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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쟁 볼모 된 사법부)②피해는 또 국민 몫…반복적 관행이 더 큰 문제
헌법상 기본권 '재판받을 권리' 중대한 침해…MB정권, 역대 사법부 중 공백 가장 커
2017-09-17 18:00:00 2017-09-18 08:27:46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등 헌법기관 구성에 공백이 있을 경우 가장 피해를 보는 주체는 역시 국민이라는 데에는 학계와 법조계 모두 이론이 없다. 직접적으로는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받는다. 침해는 불완전한 합의체에 의한 판단과 선고의 지연 두 가지로 나타난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탄핵사건처럼 국정수행 중단으로 신속한 결정이 국가적으로 요구되는 경우에는 총 인원 9명 중 8명으로라도 결정을 내리는 것이 옳지만, 이런 사정이 아닌 다음에야 9명 재판관 중 8명으로는 아주 민감한 정치적 분쟁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곤란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예를 들어 위헌법률심판 사건에서 위헌의견이 5대 3으로 나올 경우, 6인이 위헌정족수이기 때문에 합헌으로 결정된다. 그러나 새로 들어온 1명이 위헌의견이면 위헌으로, 합헌 편에 서면 합헌이기 때문에 8인체제는 내부적으로 위헌과 합헌 의견이 첨예하게 갈릴 경우에는 쉽게 결정에 이르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헌재 공백, 국민인 청구인에게 불리"
 
헌법연구관 출신인 황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판부 공백이 있을 경우에는 소송상 청구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헌법상 위헌정족수는 헌법재판관 9인이 모두 재판에 참여해도 6인이고, 7명만 참여해도 똑같이 6인"이라며 "법령의 위헌이나 기본권 침해를 주장·입증해야 하는 청구인인 국민으로서는 매우 불리하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특히 헌재소장은 헌법재판의 재판장으로서 사건의 중요도를 중심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권한대행으로서는 이런 기능이 현저히 떨어지게 마련이다. 헌재소장 공석은 일반 헌법재판관의 공석과는 또 다르다"며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헌재소장 임명은 가장 먼저 신속히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와 황 교수의 지적은 역대 사법부 공백사태 때마다 재연돼왔다. 이명박 정권 말기인 2012년 7월 국회 임명동의안 처리 지연으로 대법관 4명의 공백사태가 발생했을 때 대법원은 4명으로 구성되는 소부를 운영할 수 없게 되자 대법관 한 명이 2개 소부 사건을 맡도록 편법 운영했다. 당시 대법원 소부 1부는 김능환·안대희 대법관 퇴임으로 이인복·박병대 대법관만 남아 정상적인 심리가 어려웠다. 이 때 소부 2부 소속의 양창수 대법관이 1·2부 사건 선고에 모두 관여했다. 사법부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당시 정진후 통합진보당 의원의 시국선언 사건이나 백원우 전 의원의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방해 사건 등 주요 사건이 계류돼 있었다.
 
대법관 공석 상태로 인해 한 차례 연기됐던 '발레오전장 노조 사건'에 관한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이 2015년 5월28일 오후 대법정에서 대법원장 및 대법관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이 사건에 대한 공개변론을 생방송 중계로 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명박 정권 때 헌재 438일 공백
 
이명박 정권은 사법부 공백과 관련해 역대 최대 암흑기이다. 헌재 사상 가장 오랜 공백기인 조대현 재판관과 김이수 재판관 사이 438일 공백이 이때 발생했다. 야당이 조용환 변호사를 후보자로 지명했지만,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이 좌익적 이념을 가졌다며 임명동의 절차를 지연시켰다. 김종대·민형기·이동흡·목영준 재판관 등 4명이 동시 퇴임했지만 후임이 5일간 취임하지 않아 헌재 역사상 가장 큰 공백이 발생한 때에도 이때다. 
 
같은 시기 대법원도 흑역사를 겪었다. 역대 정부 가운데 대법원에서 가장 큰 공백이 있었던 시기이다. 박시환·김지형 대법관이 2011년 11월18일 퇴임한 뒤 45일 뒤에야 후임인 김용덕·박보영 대법관이 취임했으며, 박일환·김능환·전수안 대법관 등 3명이 2012년 7월10일 한꺼번에 퇴임했는데도 22일이나 있다가 고영한·김창석·김신 대법관이 후임으로 임명됐다.
 
선고 지연의 예는 한 두 개가 아니다. 앞의 예와 같은 시기인 2012년 7월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선고 일정을 아예 무기한 연기했다. 또 같은 시기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주임검사인 박상옥 당시 대법관 후보자 임명이 난항을 겪자 대법원은 발레오전장 노조 사건 관련 공개변론을 연기했다. 이 사건은 노동자 일부가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탈퇴하고 기업별 노조를 설립하는 것이 허용되는지 여부를 다투는 소송으로, 사회적으로 매우 파장이 큰 사건이었다. 대법원은 “대법관 공백 상태 장기화로 중요 사건을 심리해야 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대법 전원합의체 무기한 연기도
 
다만, 이때의 변론 연기는 2007년 ‘김태환 제주도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2010년 긴급조치 1호 위헌 선고’ 등 중요 사건에서 대법관 12명만으로 전원합의체가 선고한 예에 비춰 다소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헌재의 경우 법률의 위헌성을 판단하거나 국민의 기본권 침해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에 재판부 공백의 피해는 더욱 심각하다. 위헌 결정이나 기본권 침해 결정을 위해서는 6인 이상이 의견을 같이 해야 하기 때문에 중요사건은 공정한 심리를 위해 뒤로 밀리는 경우가 많다.
 
2013년 3월. 이강국 헌재소장이 후임 없이 퇴임한 뒤 헌재 초유의 '7인 재판관 체제'가 시작됐다. 이 때문에 당시 계류 중인 사건들 가운데 남성을 성차별한다며 로스쿨 준비생이 제기한 이화여대 로스쿨 사건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이 제기한 긴급조치 1·2·9호 헌법소원 사건, 서울대 법인화 반대 공동대책위의 헌법소원 사건, 휴대전화 번호의 010 통합 위헌 사건 등 어려 중요 사건이 공개변론을 마치고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2012년 조대현 재판관 후임으로 지명된 조용환 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표결 지연이 1년 가까이 지속될 때에는 2013년 8월 다시 심판대에 오른 간통죄에 대한 위헌성 여부 판단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건 상당수에 대한 결정이 보류됐다.
 
현재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인 주요 사건 현황. 자료/헌재
 
공석으로 인한 주요사건 재판 지연 여전
 
지금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헌재소장 내지 헌법재판관 1명 공석 상태로 유지되는 현재 여러 중요 사건에 대한 공개변론이나 선고가 미뤄지고 있다. 헌재 관계자는 "헌재 결정은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되는 재판부에서 재판관들의 치열한 논의를 거쳐 도출되는 것이다. 재판관 한 사람의 의미는 9분의 1 이상“이라며 "재판관 1인의 공석은 단지 1인의 공백이라는 의미를 넘어 심판결과를 왜곡시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사법부 구성의 공백이 관례화 되는 것이 더욱 큰 국민적 피해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헌법연구관 출신 변호사는 “이른바 ‘전효숙 사태’와 ‘이강국 사태’ 때 이런 문제에 대한 지적은 이미 끊임 없이 제기되고 있었다”면서 “최장 117일간의 공백을 경험하고도 시간이 지나 재판부가 완편 되면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정치권의 사법부 발목잡기를 방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손인혁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3개월이 넘는 재판관 공석상태가 해소된 지 얼마 지나기도 전에 또다시 발생한 이번 사태는 최고·최종의 헌법재판기관인 헌재의 기능을 무력화시킬 뿐 아니라, 헌재 구성의 책무를 지는 헌법기관들의 헌법인식 수준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기에 헌법질서에 대한 위협과 훼손의 정도가 더욱 크고 무겁다”고 경고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선고가 있은 지난 3월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 도로에서 탄핵 인용에 반대하며 과격시위를 벌이는 집회 참가자들을 경찰들이 최루탄을 터트리며 저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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