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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지운 감독 “‘인랑’보다 하고 싶던 작품 따로 있었다”
프로텍트 기어 액션 관심, ‘인랑’ 판권 해결 뒤 일사천리
주인공 무조건 강동원 한효주…”실제 원작과 가장 닮아”
2018-07-24 09:54:50 2018-07-24 09:54:5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어떤 식으로든, 어떤 과정을 걸치든, 어떤 생각을 하든, 어떻게 바라보든, 답은 하나였습니다.” 김지운 감독은 ‘장르의 마술사’로 불린다. 데뷔 이후 단 한 번도 같은 장르의 영화를 선보여 온 적이 없다. 1998년 ‘조용한 가족’으로 데뷔 이후 2016년 ‘밀정’까지 10편의 영화를 만들어 내면서 장르 반복을 답습이라고 생각한 듯 했다. 그래서 한 번이라고 경험했던 장르는 차기작에서 배제해 왔다. 그렇게 그에 눈에 들어온 작품이 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국내에서 한 차례 상영된 바 있지만 무려 18년 전이다. 국내에서의 흥행은 저조했다. 사실 마니아 층에게만 국한된 작품이었다.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각본을 쓴 ‘인랑’이었다. 이 영화를 하기로 마음 먹은 뒤 첫 번째가 주인공이다. 앞서 언급된 ‘답은 하나였다’에서 김 감독이 적은 것은 ‘강동원’이었다. 그렇게 전 세계 최초 ‘인랑’의 실사화가 이뤄졌다.
 
김지운 감독.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23일 오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지운 감독은 가장 먼저 예상 밖의 말은 했다. 그의 관심은 사실 ‘인랑’이 아니었단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 특유의 염세주의 혹은 허무주의를 마음에 두고 있던 김 감독이었다. 그의 작품들을 검토하던 중 한 편이 눈에 들어왔다. ‘인랑’은 아니었다. 그가 하고 싶었던, 실사로 옮기고 싶었던 작품은 따로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이상 전의 일이다.
 
“사실 ‘인랑’보단 ‘공각기동대’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작비를 추산해 보니 지금 만든 ‘인랑’의 최소 2배에서 3배 정도가 들어가더라고요. 벌써 5년 전쯤 일이니 불가능하죠. 지금도 그 정도의 예산은 사실 불가능하죠(웃음). 그러던 차에 ‘인랑’ 제작사 대표님이 ‘인랑’ 애니메이션을 보여주셨죠. 당시 ‘프로텍트 기어 액션’에 관심이 있었는데, ‘인랑’ 속 강화복 이미지가 너무 마음에 든 거죠. 제작사 대표님에게 ‘판권이나 해결해 봐라’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는데, 그걸 대표님이 일사천리로 해결해 버린 거죠. 하하하.”
 
‘프로텍트 기어 액션’, 즉 할리우드 영화 ‘아이언맨’이나 ‘로보캅’에서 선보인 몸에 갑옷 같은 것을 입고 선보이는 액션을 말한다. 김 감독은 한국적인 요소를 넣으면 특유의 강화복 액션이 나올 수 있을 듯 했다는 이미지를 그렸다. 이제 주인공을 맡아야 할 남자 배우를 선정해야 했다. 사실 고민이 되지는 않았단다. ‘만찟남’을 찾으면 된다. 그의 머리 속에 단 한 사람의 이름만 처음부터 끝까지 맴돌았단다.
 
김지운 감독.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만화 속에서 바로 걸어 나온 듯한 남자가 누굴까? 강동원’ ‘강화복을 입고 액션을 하면 가장 어울릴 남자가 누굴까? 강동원’ ‘원작 속 주인공과 실제 배우의 이미지가 가장 어울리는 남자가 누굴까? 강동원’ ‘늑대처럼 강렬하지만 속에는 인간미를 갖고 있는 듯한 남자가 누굴까? 강동원’ 등등등. 어떤 질문을 해도 답은 하나였어요. 강동원 밖에 없더라고요. 도저히 다른 배우는 상상이 안됐죠.”
 
영화에서 강동원은 무려 30kg가 넘는 강화복을 입고 달리고 뛰고 구르며 액션을 소화한다. 또 다른 선배 ‘만찟남’ 정우성 역시 마찬가지다. 정우성은 김 감독의 전작 ‘놈놈놈’에서 한국영화 최초의 서부극 액션을 스타일리시하게 소화한 바 있다. 김 감독은 두 사람의 액션을 디렉팅하고 연출하면서 황홀한 경험을 했다고 웃는다. 그의 눈에 비친 두 사람의 액션은 우선 결이 다른 지점이 많았다고.
 
“대한민국에서 액션을 가장 잘하는 배우 두 명이 함께 하는 영화라 관객분들이 두 사람의 액션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분명 있을 겁니다. 우선 정우성은 감정이 짙게 벤 액션이 나와요. 모든 액션에서 온 몸을 던지는 듯하죠. 화염 방사기 같습니다(웃음). 반면 강동원은 굉장히 수려해요. 화려하죠. 이건 관객 분들이 더 잘 아실 겁니다. 액션에서도 좀 서늘한 기운이 있어요. 때론 슬프고 여린 감정도 있고. 아름답다고 해야 할까. 아마도 강동원이 연기한 ‘임중경’이 표현이 적은 캐릭터이다 보니 그럴 수도 있어요. 제가 ‘유리 너머의 자신을 보는 것처럼 해달라’고 했거든요(웃음).”
 
김지운 감독.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두 사람의 액션이 ‘인랑’의 주요 포인트가 되는 것도 맞다. 하지만 원작 ‘인랑’을 좋아하는 마니아라면 진짜 ‘인랑’의 시그니처로 꼽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강화복’과 ‘지하수로’다. 우선 일본은 실제로 지하수로가 발달해 있다. 반면 국내에는 이런 시설이 없다. 생소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강화복 역시 마찬가지다. ‘인랑’을 가장 SF스럽게 만드는 장치가 바로 이 강화복이다.
 
“우선 강화복은 정말 고민이 많았어요. 원작 ‘인랑’을 보면서도 가장 인상 깊게 남은 장면이 달빛을 배경으로 주인공이 강화복을 입고 서 있는 장면이에요. 우선 원작 속 강화복은 독일군 스타일이 많이 반영됐죠. 이번 영화 속 강화복은 미세하지만 그렇게 안보이게 하려고 여기 저기 좀 손을 많이 댔는데 어떻게 보실지 모르겠어요(웃음). 재질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사실 가장 신경을 많이 섰던 부분이 지하수로에요. 아주 큰 세트로 지었는데, 이것도 관객 분들이 어떻게 보실지 모르겠네요.”
 
강동원 정우성 강화복 지하수로 등 ‘인랑’은 전례 없는 스타일과 액션이 넘친다. 하지만 원작을 좋아하는 마니아라면 극중 여주인공 캐릭터가 어떤 배우일지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비중 자체가 남다른 캐릭터다. 주인공 ‘임중경’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극 전체의 분위기 반전까지 이뤄내야 하는 인물이다. 김 감독은 이번에도 고민 없이 한 배우만 떠올렸다고 한다. 배우 한효주다.
 
김지운 감독.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강동원도 마찬가지였지만 원작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와 외모적으로 가장 닮은 배우가 한효주 같아요. 연기를 하면 너무 좋은 데 재미가 없게 하는 배우들이 있어요. 연기도 잘하면서 재미있게 전달하는 배우들이 있어요. 대표적으로 송강호 이병헌 하정우 등이 그렇고. 전 이번 영화를 통해 한효주가 연기도 잘하는 데 재미있게 전달을 하는 배우란 것이 증명되기 바랐어요. 캐릭터에 대한 이해력에 안정감까지 갖춘 그런 배우요.”
 
원작을 리메이크하거나 애니메이션을 실사로 옮기는 작업은 사실 연출자에겐 독이 든 성배나 다름없다. 좋은 배우들과 좋은 각색 시나리오가 있다고 하지만 원작을 기억하는 마니아들에겐 어떤 식으로든 비평과 불만을 들을 수 밖에 없다. 김 감독도 이런 점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다만 한국적 색채의 SF장르 그리고 그 장르를 통해 실사 버전의 ‘인랑’을 통해 전달할 분명한 메시지를 전했다.
 
“영화 속 ‘야만의 시대도 사랑이 가능할까’란 주제를 던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만들다 보니 집단과 개인의 관계를 더 얘기하고 싶어졌어요. 글쎄요 뭐랄까. 개인의 취향이 존중되는 사회이고 각자 개성대로 살고 있지만 무언가에 조정되는 새로운 소비 범주가 드러나는 것 같은 게 우리 사회라고 생각해요. 개인의 발언이 집단화되는 부분에 대해 너무 예민하게 생각하는 것도 우리 사회의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집단이 먼저인가 개인이 먼저인가. 인간의 탈을 쓴 늑대가 될 것인가, 늑대의 탈을 쓴 인간이 될 것인가. 글쎄요. 어떤 걸 선택하시겠어요(웃음)”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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