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아동 인권, 대통령이 발 벗고 나서야
입력 : 2017-11-28 06:00:00 수정 : 2017-11-28 06:00:00
‘어린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만든 소파 방정환 선생은 아동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더 새로운 사람이다. ‘내 아들놈, 내 딸년’ 하고 자기의 물건같이 여기지 말고, 자기보다 한결 더 새로운 시대의 새 인물인 것을 알아야 한다. 자기 마음대로 굴리려 하지 말고 반드시 어린 사람의 뜻을 존중하도록 하여야 한다.”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전쟁고아를 구제하기 위해 고아원 원장이 된 폴란드 출신 야누슈 코르착(Janusz Korczak)은 저서 ‘아이들’을 통해 “어린이는 비로소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완전한 권리를 가진 하나의 인간이다. 그들은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권리를 가지고 있고 애정과 존중을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 아이들에게 잠재하고 있는 미지의 요소는 장래 우리들의 희망이다”라고 설파하며 아동 인권의 초석을 다졌다.
 
이렇게 시작된 아동 인권 논의는 1989년 11월20일 열린 유엔총회의 아동권리협약 채택으로 이어졌으며, 이 날은 ‘세계 아동의 날’로 지정됐다. 그리고 유엔의 거의 모든 회원국이 이 협약을 도입했다. 물론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각종 사안에 상처받기 쉬운 특성과 성장 발달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육체·심리·감정 폭력으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고 자율성을 부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러한 취지로 탄생된 세계 아동의 날은 지난 20일 28돌을 맞았다. 서구에서는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뜻 깊은 행사가 곳곳에서 열렸다. 프랑스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부부가 15명의 어린이와 청소년을 엘리제궁에 초대해 2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들의 의견을 들었다. 유니세프 대표들과 함께 방문한 아이들은 우선 브리지트 마크롱 영부인과 엘리제궁을 견학했다. 영부인은 아이들에게 대통령 내외가 사용하는 사적 공간을 보여줬고, 리셉션실과 대통령 부부가 직접 고른 현대식 그림·가구들도 보여줬다. 브리지트 영부인은 “우리는 국유 비품을 고를 수 있다…약간의 소형 가구들도 바꿀 수 있다”며 엘리제궁의 생활을 설명했고, 국무회의실 직원들과 각료들이 국무회의 전 휴대전화를 보관해야 하는 서랍장도 보여줬다.
 
마크롱 대통령은 니콜 벨루베(Nicole Belloubet) 법무부 장관, 아녜스 뷔젱(Agnes Buzyn) 보건부 장관, 장 바티스트 르무안(Jean-Baptiste Lemoyne) 외무부 장관이 배석한 상태에서 아이들을 국무회의실 책상에 둘러앉히고 일일 장관으로서 차례로 질문토록 하는 장면도 연출했다. 10살 정도의 한 어린이는 누텔라 초콜릿과 같은 해로운 제품의 등급을 대통령에게 물었고, 소피는 학생들에게 보다 더 많은 스포츠와 음악, 그리고 공작활동을 조화롭게 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마티외는 고등학교 3학년생이 하는 실습을 고등학교 3년 내내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건의도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여러분이 질문하고 요구한 것은 우리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고민하는 부분이다”고 아이들에게 답했다. 앞서 마크롱 대통령은 어린이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가난과 폭력에 대항하기 위해 자크 뚜봉(Jacques Toubon) 인권 수호자와 주느비에브 아베나르(Genevieve Avenard) 어린이 인권 수호자의 연말 보고를 받았다. 이렇게 프랑스에서는 세계 아동의 날에 아동 인권의 소중함을 재천명하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아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요구 사항을 듣는 특별한 행사가 이루어졌다.
 
이와는 달리 한국 정부는 세계 아동의 날 그 어떤 공식 행사도 없이 그냥 지나갔다. 알다시피 문재인 대통령은 인권 변호사 출신이다. 그런 대통령이 세계 아동의 날에 한국 아이들의 인권을 위해 그 어떤 행사도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 것은 유감스럽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학대받는 아동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아동 인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아동학대 사례는 2013년 6700여 건에서 2015년 1만1000여 건으로 증가했다. 2년 사이 약 2배가 증가한 것이다. 또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 아동·청소년들의 주관적 행복지수가 꼴찌라는 조사결과도 있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아이들이 살기에 불행한 나라로 변해가고 가고 있다. ‘헬조선’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위험한 사회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인권 변호사였던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할 때다. 아이들이 맘 놓고 살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정환 선생과 코르착의 말처럼 아이들은 완전한 권리를 가진 하나의 인격체다. 이런 아이들을 가정과 사회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세계 아동의 날과 같은 특별한 날을 잘 활용해 캠페인을 벌이고 아동 인권의 소중함을 재천명 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돌아오는 2018년 11월20일 세계 아동의 날에는 청와대가 직접 나서 아동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더 나아가 아이들이 한국 사회에 무엇을 원하는지 듣고 얘기 나눌 수 있는 뜻 깊은 행사를 열길 희망한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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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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