조(종일 근무: 오전 8시~오후 8시), A조(오전 근무: 오전 7시~오후 4시), P조(오후 근무: 오후 1시~오후 11시)로 나뉜다. 일주일 동안 'S조·P조·A조·DO(휴일)'를 순서대로 두 차례씩 돈다. 주 6일 근무인 셈이다. 출·퇴근 시간은 항공편의 이·착륙 시간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했다. 항공편이 새벽 일찍 도착하거나 지연되는 날에는 김씨의 출퇴근 시간도 달라진다.
 
김씨는 P조인 날 오후 11시에 퇴근해 숙소에서 2시간을 쉬고, A조 근무를 하러 출근한 적도 많았다. 미주에서 출발한 귀국편이 새벽 3시에 들어왔기 때문에 출근 시간도 4시간 앞당겨진 것이다. A조 근무를 할 때는 한 끼만 먹는 경우도 흔했다. 대부분 새벽 시간 편의점에서 도시락이나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퇴근 후에는 낮에 자야 했다. 그러다보니 생체리듬도 엉망이 됐다. 김씨는 "식사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 오전 6시 전에 못 먹으면 퇴근할 때까지 굶어야 한다"며 "문 연 식당은 편의점밖에 없어 도시락이나 라면을 먹었다"고 했다.
 
마땅한 휴식 공간도 없다. 비행편이 없을 때 공항 2층의 인적 없는 게이트 의자에서 쉬는 게 유일한 휴식이다. 쉴 새 없이 무전이 들어오기 때문에 조용한 휴게실을 찾아 들어갈 수도 없다. 잠시 쉬러 가도 무전을 받고 게이트로 되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연휴 때 안개 때문에 인천공항의 항공편 289편이 지연되고, 49편이 결항됐다. 이날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한 승객들은 김씨에게 격하게 항의했다. 김씨는 "승객들에게 둘러싸여 갖은 욕설을 들었다"며 "인격적인 모독까지 감내해야 하는지 자괴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항 일선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에도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어 그만뒀다"고 했다. 케이에이는 퇴사율이 50%에 육박할 정도로 이직률이 높다.
 
이에 대해 케이에이 측은 "업무 강도를 낮추기 위해 최근 20여명을 충원했다"며 "개인차가 있겠지만 진단서를 내면 편한 고무화를 제공한다. 식사와 휴게시간을 정하기 어려운 건 항공업 특성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구태우 기자 goodtw@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