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안희정과 스트로스 칸
입력 : 2018-03-13 06:00:00 수정 : 2018-03-13 06:00:00
지난 주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의혹을 고발하는 뉴스가 전국을 강타했다. 피해자라고 자처하는 한 여인이 방송에 나와 얼굴을 드러낸 채 안 전 지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그 후 각종 SNS는 안 지사에게 욕설을 퍼붓는 메시지로 넘쳐났고, 많은 사람들은 말 그대로 ‘멘붕’ 상태에 빠졌다. 여기저기서 “안희정 너마저”라는 말이 쏟아져 나왔다.
 
안 전 지사는 그간 훤칠한 외모에 뛰어난 언변, 훈남 스타일로 ‘순정파 아내바보’ 이미지를 연출했다. 정치 마케팅이 탁월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상당수 언론마저 이에 편승해 대중을 환상에 빠지게 했다. 현대정치가 이미지 정치임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이 사건으로 안 전 지사는 그날 밤 바로 민주당의 자랑거리에서 추악한 자로 낙인찍혀 제명처분 대상이 되었다. 팬들 또한 지지를 철회했고 여권의 차기 대선주자라는 닉네임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안 전 지사의 정치생명이 끝났다는 소리도 나온다. 그의 인생 자체가 무너질지도 모른다. 사실관계 확인은 아직 남아있지만 한 남자가 자기관리를 잘못한 대가는 이처럼 혹독했다. 한국의 대중들은 “안희정에게 속았다”고 울분을 터트리는 중이다. 그러나 이는 과연 맞는 말일까.
 
대중을 우매한 존재로 치부하는 미국의 평론가 월터 리프먼(Walter Lippmann)은 <환상의 대중>에서 “오늘날 일반 시민은 뒤꽁무니에서 아무 것도 듣지 못하는 관중처럼 여겨지게 되었다…주위의 상황이라는 큰 흐름에 밀려 떠내려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 전 지사를 놓고도 대중은 리프먼의 말처럼 아무 것도 듣지 못하는 관중이었을지 모른다. 좀 떨어져서 보면 훌륭한 인물 같으나, 가까이서 보면 지극히 평범한 남자. 그러나 사실을 모르는 관중은 이미지만을 보고 환상에 빠져든 게 분명하다.
 
이번 ‘안희정 스캔들’과 비슷한 사건 하나가 있다. 2011년 5월14일 프랑스 사회당의 유력 대선주자였던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뉴욕 존에프케네디 국제공항에서 체포되었다. 주말을 파리에서 보내기 위해 비행기를 타기 직전의 일이었다. 스트로스 칸이 체포된 사유는 비행장으로 향하기 바로 직전 뉴욕 소피텔 호텔에서 청소부인 나피사토 디알로(Nafissatou Diallo)를 감금하고 성폭행한 혐의였다. 프랑스 언론뿐만 아니라 미국 언론은 이 사건보도로 홍수를 이뤘다. 특히 프랑스 언론과 정치권은 미국 언론이 수갑을 찬 스트로스 칸의 사진을 대대적으로 공개한 것을 놓고 ‘인권과 무죄추정 원칙에 어긋난다’며 미국의 사법제도를 맹렬히 비판했다. 프랑스 국민들도 스트로스 칸의 범행 혐의보다 대중 앞에서 수갑을 찬 그의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정치인 스트로스 칸에 대한 이후 사회당과 여론의 대처는 우리와 확연히 달랐다. 한국의 경우 여성의 폭로가 끝난 지 2시간 만에 민주당이 안 전 지사를 제명처분하기로 결정했다. 여론은 그를 성폭행범으로 기정사실화해 뭇매를 때렸다. 그러나 스트로스 칸에 대해 프랑스 사회당은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여론도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건 발생 1주일 후, 일간지 르 파리지앵(Le Parisien)의 의뢰로 아리스 엥테르악티브(Harris Interactive)가 프랑스인들의 의견을 알아보기 위해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19% 만이 스트로스 칸을 용서할 수 없다고 답했으며 22% 만이 이 사건이 ‘충격이다’고 답했다. 그리고 34%는 스트로스 칸이 사회당 경선에 나가길 원했다. 그러나 프랑스인 38%는 스트로스 칸이 대선의 사회당 잠재적 후보로서 15만 유로(한화 약 2억원)의 포르쉐 파나메라를 몰고 다니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했다. 프랑스인들은 대선 후보가 성 스캔들을 일으킨 것보다 값비싼 외제차를 타는 것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정치인의 성 스캔들을 바라보는 프랑스 국민과 우리 국민 사이에는 큰 인식차이가 있다. 그러나 각 나라마다 사회적 통념과 윤리·도덕적인 잣대가 다르므로 어느 한쪽이 옳고, 어느 한 쪽이 그르다고 절대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안희정과 스트로스 칸 사건을 비교해보고 싶었던 이유는 대중의 속성 차원에서다. 귀스타브 르봉(Gustave Le Bon)은 <군중심리>에서 대중의 특성을 “동조성과 폭력성이 강하다”고 규정짓고 있다. 감성적인 우리 국민이 정치인에게, 아니면 연예인에게 애정을 갖고 관심을 쏟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과도한 것은 금물이다.
 
미투 운동으로 구습을 타파하고 썩은 환부를 도려내는 데는 대환영이다. 다만 연일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가 이어지고, 여론은 춤을 추고, SNS는 욕설로 난무하는 풍경을 보면서 자칫 잘못하다가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예감이 들어 섬뜩하다. 미투 운동이 더 이상의 비극 없이 고요한 혁명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감성이 아닌 이성의 눈으로 사건들을 냉철히, 신중하게 바라보고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물론 언론의 각성이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되지만 말이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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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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