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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쟁 볼모 된 사법부)③"더 이상 방치 안돼…국민소환제 등 적극적 대안 필요"
"제도 보다 정치력 문제" 지적도…공론화 통한 반복적 공백차단 필요성에는 공감
2017-09-17 18:00:00 2017-09-18 08:35:03
[뉴스토마토 최기철·홍연 기자]‘사법부 공백 사태’의 심각성 인식과 함께 대책마련 또는 이에 대한 공론화가 학계와 법조계를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독일과 같이 전임자가 후임자 취임시까지 근무를 계속하는 방법과 예비재판관 제도 운영, 헌재소장의 임기의 법적근거 마련, 국민소환제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대법원 공백에 대한 대안 마련도 같은 선상에서 거론된다. 각기 갈래와 장단점은 있지만 정쟁으로 인한 사법부 공백을 없애기 위한 공론화와 대책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정주백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독일의 경우 임기 만료나 정년 도래로 퇴임하는 경우 후임자가 나타날 때까지 퇴임할 재판관이 업무를 하도록 연방헌법재판소법이 정하고 있다"며 "임명동의안 부결은 국회 권한 행사의 하나로 비난할 수 없지만, 공백에 대해선 제도적으로 개선할 점이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헌재 29년 역사상 연임한 재판관으로, 김진우·김문희 전 재판관 두 명의 예가 있다.
 
'전임자 유임제'가 대안…'이론적 모순' 반대도
 
그러나 이들에 대해서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헌법사건 전문인 노희범 변호사는 “법을 고쳐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고 임기가 있음에도 마냥 직을 수행하게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단점도 크다”고 설명했다. 특히 대법원장이나 헌재소장 처럼 헌법기관의 장인 경우에는 반대여론이 큰 것으로 보인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장이나 헌재소장의 가장 핵심적 역할은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들을 통할하는 것이고 그 리더십을 부여하는 것이 대통령의 지명과 국회의 동의"라며 "임기가 끝난 전임자가 계속할 경우 리더십 자체가 약화될 위험이 있는데 그런 대법원장이나 소장에게 국가의 장래를 맡기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예비재판관 제도에 대해서도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석사태가 없을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 예비재판관 임명시 국회의 동의를 받을 것인지 등이 문제된다”고 평가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10차 변론이 열린 지난 2월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재판관의 자리가 공석으로 비어있다. 사진/뉴시스
헌재 내부 "소장 임기 법으로 정해야"
 
다만, 헌재소장의 경우 그 공백을 줄이기 위해 임기를 명확히 하는 법 개정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헌재 내부에서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헌재 관계자는 "재판소의 정치적 독립성이 굉장히 중요한데 우리나라는 제도적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며 "소장 임기가 헌법에 명시가 돼 있지 않아 그 자체로 중립성이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에는 재판관 임기만 6년으로 명시돼 있다. 이 때문에 임명된 소장은 재판관 임기가 끝나면 소장에서 물러나야 한다. 김 후보자도 내년 9월에 재판관 임기가 끝나 소장으로 임명된 후에도 임기가 일 년 남짓으로 너무 짧다는 의견이 야당에서 제기됐다. 현재 국회에는 헌재소장 임기를 대통령 임명을 받은 날로부터 6년으로 명시하자는 조항 등이 담긴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국회가 사법부 공백사태를 고의로 초래할 경우 국회를 국민이 직접 견제할 수 있는 방안으로 국민소환제가 오랫동안 거론돼왔다. 국민소환제는 지역구 국민들이 직접 해당 의원에 대한 징계성 조치를 의결하는 것으로, 개헌 논의와 함께 활발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 역시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헌법상 대의민주주의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 맞겠느냐는 것이다. 국민에 의한 직접 견제를 부담스러워 하는 정치권 등에서 주장하는 논리다.
 
'국민소환제' 도입 두고 의견 엇갈려
 
반론 역시 만만치 않다. 대의민주주의제가 완벽하지 않은 이상 직접민주주의 방식으로 일정 부분은 보완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이끌어낸 촛불집회는 이상적인 직접민주주의의 접목을 현실화 시켰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촛불집회를 주최한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법률팀 오민애 변호사(법무법인 향법)는 "국회의원들의 의사표시는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막연한 반대가 아니라 건전한 반대, 건전한 비판이 아니라면 문제가 있다"며 "현재 (국회의) 의사표시 모습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때문에, 이는 국회의원의 권한으로서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의사를 제대로 파악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소환제와 관련해 학계에서는 영국을 주목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2015년 국회의원소환법을 재정해 국민들이 직접 국회의원들을 쫓아낼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한상희 교수는 “우리나라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될 수 있지만 대의민주주의제의 표본인 영국이 국회의원소환법을 마련했다는 것은 국민소환제가 대의제와 반드시 어긋나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정치권이 헌재소장이나 대법원장의 독립성 자체를 침해하고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고려할만 하다”고 말했다.
 
2012년 9월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신임재판관 취임식에서 신임 헌법재판관들이 자리에 참석 하고 있다. 김이수 재판관의 경우 전임자인 조대현 재판관 퇴임 이후 438일만에 취임했다. 왼쪽부터 김이수, 이진성, 김창종, 안창호, 강일원 헌법재판관.

국회 개헌특위, 국민소환제 논의서 제외
 
우리 현실은 어떨까.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헌법개정특위) 위원인 황도수 건국대 교수에 따르면, 다소 비관적이다. 황 교수는 "국민소환제는 개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국회 개헌특위에서는 국민소환제를 논의 과제에서 모두 제외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국회의원들에게 국민이 원하는 책임정치를 할 의사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실무적인 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우선 소환 주체를 두고 여론이 분분하다. 학계에서는 지역구와 전체국민이 모두 소환할 수 있다는 해석이 있다. 지역구 의원의 경우 지역구 유권자들이 소환 주체가 되는 것은 당연하고, 국회의원은 넓게 봤을 때 국민 전체의 대표라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국민도 소환할 수 있다는 논리다. 황 교수는 "전국적으로 국민소환이 행해질 때 복잡해질 수 있지만 선거시스템이 많이 개발돼 있어 잘만 운용만 하면 반드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고려할 여지는 있다"고 말했다.
 
소환 주체문제를 해결한 다음에는 소환 당사자를 누구로 특정할 것인지가 또 문제된다. 헌법기관 동의권 행사 등은 통상 당론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소환 대상자를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헌법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회, 무기 뺏는 직접 견제 반대"
 
국민소환제의 차선책으로는 국회의원 임기 제한·당선횟수 제한 등이 학계에서 논의되고 있다. 이에 더해 임명동의안 처리 시한을 입법적으로 두는 방법도 거론된다. 황 교수는 "헌법기관 구성원 임명 인준에 관해서는 인사청문회를 거쳐 언제까지 절차를 종결하도록 정하고 그 안에 끝내지 못하면 인준하는 것으로 간주하도록 법을 정비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황교수는 "이런 방법이 있더라도 국회로서는 정쟁의 무기를 빼앗기는 것이기 때문에 입법화 될지는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7월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로비에서 열린 신임 대법관 취임식에서 조재연(왼쪽), 박정화 신임 대법관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이상훈 전 대법관 퇴임 후 141일, 박병대 전 대법관 퇴임 후 47일만의 후임 대법관 취임이다. 사진/뉴시스
 
사법부 공백의 반복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제도가 변경된 적이 없는데도 이런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정치력의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라며 "제도의 문제가 아닌 제도를 운영하는 과정의 문제"라고 말했다. 송 교수는 "헌법기관 장의 임명은 기관구성의 완결성 문제로,  대통령과 국회의원 모두 의무가 있는데 정치적인 상황 자체가 기존 방식으로는 해결이 안 되고 있다"며 "대통령이나 여권에 여소야대 정국에서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지만 아무런 정책적 수단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재화 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법위원장도 "제도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전 위원장은 "사법부 공백은 대의민주주의제와 관련해 국민의 의사와 대표자의 의사가 불일치하는 문제"라며 "주권자인 국민이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있고, 이미 촛불집회 때에 그 장치로 국민소환제가 논의됐다. 개헌시에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고 말해 송 교수 견해와는 다소 차이를 보였다.
 
"제도 보다 정치력으로 해결" 의견도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는 해석 가운데에는 정치권의 각성을 요구하는 입장도 있다. 노희범 변호사는 "가장 바람직한 것은 정치권이 대법관 내지 헌법재판관 임명을 정치적 추쟁의 산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법이 정치화 되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이라고 지적했다. 노 변호사는 "물론 적임자를 두고 의견이 갈릴 수 있고 인사권을 견제할 수는 있으나, 해당 개인의 역량과 자질, 균형감 등 업무 수행 적격을 우선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변호사는 또 "결국 뾰족한 해법이 없지만 인사권자 입장에서도 국회의 동의를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는 사전 소통이 필요하다"며 그 예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를 들었다. 노 변호사에 따르면,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경우 연방의회 선출 몫 재판관은 의회의 3분의 2의 찬성을 요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쪽 지지만 받는 사람은 재판관으로 선출될 수  없는 시스템이다. 노 변호사는 "이를 입법적으로 도입할 수도 있지만, 지금도 대통령과 국회가 상호 충분한 사전 논의를 거쳐 다수가 동의하는 사람을 임명한다면 재판의 독립성,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8월2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진행된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제정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에서 한 어린이와 참가자가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기철·홍연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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