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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허스토리’ 김해숙, 데뷔 45년만에 경험한 최악의 감정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고통 상상 안돼…”그 깊이 가늠키 힘들어”
실제 촬영 현장, 점차 병들어 가던 정신…”정말 그 분들 대단하다”
2018-06-18 13:22:05 2018-06-18 13:22:05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올해로 데뷔 45년 차. ‘국민엄마’ 김해숙에게도 이건 엄두가 나지 않는 도전이었단다. 이 대배우의 입을 빌리자면 ‘이건 이해와 공감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같은 여자이고 같은 국민이지만 같은 인간이자 사람으로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연기한다는 건 가늠조차 불가능한 지점이었다. 도대체 상상을 하고 짐작을 하려 해도 그 깊이가 닿지를 안았다고. 그럼에도 배우로서 숙명이기에 집중을 하고 또 집중했다. 급기야 그는 마음의 병까지 들 정도로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을 느꼈단다. 영화 ‘허스토리’를 촬영하며 느낀 김해숙의 감정이다. 그는 “단 몇 달의 작업이 날 바닥까지 끌고 갔다”면서 “그럼 할머니들은 어땠을까. 평생이다. 인생을 빼앗겼다. 내가 그걸 이해하고 연기를 했다고 말을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조심스러워했다.
 
영화 '허스토리' 속 김해숙. 사진/NEW
 
지난 7일 언론시사회가 열리고 며칠 뒤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 대배우는 조금은 상기된 표정이었다. 사실 일부러 감정을 ‘업’ 시키며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느낌이었다. 앞서 설명과 같이 이번 영화를 촬영하면서 ‘우울증’과도 같은 증상에 시달렸단다. 극단적 감정의 피폐함을 이끌어 내야 하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삶은 그렇게 고통스러웠다. 하물며 실제 할머니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걸 상상하고 연기했다고 말을 해야 할까요. 휴(한숨). 사실 언론시사회 때 처음 영화를 보게 됐는데 스태프들에게 ‘안 보면 안되냐’고까지 부탁을 했어요. 제가 볼 자신이 없었어요. 내 연기를 볼 자신이 없었고, 그 감정이 아직도 사실 남아 있었고. 두려웠죠.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봤어요. 영화를 보는 동안 그 감정이 살아나 힘이 들었는데. 그럼 할머니들은 어땠을까. 정말 그 분들의 대단함이 말로 표현이 안되요.”
 
우선 연기의 과정이나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과정도 궁금했다. 워낙 베테랑이고 ‘연기’란 두 글자 안에서 김해숙은 대한민국 여배우 최고의 대가 중 한 명이다. 그 역시 ‘웬만한 배역은 그냥 이해하고 만들어 가면 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게 김해숙이기에 가능하고 또 이해가 됐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 배우란 직업에서 인간이 가늠할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을 그는 상상해 내야 했다. 아니 최악보다 더한 최악이다.
 
영화 '허스토리' 속 김해숙. 사진/NEW
 
“너무 힘들었어요. 시나리오를 보면 그 인물이 상상이 되고 분석이 되고 그걸 자신만의 방식으로 연기를 하면 되요. 그렇게 표현해서 캐릭터를 만드는 거죠. 근데 이건 그 상상이 안 되는 거에요. 아니 될 턱이 있나. 그 깊이가 어딘지도 모르겠더라구요. 시나리오를 보면 볼수록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어렵고 난감하고. 그 끝이 어딘지 몰라서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다시 힘이 들어요.”
 
그래서 택한 방법은 ‘스스로를 놔버리는 것’이었다고. 비단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얘기를 만들어 가야 하지만 ‘허스토리’에서 김해숙이 맡은 ‘배정길’이란 할머니는 실존했던 인물이다. ‘관부 재판’에 실제로 참여를 했던 분이다. 현재는 돌아가셨다. 만약 생존해 계시다면 만나뵙기라도 했겠지만. 결국 생각해 내고 고민했던 방법은 하나였다.
 
“’내 욕심인가' 그 생각이 들더라구요. 내가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이 ‘배정길’이란 역에 덫이 되는 것 아닌가 싶었어요. 실존한 인물을 상상으로 한다는 게 교만이자 이기심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라구요. 결국 내 자신을 내려놔야겠다 생각했죠. 되도록이면 저를 비우고 하얀 도화지에 인물을 입히는 방법 뿐이라고 봤어요. 하지만 그 비우는 작업도 만만치 않더라구요. 다 비웠다고 생각했는데. 그 안에 김해숙의 욕심이 그래도 남아 있더라구요.”
 
영화 '허스토리' 속 김해숙. 사진/NEW
 
분명 잘하고 싶은 욕심이었을 것이다. 할머니들의 그 당시 심정을 되도록 실제처럼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비웠다고 하지만 남아 있던 감정이었다. 오죽하면 그는 영화 속 ‘재판 장면’을 앞두고는 ‘몸이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을까. 하지만 실제로 그는 재판 촬영 당시 극도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정신적으로 거의 실신 직전이었단다.
 
“그 장면은 영화 거의 마지막에 찍었어요. 감독님에게 그래야 감정이 이어질 것 같다고 요청했죠. 감독님도 이미 그렇게 할 생각이셨고. 재판 장면 촬영을 앞두곤 ‘많이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이건 그런 상태라면 그래도 좀 감정이 드러날 것 같았죠. 그런데 실제로 그날 얼굴도 붓고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촬영에 나가기 힘들 정도였어요. 그때 속으로 ‘내가 해야 하는 날 내가 아프다니 정말 하늘이 도우시나 보다’ 할 정도였죠. 그날 촬영하면선 하루 종일 물도 한 모금 안 먹었어요. 그 감정이 조금은 드러났는지 모르겠네요(웃음)”
 
실제 할머니가 어떤 심정으로 그 재판 현장에 섰을지 눈곱만큼의 심정이라도 이해하고 느끼고 싶었던 바람이었다. 그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극심한 컨디션 난조 속에서도 촬영을 끝마쳤다. 재판 촬영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면서도 김해숙은 힘들어 했다. 그만큼 에너지 소모가 극심했던 순간이었다. 그 현장을 대리 경험한 김해숙에게 ‘민약 실제 본인이 그 당사자였다면 어떤 심정이었을까’를 물었다.
 
영화 '허스토리' 속 김해숙. 사진/NEW
 
“어후~그게 나라면 아마도 재판장에서 죽었을 거 같아요. 내가 할머니들을 모르는 대도 그 간접 경험만으로도 마음이 병들어 가는 걸 느꼈는데. 그래서 할머니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재판 장면 찍으면서 ‘할머니들은 대체 무슨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을까’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아무 생각도 안났어요. 나도 사람이라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지’라며 후회도 정말 많이 했어요. 무사히 끝마친 것만으로도 지금은 감사해요.”
 
인터뷰 중간중간 일부러 분위기를 밝게 하려는 듯 김해숙은 가벼운 농담도 자주했다. 아직 감정적으로 정리가 안된 듯 한 느낌이었다. 촬영은 이미 지난 해 여름쯤 끝이 났던 영화다. 그럼에도 아직 잔상이 남아 있는 느낌이었다. 김해숙 본인도 인정을 했다. 작품이 끝나면 캐릭터에서 빠져 나오는 것에 그리 어렵지 않은 경력을 갖고 있었지만 이번 만큼은 달랐단다. 현재도 그 감정이 남아 있다고.
 
“죄송한 말씀을 드리자면 아직도 남아 있어요. 여기서 정말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사실 간절해요. 요즘에도 무슨 일만 있어도 눈물이 나고 이상하게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많이 나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웃음) 아휴. 나 자신을 너무 많이 버린 것 같아요. 이젠 내가 제일 사랑하는 이 일이 무의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경험했고. 좀 많이 무서워요. 웬만하면 길어야 한 달 정도였는데 이번에는 쉽지가 않네요. 이걸 제일 빨리 벗어나는 방법은 다른 작품을 하는 거라. 빨리 차기작도 결정했는데 쉽지가 않네요. 그래서 여행도 가봤어요. 다행히 지금의 거의 내 컨디션으로 돌아온 상태에요. 후유증이 거의 1년이 갔으니. 어휴.”
 
영화 '허스토리' 속 김해숙. 사진/NEW
 
‘국민 엄마’로 불리는 김해숙에겐 묘할 정도로 사연이 많은 캐릭터만 집중적으로 출연 제안이 왔다. 영화이던 드라마이던 엄마 역할에 무조건 경험하기 힘든 사연이 덧칠해져 있었다. 스스로의 얼굴에서 읽혀지는 사연이 궁금했다. 본인이 생각하는 본인의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이 베테랑 대배우는 기분 좋은 웃음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하하하. 그러게요. 어떻게 하다 보니 다 그렇게 사연이 있는 엄마들 뿐이었네요. 그게 생각하기 나름 같은데 어려운 걸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감독님들이 갖고 계신다고 전 생각하고 싶어요. 전 배우잖아요. 배우로서 계속 다른 이야기 다른 캐릭터에 대한 열망을 갖고 노력해야죠. ‘국민 엄마’ 타이틀은 쭉 이어가고 싶어요. 절대 놓치지 않을거에요. 하하하. 희애 말을 좀 빌렸네요.(웃음)”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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