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태의 경제 편편)이건희 차명계좌도 성역인가
입력 : 2018-01-24 06:00:00 수정 : 2018-01-24 06:00:00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 과정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차명계좌에서 4조4000억원 가량의 차명재산을 빼돌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 2008년 삼성 특검을 통해 확인된 차명계좌를 실명계좌로 전환하지 않고 찾아갔다는 것이었다.
 
금융감독원이 박찬대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그 당시 드러난 이 회장 차명계좌는 총 1199개였고, 이 가운데 1021개 계좌가 금감원 조사를 받았다. 조사받은 차명계좌 중에서 20개는 1993년 8월 단행된 금융실명제 이전에 만들어졌고, 나머지 1001개는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 개설됐다. 최근 경찰과 금감원 등의 조사 결과 차명계좌는 더 늘어났다. 하지만 일단 접어두겠다. 과거의 차명계좌만 놓고 보더라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특검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차명계좌를 실명전환하면서 사회를 위해 좋은 일에 쓰겠다고 약속했었다. 최근까지도 국민들은 언젠가 이 회장과 삼성그룹이 차명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것으로 믿고 기대해왔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계좌에 들어있던 자금이 감쪽같이 ‘주인’을 찾아 빠져나간 것이다.
 
박용진(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질의과정에서 금융위원회가 차명계좌에 대해 실명전환대상이 아니라고 유권해석해주는 바람에 이건희 회장이 인출해 갔다고 비판했다. 금융위가 삼성에게 4조5000억원 상당을 챙겨주는 특혜를 베풀었다는 지적이었다.
 
금융실명제법에 따르면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 개설된 비실명자산에 대해서는 이자와·배당소득에 90%의 소득세와 9%의 주민세를 차등과세하게 돼 있다. 금융실명제 실시 이전에 개설된 비실명자산에 대해선 99%의 차등과세 뿐만 아니라 원금의 50%를 과징금으로 징수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건희 회장은 과징금은 물론이고 소득세도 내지 않았다. 그가 회피한 세금과 과징금이 대략 2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박용진 의원은 추정했다.
 
단순히 금액만 문제는 아니다. 이건희 회장은 당국의 이런 ‘배려’ 덕분에 삼성생명의 명실상부한 최대주주가 되었다. 이건희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 삼성특검 이전 4.54%으로 낮아져 있었다. 그런데 특검 이후 324만4800주의 실명전환을 통해 20.76%로 높아졌다. 이를 고리로 삼성그룹 전체에 대한 굳건한 지배권도 확립했다. 만약에 당시에 금융위가 법과 원칙대로 했다면 이건희 회장은 삼성생명과 삼성그룹 전체의 경영권을 지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도 완전히 달라졌지도 모른다. 경영권을 지켰더라도 거액의 과징금은 납부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과징금은커녕 세금도 내지 않았다니 이건희 회장은 참으로 중요한 순간에 당국의 깊디깊은 배려를 받은 셈이다.
 
이제 세금 문제는 가닥이 어느 정도 잡혔다. 금융위가 차명계좌로 확인된 경우 이자와 배당소득에 차등과세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지만 금융실명제 실시 이전에 개설된 차명계좌에 대한 과징금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열쇠를 쥐고 있는 금융위원회에서 막혀 있기 때문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취임 후 자문기구로 활동했던 금융행정혁신위원회는 지난해 12월20일 금융위에 제시한 최종권고안을 통해 금융실명제 이전 차명계좌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금융위원회는 여전히 유보적이다. 다만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듭되자 과징금 부과대상인지 법령해석을 해달라고 법제처에 의뢰했다고 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어 지난 15일 금융혁신 추진방향을 발표하면서 실명제와 관련한 법제처 법령해석과 관련 부처 의견을 감안해 ‘합리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애매모호하다.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는 것인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다. 시간벌기를 위한 수사가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지난날 이건희 회장과 삼성그룹은 오랜 동안 법적으로나 제도적으로나 여러 가지 ‘우대’를 받아왔다. 법위반 사실이 드러나도 법대로 ‘대우’ 받은 적이 별로 없다. 우리 사회의 가장 견고한 ‘성역’ 이었다.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도 그 가운데 하나라고 하겠다.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가 인출된 과정도 수수께끼이다. 지금이라도 그 과정을 정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특히 그 과정에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무엇을 했는지 따져봐야 한다. 금융행정혁신위도 차명계좌의 인출과 실명전환 과정을 재점검하라고 권고했다. 금융행정혁신위원회의 권고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아마도 그 처리결과는 금융당국이 성역을 허물 의지가 있는지 가늠할 시금석이 될 것이다.
차기태(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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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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