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상황을 바꾸려면 사회를 고발하라
입력 : 2017-12-12 06:00:00 수정 : 2017-12-12 06:00:00
서울역 지하도를 일컫는 말 중 하나가 ‘노숙자들의 둥지’다. 저녁이 되면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종이박스로 바람막이를 만들고, 그 안에서 새우잠을 잔다. 이런 풍경은 서울역 지하도에서 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노숙자를 위해 지방정부는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있으며 중앙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혹한에 거리를 헤매는 레미제라불(불쌍한 사람들)을 정치인들은 수수방관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진보를 표방하는 새 정부는 적폐청산 뿐만 아니라 소외계층을 위해 세심한 배려를 해야만 한다. 흔히 진보의 가치로 평등, 복지, 불복종을 든다. 이러한 가치는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다뤄서는 안 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은 불평등을 줄이는 일이다. 정치인들은 선거철마다 불평등을 없애고 복지를 늘리겠다고 대중을 현혹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이는 헛된 공약이 되기 십상이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지난 6월 대선에서 승리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취임 후 한 달 보름 만에 오를레앙을 방문해 이민자 문제를 꺼내 들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생 장 드 라 뤼엘(Saint-Jean-de-la-Ruelle)에 있는 난민 가정을 방문한 후 “연말까지 숲속이나 거리에서 자는 사람들이 더 이상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첫 번째 전투는 모든 사람이 당당히 살도록 하는 것이다. 나는 여기저기에 비상 수용소를 만들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길거리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겠다. 가장 시급한 것은 노숙자들에게 행정적 처우를 받게 하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약속을 한지 5개월이 지난 지금 프랑스의 노숙자 문제는 얼마나 해결되었을까. 파리의 한 노숙자인 크리스티앙(Christian)은 “연말까지 거리에 더 이상 노숙자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 마크롱 대통령의 약속을 냉소적으로 비판했다. “지금이 12월이다. 일주일 전부터 끔찍하게도 춥다. 추위를 대비한 정부의 플랜이 어디에 있는가”라고 그는 격분했다. “만약 제가 덮고 자는 이불을 꺼내 보인다면 SNS는 뜨거워 질 것이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크리스티앙은 소믈리에(포도주 담당자)로 레스토랑에서 상당 기간 일했지만 해고되었고 노숙자가 되었다. 그는 2016년 12월 아침녘 친구와 함께 도로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데 한 남자가 청소를 하면서 그들에게 물을 뿌리는 모욕적인 경험을 했다. 크리스티앙은 곧 트위터에 “자 사람들이 파리에 있는 노숙자들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보십시오”라는 글과 사진을 올렸다. 이는 대중을 흥분하게 했으며 해당 트윗은 100회 이상 리트윗 되었다. 크리스티앙은 이후 “사람들은 우리를 돕고자 했다. 파리시는 안 이달고 시장의 사과 메시지와 함께 새 침낭을 보내왔다”는 트윗도 남겼다.
 
그때부터 크리스티앙의 트위터 “살아있는 노숙자 2.0 해학과 찬물”은 노숙자의 삶을 알리는 SNS의 표본이 되었다. 그는 트위터 ‘@pagechris75’에 일기를 쓰고 있으며 현재 1만3300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그의 트위터에는 노숙자의 존경을 받는 피에르 신부의 글이 적혀 있다. “선행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완벽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크리스티앙은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를 모른다. 그들은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묻는 메시지를 보낸다”는 글도 남겼다. 어느 날 그의 절친인 앙드레가 더러워서 차마 볼 수 없는 신발을 신고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신발 사이즈를 적어서 트위터에 올렸다. 며칠 후 누군가가 앙드레를 위해 운동화 한 켤레를 보내왔다. 앙드레는 흰수염에 키가 머쓱하게 큰 사람으로 보조금도 받지 못해 카페 앞에서 구걸하였는데 자주 쫓겨났다. 트위터 덕분에 크리스티앙은 정기적으로 스위스 초콜릿 꾸러미와 사부아의 소시지와 치즈를 받아 동료들에게 나눠준다.
 
크리스티앙의 친구 사이드(Said)도 2011년부터 노숙을 하고 있다. 그는 불어 선생이었지만 알콜 중독으로 일자리를 잃었다. 사이드는 와이파이를 무료로 쓸 수 있는 도서관에 들러 그의 딸과 연락을 주고받는다. 사이드는 그의 딸이 바칼로레아(대학입학자격시험)에서 20점 만점에 18점을 맞았다고 자랑스러워하며, 정치인들에게 불어철자 경연대회를 열어 피에르 신부가 노숙자를 위해 정부에 보낸 1954년 호소문을 받아쓰게 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렇게 노숙자인 크리스티앙과 사이드는 인터넷이나 핸드폰을 이용해 자신들이 처해있는 상황을 고발하고 정치인들의 위선을 폭로하고 있다.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의 말처럼 지금처럼 끔찍한 세상에서 정치인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 사회에 살고 있는 노숙자들도 정치인들에게 기대하기보다 각종 통신장비를 이용해 자신의 생활상을 고발하는 앙가주망(참여)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다. 가난한 자들은 그들의 생활상을 스스로 고발하고 시민들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아울러 빈곤과 불평등을 사회적 문제로 이슈화하여 정치인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몰고 가야 한다. 크리스티앙과 사이드처럼 노숙자 자신이 앙가주망의 액터(활동가)로 변신해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을 만들 때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싶은 연말이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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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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