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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변호사와 검사와 판사
2017-12-03 17:48:02 2017-12-03 17:48:02
필자가 연수원에 다닐 때는 같은 반 같은 조에 있는 모두가 형이요 누나, 동생이었다. 가장 나이 어린 막내가 ‘총무’를 맡고, 나이 많은 형님이 ‘당연직 반장’을 맡아 교수님들에 대한 의전과 수료 후 친목까지 책임졌다. 사시 공부에 청춘의 대부분을 바친 장수생을 반장으로 뽑는 이유는, 보다 활발한 네트워킹을 통해서 그들이 변호사로 개업했을 때 동기 판, 검, 변들이나 지도교수였던 부장님들(판, 검사)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받으라는 일종의 배려였다. 한 반의 정원은 약 60명이었는데 이 중 여학생의 비율은 12명 정도. A조는 민사재판 실무를 맡는 부장판사님이, B조는 형사재판 실무 담당 부장판사님이 그리고 C조는 부장 검사님이 지도교수가 되어 각 조를 책임졌다.
 
첫 회식을 하던 날, 엄청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일산에서 지도교수님으로부터 이런 저런 강의를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사법 연수원에 입소하면 5급 공무원으로 임명되기 때문에, 항상 단정한 정장을 입고 품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2년의 연수를 마친 뒤에는, 누가 판, 검, 변 중 어느 직역에 몸담게 될지 모르니 서로 척지지 말고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도 했다.
 
매일 8시간씩 주 5일 동안 빡빡한 강의를 들으며 머릿속에 억지로 구겨 넣었던 법지식과는 또 다른,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실질적인 법조 교육이 끝나면 폭탄주 타임이 이어졌다. 당시는 양폭이 유행이었는데, 한 명씩 돌아가면서 1/2 정도 양주를 채운 작은 잔을, 가득 찬 맥주잔에 퐁당 집어넣고 간단한 폭탄사와 함께 원 샷을 했다. 목 넘김이 요란한 폭탄주가 3분의 2 정도 비워지면 나머지 사람들은 단호하고 힘차게 박수를 치고, 폭탄주를 마신 사람은 다 마셨다는 표시로 딸랑딸랑 맑은 소리가 날 정도로 흔들어주는 것이 예의였다.
 
필자가 약 3년 만에 합격하기는 했지만, 심리학으로 박사과정까지 마치면서 10년 동안 시간 강사(일명 보따리 장사)로, 영재교육연구소장으로 외도(?)를 한 후 35기 사법 연수생으로 입소했기에, 다른 친구들보다는 출발이 많이 늦은 편이었다. 게다가 연수원 때 둘째를 낳느라 한 해 휴학을 한 탓에 수료는 36기생들과 같이 했다. 법학 전공도 아니었고, 심리학 공부만 15년 이상을 해서 법조 인맥이 약했지만, 두 기수를 넘나드는 인맥과 ‘동기사랑 나라사랑’이라는 구호로 너나 할 것 없이 친하게 어울려 다니던 시절이라 나중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식구들보다는 동기들과 더 많이 부대꼈던 것이 큰 재산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같은 고등학교, 같은 대학교, 같은 고향처럼 광범위하게 얽혀있는 인맥의 그물망에서 크고 작은 촘촘한 인연들이 언제든 뒷배가 되어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 36기 이전의 선배 기수들에서 그러한 인맥의 뒷배가 여간해서는 끊어지기 어려운 화려하고 튼튼한 인연의 밧줄이 되어 아름다운(?) 법조 인맥으로 시스테믹하게 작용하는 것을 공공연히 목격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의뢰인들은 사건이 터지면 담당 검, 판들과 친한 변호사가 누군지 부터 찾는다. 누가 연수원 몇 기이고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누가 누구랑 친했고 누구랑 경쟁자인지 앞 다투어 자료가 검색되고, 전통적이고 전형적인 방법으로 연결고리를 찾기 어려운 경우에는 법조 생활을 통해 맺어진 수많은 새로운 인연의 끈이라도 빌려와 연결을 시키기 마련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면 예컨대, 학교 동기이자 같은 직역 근무 경력, 그리고 법조인 중에서도 매우 동질적인 특이 성향을 가졌다는 특성으로 묶이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최윤수 전 국정원 2차장 같은 부류가 그들만의 프리미엄급 부띠끄 인맥을 형성하여 강력하고 은밀한 이너 써클을 운영해왔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들이 형성한 카르텔의 끈끈함이나 강도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능히 짐작이 간다.
 
누구도 함부로 끼워주지 않는 배타적 선민의식으로 똘똘 뭉친 엘리트들이, 일반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볼 것이며, 그러면서도 우리들의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사건들을 일정한 방향성에 근거하여 얼마나 독단적으로 처리하여 왔을 것인지 안 봐도 쉽게 상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검찰에 비해 판사들은 덜 할 것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도긴 개긴 이다. 여기에 변호사들까지 가세하게 되면, 정말 입을 다물고 싶을 정도이다.
 
‘실무자들끼리 알아서 한 일로 정리하자’며 자신의 관여 사실을 축소 은폐한 것으로 의심받는 최 전 차장에 대해, 변호사가 구속의 부당성을 설명하자 법원은 “‘주거와 가족관계, 범행 가담 경위와 정도에 비추어’ 영장을 기각한다”고 했다. 또 강한 어투로 변호사가 방어 논리를 펼치자 아무런 사정변경이 없음에도 영장실질심사 때와는 정반대의 이유로 구속적부심에서 혐의자들을 풀어주는 일도 법원에서 속출하고 있다. 점점 법원과 검찰의 판단을 믿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것이 누구의 잘못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노영희 법무법인 '천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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