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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제주, 동백꽃 시린 눈물이 되다
2018-04-03 16:07:04 2018-04-05 18:37:02
정찬대 성공회대학교 민주자료관 연구원
제주 4·3 항쟁 일흔돌. 70년 세월에도 4·3의 상처는 여전히 아프고 시리다. 총칼 자국 선명한 상흔은 위정자들에 의해 이념의 딱지가 내려앉았다. '4·3 민중항쟁', 그 명명이 좌익이라고 선동되는 배경이다.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군경에 짓밟힌 제주의 넋이 동백꽃 시린 눈물 되어 머체왓('돌밭'의 제주방언) 사방에 떨어진다.
 
1948년 5·10 총선거를 앞두고 제주 도민들은 단독정부와 단독선거를 온 몸으로 항거하며 봉기했다. 총 200석 중 북제주군 갑·을 선거구 두 곳이 과반수 미달로 선거무효가 확정됐고, 제헌의회는 두 석이 부족한 198석으로 출발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제주는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됐다. 이승만과 미국의 협잡 아래 고립무원이 된 제주는 철저히 난자당했다. "가혹한 방법으로 탄압해 법의 존엄을 표시할 것이 요청된다"고 유시한 이승만의 국무회의 발언은 제주에 대한 악감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승만의 철저한 비호 아래 제주 도민을 무참히 학살한 서북청년단은 '인간이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줬다. 이 과정에서 여성과 아이는 학살에 가장 취약한 존재였다. 아버지 대신, 아들 대신 목숨을 잃는 대살(代殺)도 빈번하게 이뤄졌다. 1949년 5월 제주지역 재선거가 치러질 때까지 학살은 멈추지 않았다. 1949년 1월, 제주 북촌리에서는 총 323가구 중 207가구 479명이 한 날 희생됐다. 이런 상황에서 서북청년회 중앙단장인 문봉제는 북제주군 을 선거구에 입후보하기까지 했다. 이들에게 제주는 손쉬운 먹잇감에 불과했다. 옴팡밧, 너븐숭이, 당팟, 북촌 등명대, 애기 돌무덤 등 북촌 곳곳에 배인 상흔은 70년 세월에도 어제 일처럼 또렷하기만 하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에도 학살의 광기는 계속됐다. 4·3으로 인한 인명 피해는 2만5000명에서 3만여명으로 추정된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 학살된 숫자까지 포함하면 희생자는 훨씬 늘어난다. 1950년 7~8월 상모리 섯알오름 학살로 250여명 넘게 총살됐고, 제주 주정공장에 수용된 민간인 500여명도 정뜨르비행장(현 제주공항)에서 집단 학살됐다. 그나마 이곳은 주민들에 의해 발각돼 알려진 학살 현장이다.
 
예비검속자 학살은 극도로 비밀리에 진행됐다. 이승만은 유시사항으로 "경찰의 예비검속은 공표하지 말라"고 할 정도로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며 진행했다. 오늘날까지도 제주 4·3 유가족들이 행방불명된 희생자 시신의 암매장 장소는 물론 사망일조차 몰라 애태우는 게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승만 독재정권과 박정희 군사정권 아래 제주 4·3의 가해자들은 승승장구했다. 제주도경국장을 지낸 홍순봉은 치안국장을 거쳐 육군헌병대장과 증권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제주 해안에서 5㎞ 이상 지역에 통행금지를 명령하고, 이를 어기면 총살에 처하겠다는 포고문을 발표한 송요찬 9연대장은 육군참모총장과 내각수반을 역임했다. 5·16 쿠데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기획위원장을 지낸 함병선은 2연대장으로 제주 토벌작전을 수행했으며, 미군정 경무부장을 지낸 조병옥의 경우 대통령 후보에까지 올랐다.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작곡가 출신 탁성록은 마약에 취한 채 제주 도민을 학살하고 부녀자를 겁탈했다. 서북청년단 제주지부장을 지낸 김재능은 제주 유일의 언론기관인 제주신보를 강제 탈취하기도 했다. '서청경찰대' 설립를 실무적으로 주도한 최치환은 1949년 경감으로 진급한 후 제주특별부대사령부 작전참모로써 제주 토벌을 지휘했다. 그는 1943년 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의 장인이기도 하다.
 
제주에 가해진 학살의 폭력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왜곡과 조작으로 '붉은 섬'이 됐고, 이념으로 켜켜이 덧씌워졌다. 해방공간에서 반공 이데올로기의 철저한 희생양이 된 제주의 봄은 그래서 더 아프고 시리다. 애끓는 슬픔과 절규를 가슴에 묻고 사는 이들은 여전히 정지된 시간 속에 터를 이루며 살고 있다. 오늘도 그렇게 새카맣게 탄 속을 토해내며 제주 사람들은 불안한 하루를 일구어 간다. 숨 쉬는 것조차 불안한 그들의 넋이 동백꽃 붉은 영(靈)이 되어 제주의 4월을 하늘거린다.
 
정찬대 성공회대학교 민주자료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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