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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수 특검, 10년만의 논고…"국민 여망 위해 최선 다했다"
2007년 대검 중수부장 퇴임 후 처음…검사로서 사실상 마지막
2017-08-07 19:11:29 2017-08-07 19:11:29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박영수 특별검사입니다. 먼저, 약 5개월 동안 준비기일을 포함해 무려 55회나 기일을 진행해주신 재판부의 노고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논고를 낭독하는 박영수 특별검사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7일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전현직 삼성 수뇌부 5명에 대한 결심공판에서다. 박 특검은 수사는 물론, 지난 5개월 동안 쉬지 않고 진행된 재판을 일일이 챙겼다. 그가 기소한 이 부회장 사건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를 아우르는, 국정농단 사건 중 가장 핵심 범죄이다. 이 사건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이 부회장 등이 공범이지만,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의 거부로 특검 수사기간이 종료되면서 박 전 대통령은 검찰이, 최씨와 이 부회장은 특검이 기소하게 됐다. 결국 공소유지가 이원화 된 것이다.
 
박 특검이 이 부회장 재판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이 부회장에 대한 유죄를 잘 입증해야 뒤에 따라오는 검찰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에서 유죄를 이끌어내기 쉽기 때문이다. 결국,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처단이 그의 어깨에 걸려있다.
 
이날 박 특검이 읽은 논고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A4용지 12매 분량이다. 그는 2007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직을 마지막으로 박 특검은 수사를 지휘하지 않았다. 때문에 이번 논고 작성은 10년만인 셈이다. 검사로서 공직을 수행하지 않는 한 여러 사정을 고려할 때 이번 논고는 사실상 그의 마지막 논고가 될 수 있다.
 
박 특검은 수사 초기부터 이날 결심까지 “‘삼성뇌물 사건’은 전형적인 정경유착의 구태이며, 이번 기회를 통해 완전히 뿌리를 뽑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만큼 그의 정경유착 적폐 척결 의지는 논고 곳곳에서 배어 나왔다.
 
그는 논고 모두에서 “특별검사로서는 수사를 개시한 이래, 국정농단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는 국민적 여망에 따라, 사안을 확인하고 판단함에 있어서, 법률가로서 품격을 지키면서 편향된 가치와 시각을 갖지 않으려고 스스로 경계하면서 공소유지에 최선을 다했다”고 그동안 다져왔던 각오를 재확인했다.
 
그는 이번 재판의 의미를 재차 강조하면서 “삼성그룹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59개의 계열사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최대의 재벌기업이고, 대통령은 대기업 규제 등 경제정책을 비롯한 국정 전반에 있어 최고 결정권자”라고 지적한 뒤 “따라서 대통령과 삼성은 재벌 기업에 대한 규제와 지원을 두고 크고 작은 잠재적 현안으로 상호 긴장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이나 박근혜 대통령의 ‘사내 유보금 과세 추진의 후퇴’ 등이 그 한 예”라고 ‘삼성뇌물 사건’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더욱 거세진 ‘경제 민주화’ 바람은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이나 기업의 투명성 제고 등 재벌 개혁을 요구하게 되었고, 더군다나, 삼성으로서는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의 갑작스런 와병으로 인해, 피고인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와 삼성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의 안정적 확보는 시급한 지상과제가 됐다”며 “피고인 이재용의 이러한 현안해결의 시급성은, 집권 후반기에 들어서는 시점에서 최순실이 요청한 재단 설립이나 정유라의 승마 훈련, 영재센터 운영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자금 지원의 필요와 접합되어, 정경유착의 고리가 다른 재벌보다 앞서서, 강하게 형성되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특검은 “이에 따라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주도 아래 굴욕적으로 최순실의 딸에 대한 승마지원을 하게 되었고, 미르 재단, 케이스포츠 재단 기금 조성 및 영재센터 후원 등에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이 이번 사건의 실체지만 피고인들은 ‘승계 작업이라는 것은 특검이 만든 가공의 틀’이라고 하거나, ‘피고인 이재용 관여 사실이 없다‘고 하는 등 사실과 증거에 관한 근거 없는 주장이나 변명으로 디테일(detail)의 늪에 빠지게 하여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고, 실체진실을 왜곡 시키려고 했다”고 비판했다.
 
박 특검은 논고 중반부에서 삼성 측의 무죄 주장을 일일이 반박한 뒤 이 부회장 등에 대한 엄벌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재판장님, 피고인들의 이 사건 범행은 전형적인 정경유착에 따른 부패범죄로 국민주권의 원칙과 경제 민주화라고 하는 헌법적 가치를 크게 훼손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의 역사에 뼈아픈 상처이지만, 한편으로는 국민들의 힘으로 법치주의와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제 하루 빨리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고, 훼손된 헌법적 가치를 재확립해야 합니다.”
 
그는 이와 함께 “역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대통령과의 독대라는 비밀의 커튼 뒤에서 이루어진 은폐된 진실은 시간이 지나면 드러나기 마련이지만 피고인들은 권력과 유착되어 사익을 추구하는 그룹 총수와 그에 동조한 일부 최고경영진으로, 이들은 본건 범행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고, 국정농단 사건의 실체가 밝혀지기를 원하는 국민들의 염원마저 저버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특검은 논고 말미에서 이 부회장 등의 양형에 대한 최종의견을 밝히면서 “법정에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실 것을 기대한다”며 “최근 재벌 총수들에 대한 형사재판에서 법원칙과 상식, 그리고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라 엄정한 처벌이 이루어지고 있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달라”고 재판부에 촉구했다.
 
박영수 특별검사가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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