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도의 밴드유랑)랜드오브피스,'날 것' 느낌으로 '여유'를 연주하다
필리핀 ‘슬로우 라이프’ 담은 새 EP ‘Life in Timog’
자연과 평화, 자유 담긴 ‘트로피컬 사운드’
입력 : 2018-03-15 17:02:57 수정 : 2018-03-15 17:22:51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인디씬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를 가득 메우는 대중 음악의 포화에 그들의 음악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세상은 뭐가 그리도 빠르게 흘러가는지, 또 뭐 그렇게 경쟁할 것을 종용하는지. 고민의 고민이 꼬리를 물던 날, ‘랜드오브피스(L.O.P, Land Of Peace)’의 신보 ‘Life in Timog’를 찾았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순간 펼쳐진 건 어쨌든 ‘서울의 삶’과는 정반대인 그 무엇이었다.
 
인트로는 졸지에 나를 비행기 이륙을 기다리는 어느 이방인으로 만들더니, 이윽고 적도 부근의 섬 나라, 필리핀으로 인도했다. 열대 숲과 호흡할 수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 수영을 하고 맥주를 마시는 호사로움, 눅눅한 쇼파에 누워 하루 종일 영화만 줄창 보는 게으름. 3~4분 남짓한 트랙리스트들의 짧은 시간 조각들은 그렇게 머릿속을 부유하며 서울의 팍팍함을 밀어내주고 있었다.
 
미세먼지로 희뿌연 회색 도시에서 아둥 바둥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그런 LOP의 음악에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뒤쳐지면 안 되는 세상살이, 나도 모르게 품고 있던 압박감이 무장해제 되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평안해지니까. 필리핀에서 초, 중, 고 시절을 함께 하며 ‘슬로우 라이프’를 직접 체화한 밴드는 그렇게 음악으로 '늘어짐'의 미학을 전파한다.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어/ 시간을 낭비할 수도 있고/ 슬로우 라이프로 말야/ 그런게 바로 새로운 삶이지(‘Life In Timog’ 가사 중 일부)”
 
5인조 록밴드 '랜드오브피스'. 사진/루비레코드
 
지난 13일 오후 4시 서울 합정역 인근 루비레코드 사옥에서 밴드 멤버들을 만나봤다.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서울 도심의 한 가운데였지만 그들의 차분하고 느긋한 어조에서 필리핀 남부의 여유와 따스함이 흘러나왔다. “이번 앨범이 밴드의 ‘정체성’을 잘 나타내주는 것 같다”는 정원준(보컬)과 이경석(기타)은 밴드와 새 앨범, 음악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들려줬다.
 
멤버들은 밴드와 밴드명에 대한 소개부터 건넸다. 글자 그대로 ‘평화의 땅’이란 밴드의 이름은 ‘원초적인 평화’를 추구한다는 의미로 지어졌다. 평화의 종류에는 ‘세계 평화’도 있을 것이고, 다양하지만 이들이 생각하는 원초의 의미는 멤버들의 성향에 기반한 것이었다.
 
“저희는 한국 사람이고, 초등학교 때 유학 겸 필리핀으로 건너갔어요. 10대 때부터 취미로 같이 음악을 시작했고 마음이 잘 맞았어요. 보통 남자 아이들은 어릴 때 싸움도 하면서 크기 마련인데 저희는 ‘평화주의자’ 같은 느낌이 있었거든요. 주말에 소파에 누워 커피를 마시는 식의 소소한 평화도 잘 챙기는 편이에요. 그래서 밴드명을 그렇게 짓게 됐어요.(정원준)”
 
랜드오브피스의 보컬 정원준(보컬)과 이경석(기타). 사진/루비레코드
 
모국에서 진지하게 음악을 해보겠다고 결심한 건 2014년이었다. 정원준과 이경석, 김민석(기타), 해리(드럼) 모두 필리핀에서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왔다. 당시 홍대에서 활동하던 박동민(베이스)은 온라인 뮤지션 커뮤니티에서 멤버들이 올린 모집 공고를 보고 합류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록을 하는 서울 생활은 이들에게 여전히 낯설지만 그럼에도 최대한 여유롭게 작업하는 편이다.
 
“서울이 너무 낯설었어요. 경쟁사회구나. 다른 세상이구나. (이렇게) 느꼈죠. 오늘 인터뷰도 나머지 멤버들은 낮에 일을 뺄 수가 없어서 함께 하기 어려웠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저희가 음악을 ‘이거 아니면 안돼’라는 절실한 느낌으로 대하진 않아요. 오히려 여유를 갖고 하다 보면 뭘 하더라도 제대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편이죠. 멤버들과 함께 하면 뭐든 이룰 수 있다는 생각도 있고요.(정원준)”
 
EP 앨범 'Life In Timog'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보컬 정원준. 사진/루비레코드
 
지난 10일 발매된 EP ‘Life In Timog’은 그런 밴드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묻어난 앨범이다. 이들이 살아온 필리핀 앙헬레스(Angeles) 지역을 중심으로 그곳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필리핀 띠목파크 빌리지에서의 여유로운 인생을 노래한 ‘Life In Timog’, 친구들의 기념일을 축하하던 피자집을 배경으로 한 ‘Armando’s Pizza’, 필리핀의 슬로우라이프를 그려낸 ‘Dunk Shot’ 등 총 8곡이 담겼다.
 
특히 마지막에 수록된 곡 ‘Hometown’은 멤버들과 최근 다시 필리핀에 갔다가 영감을 받아 쓴 곡이다. 캠코더를 들고 다니면서 찍은 영상을 모아 만든 아날로그틱한 뮤직비디오는 ‘날 것’ 느낌의 밴드 사운드와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투 기타와 베이스, 드럼으로 밴드의 아날로그틱한 사운드는 최근 전자음악이 가미되는 밴드 음악의 경향과는 명확히 대비되는 지점에 서 있다. 자연과 평화, 자유를 말하는 직관적인 가사를 왜 거친 날 것의 사운드에 담아내는지가 궁금했다.
 
 
“굳이 딱 한 장르를 정해서 음악 작업을 하진 않아요. 곡 작업을 할 때도 장르에 구애받으려 하지도 않고요. 사운드 자체는 좋아하는 음악에 영향을 받은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봄베이 바이시쿨 클럽, MGMT, 라디오헤드를 함께 좋아했어요. 밴드 초기엔 멤버들 각자 좋아하는 장르의 음악이 많이 달랐지만 점차 교집합이 생기고 있어요.(이경석)”
 
마지막 트랙 'Hometown'의 뮤직비디오에는 다시 필리핀을 찾은 밴드들의 즐거워 보이는 여행 모습이 아날로그틱하게 담겨 있다. 사진/뮤직비디오 캡처
 
앞으로 여러 실험에 대한 생각도 있다는 멤버들은 “이번 앨범의 소리를 ‘트로피컬 사운드’라고 표현해주신 분들을 보고 ‘딱 맞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며 “어떤 장르를 하건 앞으로도 ‘L.O.P’만의 음악이 느껴지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 포부도 내비쳤다.
 
앨범 발매를 기념해 다음달 7일에는 마포구 연남동 ‘채널 1969’에서 단독 공연도 열 계획이다. 팬들과의 교감은 이들에게 음악을 하는 가장 큰 동기부여다. 최근 타지에서 유학 중인 한 팬은 이들의 음악을 듣고 외로움을 해소했다고 했다. 멤버들도 그 메시지에 위로 받고 치유 받았다. “스페셜 무대도 준비하고 있다”는 그들의 얼굴에서 더 많은 팬들과 호흡하길 바라는 기대감이 엿보였다.
 
마지막으로 "랜드오브피스를 ‘여행지’에 빗댄다면"이라 물음에, 순간 멤버들은 장난기 넘친 표정으로 속사포처럼 단어들을 쏟아냈다. 필리핀, 열대, 야자수 말고 떠오르는 게 없던 상태에서 듣게 된 만담은 의외로 풍부했다. “정신과 시간의 방에 갇히는 거지(정원준)”, “시계도 없고, 창문도 없는?(이경석)”, “암전 상태!(정원준)”, “주변 사람들도 같이 느려지는 그런 여행지(정원준)”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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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익도

자유롭게 방랑하는 공간. 문화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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