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이 쓰러진다)③타박상·방광염은 일상…산재 커녕 '공상처리'도 눈치
병가율 40%로 항공직군 중 최고 수준
짐캐어·승객 응대로 근골격계 질환 흔해
입력 : 2018-03-28 06:00:00 수정 : 2018-03-28 06:00:00
[뉴스토마토 구태우 기자] 국적항공사 객실승무원은 불규칙한 스케줄 근무 등으로 산업재해에 취약하다. 근무 중 타박상을 입거나 근골격계 질환 등 직업병에 걸려 고통을 호소한다. 하지만 산재를 예방할 뾰족한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국적항공사의 승무원이 일반직에 비해 병가율이 23배 가량 높다는 연구도 있다. 승무원의 산재 예방을 위해 범정부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뉴스토마토>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LCC의 승무원을 심층 인터뷰해 본 결과 승무원은 근무 중 크고 작은 사고에 노출됐지만, 항공사는 공상처리를 하는 수준으로 '땜질식 처방'을 하고 있다. 병원비를 지급하는 정도로 무마하는 식이다. 승무원은 공상처리조차 눈치가 보이고, 인사고과에 영향을 받아 쉬쉬하고 있다. 
 
이기일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 항공안전정책연구소장이 2015년 발표한 연구논문에 따르면 항공사 직군 중 승무원이 병가 사용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아시아나항공의 승무원 3837명 중 40%(1525명)가 병가를 냈다. 조종사는 12.9%(167명), 일반직은 1.7%(66명)인데 반해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승무원은 염좌(근골격계 질환), 중이염(이비인후과), 위염(내과질환) 등으로 병가를 냈다. 근무 중 무거운 짐을 옮기거나, 고객 응대 중 불편한 자세를 반복해 근골격계 질환이 발병한 것으로 보인다.
 
심층 인터뷰 결과를 봐도 승무원들이 승객의 짐을 선반에 놓다 손목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았다. 짐을 넣다 떨어뜨려 타박상을 입는 경우도 있었다. 승객을 응대할 때 허리를 숙이는데, 반복되는 업무로 허리 통증을 호소했다. 승무원이 평소보다 적게 투입되는 비행의 경우 노동강도는 이전보다 높아진다. 노동자가 피로한 상태에 있을 때 산재사고의 위험도 높아진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보상오프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승무원이 적게 탑승하면 노동강도가 높아지는데, 이에 대한 보상차원으로 보상오프(C.D.O)를 준다. 하지만 승무인력이 부족한 탓에 보상오프를 받아도 사용하기는 어렵다는 게 승무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대한항공의 경우 100여일의 보상오프를 보유한 직원도 상당수에 달한다고 한다. 
 
승무원의 대부분은 여성인데, 여성질환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도 많았다. 방광염, 생리불순, 난임 등을 주로 앓았다. 제때 용변을 보지 못하는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승무원은 이륙 후 승객에게 기내식, 음료 서비스를 마친 뒤 화장실에 갈 수 있다. 하지만 승객이 화장실에 가는 시간과 겹치거나 바쁜 업무로 용변을 참는 경우도 많았다. 불규칙한 스케줄 근무, 야간비행, 피로로 생리 주기가 아닌데 생리를 하기도 했다. 한 승무원은 "방광염은 한번 앓지 않은 동료가 없을 정도로 흔한 질병"이라며 "생리기간도 아닌데 갑자기 생리를 해 당황한 적이 많다"고 말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난임휴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임신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도입한 제도다. 그런데 난임휴가 신청자가 많아 1년 가량 기다려야 휴가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난임휴가를 신청하려면, 난임인지를 입증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대한항공의 한 승무원은 "난임 치료를 받은 병원기록 등을 회사에 제출해야 한다"며 "병원기록을 제출하는 것에 수치심을 느낀 승무원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나항공의 한 승무원은 "승무원이 갑자기 안 보이면 난임휴가를 들어갔을 거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한다"며 "우스갯소리로 산란기라고 표현한다"고 말했다. 간호직종에서 일반적인 '임신순번제'가 항공사에서도 있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은 임신 중인 노동자에게 연장근무와 야간근무를 시킬 수 없도록 정했다. 병원은 임신으로 대규모 결원이 생기지 않게 순번을 정했다. 
 
승무원은 직업병과 산재 사고에 노출돼 있지만, 치료조차 제대로 받기 어렵다. 근무 중 다치면 승무원이 목격자로부터 사고 경위를 받고, 관리자의 승인을 받아야 공상처리를 할 수 있다. 한 항공사는 병가일수, 산재·공상처리 건수를 인사평가에 반영한다. 산재 사고를 알려도 치료비를 받는 게 전부라 승무원의 자비로 치료하는 실정이다. 
 
승무원은 사내 건강검진 제도도 부실하다고 주장했다. 혈액검사, 피검사 등 기초적인 검사밖에 없어 직업병을 조기 진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자비로 추가 검사를 받고 경우도 많다.
 
특히 업무 특성상 자연 방사능에 노출된다. 서울에서 뉴욕을 1회 왕복하면 0.2밀리시버트의 방사능에 피폭된다. 원자력발전소에서 근무하는 직원의 연간 피폭량은 0.82밀리시버트(mSv)다. 서울·뉴욕을 4번 다녀오면 원전에서 근무하는 직원과 유사한 양의 방사능에 노출된다. 아시아나항공의 한 승무원은 "연간 피폭량을 고려해 승무원의 스케줄을 짠다"고 설명했다. 항공사도 방사능 피폭의 위험을 인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항공사는 비용 절감을 위해 부실한 건강감진 제도를 운영 중이다. 실제 취재과정에서 1년 동안 대장에 용종이 생긴 승무원을 만났다. 이 승무원은 "스케줄 근무와 방사능으로 병을 얻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항공사의 한 관계자는 "사고 상황을 목격한 승무원의 설명을 조금 더 듣는다"며 "관리자가 승인해야 공상처리를 해주는 건 아니다"고 설명했다. 
 
대한항공 승무원이 승객을 응대하고 있다. 사진/대한항공
 
구태우 기자 goodtw@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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