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기와 연루' 딜레마 한가운데 선 한국
(황방열의 한반도 나침반)트럼프, 호르무즈 파병 요구
2026-03-17 06:00:00 2026-03-17 06:00:00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글렌 스나이더는 동맹국 간에 발생하는 안보 딜레마 갈등을 '연루(Entanglement)와 방기(Abandonment)'로 설명했다. 1984년에 학술지 <월드 폴리틱스>(World Politics)에 발표한 '동맹의 안보 딜레마'(Alliance Security Dilemma) 이론이다. 
 
힘이 약한 동맹국은 강한 동맹국에 버려질지 모른다는 '방기' 위협을 느끼게 되는데, 이 공포 때문에 상대방에게 밀착하다 보면 자신의 국가이익과는 별 관계도 없는 동맹국의 분쟁에 휘말려 들어가는 '연루'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을 항해하던 태국 화물선 마유레 나레호가 지난 11일 공격을 받았다고 태국 해군이 밝혔다. (사진=뉴시스)
 
이만큼 한국이 유일 동맹 미국에 갖는 딜레마를 설명하는 데 적실한 이론이 또 있을까. 냉전 한국은 미국에 버려질지 모른다는 '방기'의 공포가 강했다. 세계가 자본주의-사회주의 진영 딱 두 쪽으로 갈린 상황에서 힘 약한 한국은 세계 최강 미국에 딱 달라붙는 전략을 택했다. '용산 주한미군 기지에 성조기가 휘날리는 모습을 봐야 안심이 된다'는 말이 당연한 것 같은 시기였다.
 
그 뒤 냉전이 해체되고 한국의 국력이 커지면서 간간이 '연루'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급기야 2003년 3월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의 아들 부시가 파병을 요구하면서 '동맹의 딜레마'가 본격적으로 무대에 올랐다. 미국은 1만명 규모의 전투병을 보내달라고 했다. 당시 노무현정부는 한국이 중동 분쟁에 끌려들어가 군사적 표적이 되는 건 막아야 했고, 결국 미국과 협상과 절충 끝에 에르빌 지역 재건과 치안 임무를 담당하는 비전투병 3000명(자이툰 부대)을 파병했다. 
 
이 과정에서 국내의 반대 여론, 특히 노 전 대통령 지지층의 반대가 극심했다. 노 전 대통령은 나중에 회고록에 "이라크 파병은 옳지 않은 선택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며 "옳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대통령을 맡은 사람으로서는 회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서 파병한 것"이라고 했다. 2002년 10월부터 시작된 북핵 2차 위기 국면에서 '북한은 악의 축'이라며 군사 옵션까지 거론하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라크 파병 뒤 미국은 노 전 대통령이 구상했던 6자 회담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영국도 프랑스도 신중…미·일 정상회담 분수령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공격해 전쟁을 벌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한국을 비롯해 일본, 영국, 프랑스, 중국, 일본 5개국을 콕 집어 호르무즈 해협으로의 군함 파견을 요구했다. 정식 외교 루트를 통한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여러 국가, 특히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시도로 영향을 받는 국가들은 미국과 함께, 해협을 개방되고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군함을 보낼 것(will be sending War Ships)"이라고 했다.
 
"군사행동 즉각 중단"이라는 원칙적 입장을 밝힌 중국이 파병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이란과 에너지 교역 등 우호 관계인 데다 이미 선박의 안정 통과를 보장하는 협정을 맺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4개국 모두 미국의 전통적 동맹국이지만 현재까지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기본적으로 전쟁 명분이 약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핵 협상 와중에 이란을 공격해야 할 만큼 '임박한 위협'이 있었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또 논란이 극심했던 2003년 이라크 전쟁은 파병에 대한 유엔 안보리 결의(1115호)라도 나왔지만, 이번에 트럼프 행정부는 이런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는 일단은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본도 현재까지는 모호한 태도이지만,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오는 19일 미국 워싱턴에서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하기로 돼 있어, 이 회담이 일본 결정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용기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면전인 현재, 2020년보다 더 심각
 
'트럼프 1기' 때인 2019년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 쿠드스관 사령관을 살해한 뒤 긴장이 고조되자 한국 등에 미 주도의 국제해양안보구상(IMSC), 이른바 '호르무즈 호위 연합' 동참을 요구한 바 있다. 당시 문재인정부는 이란과의 관계를 고려해 2020년 초 IMSC에 참여하는 대신 아덴만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한시적으로 확대해 호르무즈 해협을 오가는 한국민과 선박 보호 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번 파병 요청은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 와중인 데다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는 등 최전선으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6년 전에 비해 훨씬 심각한 상황이다. '연루'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미국의 파병 요청을 받은 국가들 모두 결정이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분단국인 우리 입장이 가장 난처하다.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를 고수·강화하는 상황에서 남북 관계 개선은 물론이고 한반도 위기관리에도 영향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김민석 총리와 백악관에서 북·미 회담 관련 대화를 나눈 트럼프가 그다음 날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요구하는 현 상황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003년 이라크 파병 당시 청와대의 기본 대응 원칙도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토한다는 것이었다. 트럼프의 파병 요구가 거세고 거칠지만 그럴수록 차분하고 담대하게 대응할 일이다. 일부에서는 파병 가능성이 거의 없는 중국까지 포함했다는 점에서 이런 파병 요청이 정치 수사적 요구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인도, 중국 등에 대해 이란이 선별적으로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허용하는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분열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황방열 통일외교 전문위원 bangyeoulhwang@gmail.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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