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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한국거래소, '그들만의 세상' 만드나
2018-02-06 08:00:00 2018-02-06 08:00:00
‘주주총회 의결권 대리행사시 대리인의 자격을 주주로 제한한다.’
 
한국거래소가 5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향후 주총 의결권 대리행사시 대리인의 자격을 '거래소 주주'로 제한한다는 내용으로 정관을 변경해 논란을 낳고 있다.
 
거래소는 이날 주총에서 ▲코스닥시장위원장과 코스닥시장본부장 분리 선임 ▲코스닥시장위원회 권한 강화 등과 함께 '의결권 대리인의 자격을 주주로 제한하는 안건'을 상정해 통과시켰다. 주주가 법인일 경우 소속 직원을 대리인으로 선임할 수 있다는 단서가 있긴 하지만 법인이 아닌 거래소 소액주주인 우리사주조합에 대해서는 이 단서가 해당하지 않는다. 
 
작년 10월 정지원 이사장 선임을 위한 주총 당시 사무금융노조는 우리사주조합의 대리인 자격으로 참석해 절차상의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정관 변경으로 이같은 일은 재연되기 어려워졌다.
 
정부는 소액주주들의 주총 참여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 이른바 슈퍼 주총데이를 없애 최대한 참여를 보장하는 한편 전자투표 확산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집중투표제도 의무화로 소액주주의 권익 확대에 앞장서고 있다. 집중투표제는 주식 1주에 선임하는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주는 제도로 전자투표제와 더불어 소액주주의 권익 확대에 도움될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거래소의 이번 결정은 소액주주들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시민단체는 “듣도 보도 못한 정관 변경”이라며 “자기들끼리 해먹겠다는 뜻"이라고 비판했고, 증권업계 관계자는 “일반 회사도 아닌 거래소가 이같이 정책을 바꾸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한국거래소가 민영화한지 3년차에 접어든 가운데, 거래소 내부에서는 기업공개(IPO)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주요 선진국들의 거래소가 상장돼 있는데 한국거래소는 상장을 막을 이유가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소액주주들의 참여를 막는 것은 IPO와는 거리가 먼 행동으로 보인다.
 
한국거래소는 국내 기업들의 상장 심사 및 승인을 비롯해 상장폐지 등의 관리감독도 맡고 있는 곳이다. 2015년부터 매년 약 100개에 가까운 기업들을 심사해 상장시켰고. 2016년 39개사, 2017년 62개사를 상장폐지 시켰다.
 
이처럼 기업들을 심사하고 관리하는 곳이 명분 없는 정관 변경을 추진한 이유가 의문스럽다. 또 이번 정관 변경이 선례가 돼 정부의 소액주주 주총 참여 활성화에 발목을 잡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신항섭 증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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