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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권한 내려놓고 국민에 힘 실은 '대통령 개헌안'
마지막 개정 후 31년 흐른 시대적 요구 담아…한자어·번역투 해소도
2018-03-22 18:04:08 2018-03-26 10:16:19
[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청와대가 22일 공개한 대한민국헌법 개정안에는 국민주권·기본권과 지방자치·지방분권 강화, 경제민주화·토지공개념 강화 등 시대적 요구를 한꺼번에 담아냈다. 국민의 입장에서, 국민이 중심이 된 개헌안이다.
경제불평등 해소를 비롯해 대통령 권한 분산을 위한 권력구조 개편, 선거연령 하향을 통한 참정권 확대 등 그간 문재인 대통령이 공언해온 내용들도 다수 포함했다. 특히 한자어와 번역투가 많았던 조문은 어문규정에 따라 고쳐 누구나 쉽게 헌법을 접할 수 있게 했다는 게 특징이다.
 
5·18 민주화운동, 6·10 항쟁 전문 명시…지방분권국가 지향성도
 
개헌안 전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부마민주항쟁과 5·18 민주화운동, 6·10 항쟁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내용이다. 청와대는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가치와 지향을 분명히 할 수 있도록 헌법적 의의를 갖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과 사회적 가치를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자치와 분권을 강화하고’, ‘지역 간 균형발전을 도모하고’ 문구를 삽입해 지방분권에 대한 의지도 드러냈다. 이어지는 총강에서는 이를 뒷받침하는 조문들을 곳곳에 신설했다.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를 지향한다’(1조3항), ‘대한민국의 수도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3조2항)는 내용이 그 예다. ‘수도조항’ 신설은 향후 있을지 모를 행정수도 이전과 국가균형발전을 감안한 조치다. 2004년 헌법재판소는 수도에 관한 사항을 관습헌법에 속하는 것으로 보면서 수도 이전을 위해서는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판시한 바 있다.
 
뒤이은 조문에서는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지방자치단체의 집행기관 명칭을 ‘지방행정부’로 고쳤다. 중앙과 지방이 종속적·수직적 관계가 아닌 독자적·수평적 관계라는 것이 드러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지방정부의 자치입법권과 자주조직권을 부여하되 주민들이 직접 지방정부의 부패·독주를 견제할 수 있도록 주민발안, 주민투표, 주민소환의 헌법적 근거도 함께 신설했다.
 
기본권·평등권·참정권 확대로 ‘존엄성’ 가치 높여
 
‘국민중심 개헌’을 표방하면서 기본권 향상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국가를 떠나 보편적으로 보장돼야 하는 천부인권적 성격 기본권에 대해서는 그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확대했다.
 
사회 변화상에 맞춰 새로운 기본권도 다수 신설했다. ‘생명권’과 ‘신체와 정신이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를 명시적으로 규정했으며, 정보화 사회로 빠르게 진전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 ‘알권리’와 ‘자기정보통제권’도 조문화했다. 사회통합과 정의 실현 차원에서 평등권을 확대하고 현행 헌법에 규정된 차별금지 사유인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 외에 ‘장애, 연령, 인종, 지역’을 추가했다. 사회보장도 국가의 시혜적 의무에서 기본권으로 전환하고, 주거권·건강권·안전권 등을 신설했다. 일제 잔재인 ‘근로’라는 용어는 ‘노동’으로 바꾸고 동일가치 동일임금, 최저임금제 시행 의무, 노동조건의 결정 과정에서 노사 대등 결정원칙을 명시함으로써 노동자 권리 강화에 힘썼다.
 
주거·사생활·통신의 자유는 사생활 영역에 관한 기본권으로서 법체계 상 하나의 조문에 규정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에 따라 헌법 17조 안에 포함했다. 반대로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는 기본권의 주체와 성격이 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조문에서 규정하고 있어 적절치 않다는 지적에 따라 분리했다.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경우에는 피해자가 배상 외에 정정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참정권 확대 방안으로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국민발안제도 도입했다. 선거연령은 국민의 참정권 핵심에 해당하는 점을 감안해 만 18세로 낮췄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한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만 18세 또는 그보다 낮은 연령부터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다”며 “미국은 이미 1971년부터 18세로 선거권을 낮췄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청소년이 그들의 삶과 직결된 교육, 노동 등의 영역에서 자신의 의사를 공적으로 표현하고 반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또한 국민 청원은 문서로 해야 하다는 부분을 삭제해 다양한 방식의 청원을 허용하는 한편, 국가에 청원에 대한 심사결과 통지의무를 부여해 청원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했다.
 
재판참여 등 국민의 사법적 권리 확대
 
국민이 누릴 수 있는 사법권리도 확대했다. 현행 규정은 국선변호인 선정 대상에 형사피고인만 인정하고 있어 기본권 보장에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아 선정 대상에 형사피의자를 추가했다.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하는 자에게 ‘체포 또는 구속의 이유’와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 외에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도 함께 고지토록 했다.
 
현재는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재판을 받도록 하면서 시민들의 사법참여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에 따라 ‘헌법과 법률에 따라 법원의 재판’을 받을 권리로 변경해 현행 국민참여재판 확대는 물론 배심제·참심제가 도입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반대로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군사재판 적용 범위는 축소했다. 군인이나 군무원이 아닌 국민은 원칙적으로 군사재판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비상계엄 선포로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만 군사재판을 받도록 했다.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현저히 제한하며 남용 위험성까지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던 비상계엄 하에 단심제도 폐지했다.
 
이는 사형제 폐지 주장과도 연결될 것으로 보인다. ‘단심제 조항 내 사형이라는 표현도 빠지는 것이냐’는 질문에 김형연 청와대 법무비서관은 “조항 자체가 없어졌기 때문에 사형이라는 문구 자체도 삭제된다”며 “(사형제 폐지를) 생각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판단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여지를 남겼다.
 
대통령 임기 ‘4년 1차 연임제’로…‘제왕적 대통령제’ 막는 장치도
 
이른바 ‘1987년 헌법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권력구조 개편과 기존 제왕적 대통령제를 막는 장치들도 대폭 담았다. 대통령 5년 단임제의 문제점을 치유하고 안정된 국정운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대통령 임기를 4년으로 하되, 대통령이 다음 선거에서 다시 선출되는 경우에 한해 한 차례만 더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상대 후보자보다 한 표라도 더 받은 사람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상대적 다수대표제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결선투표제도 도입했다. 결선투표는 임기만료 등으로 인한 첫 대통령 선거일부터 14일 이내에 실시하도록 했다. 개헌안 부칙에 ‘개정헌법 시행 당시 대통령의 임기는 2022년 5월9일까지 하고, 중임할 수 없다’고 명시해 헌법 개정이 이뤄지더라도 문재인 대통령은 재선 도전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대통령의 국가원수’ 지위도 삭제했다. 대통령이 다른 헌법기관을 초월한 우월적 지위에 있는 것으로 인식돼 제왕적 대통령의 근거로 작용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정부에 대한 국회의 통제 권한 역시 강화했다. 조국 수석은 “정부의 법률안 제출권은 유지하되, 국회의 입법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국회의원 10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 국회에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국회의 예산심의권과 대통령의 특별사면에 대한 절차적 통제를 강화했으며 헌법재판소장을 헌법재판관 중에서 호선하는 것으로 개정해 대통령의 인사권을 축소했다. 현재 대통령 소속인 감사원은 독립기관으로 두도록 했다.
 
아울러 국무총리 권한 확대를 위한 조치로, 현행 헌법 상 ‘대통령의 명을 받아’라는 문구를 삭제해 국무총리가 책임지고 행정 각 부를 통할하도록 했다. 다만 일부 야당이 요구해온 총리 국회추천권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국 수석은 “여소야대 상황에서 대통령과 국회에서 선출하거나 추천한 총리가 정당을 달리하게 되면 ‘이중권력’ 상태가 계속되어 국정운영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국가위기 상황에서 대통령과 총리가 충돌할 경우 그 피해는 오롯이 국민의 몫”이라고 언급했다.
 
토지공개념·경제민주화 강화로 불평등 해소 기반닦아
 
경제 조항에서는 토지공개념과 경제민주화를 강화한 것이 눈에 띈다. 기존 경제민주화 조항에 ‘상생’을 추가하고 골목상권 보호·재래시장 활성화 등 소상공인보호가 현안이 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기존 중소기업의 개념에 포함돼 있던 소상공인을 별도로 분리, 보호·육성 대상으로 명시했다. 상호협력과 사회연대를 바탕으로 경제활동이 이뤄지는 사회적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국가에 사회적경제의 진흥 의무도 부과했다. 토지공개념을 놓고 논란이 있는 가운데, 불평등 심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특별한 제한이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도록 토지공개념 내용을 명시했다.
 
헌법 한글화로 전국민 배려…“국민헌법 노력”
 
청와대는 개정 헌법안의 한글화 작업에도 공을 들였다. ‘悠久한 歷史와 傳統에 빛나는 우리 大韓國民’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으로 고치는 등 대부분의 한자를 한글로 바꿨다. 불가피한 경우 ‘부속도서(附屬島嶼)’와 같이 한글과 한자를 병행했다. ‘의하여’는 ‘따라’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로 고치는 등 번역투도 바로잡았다. 김형연 법무비서관은 “국민이 쉽게 다가가고 이해하기 친근한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최대한 쉽고 자연스러운 문장을 사용했다”며 “어려운 용어와 한자, 일본식 문투를 걷어내 국민헌법이 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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