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시론)기율 강조의 조급함
2017-08-08 08:00:00 2017-08-08 08:00:00
1931년 11월 장시성 루이진(瑞金)에서 중화소비에트공화국이 만들어졌다. 중화소비에트공화국의 존재 기간은 3년여에 불과했다. 그러나 3년은 중국공산당 혁명가들에게 정치행정의 경험을 안겼다. 또한 농민의 조직과 참여가 소비에트 건설에 얼마나 중요한 자산인지를 확인해준 기간이기도 했다. 중국공산당이 대장정에 나서면서 국민당은 공산당의 지지세력이었던 농민을 공격했다. 농민의 와해는 홍군의 궤멸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역사는 중국공산당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중국공산당은 농촌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농민의 지지를 끊임없이 확보해 나갔다. 국공내전 시기 중국공산당의 결정적인 승리는 농촌에서 조직된 농민의 지원에 의해서 가능했다. 중국공산당의 호소에 농민이 반응했고, 농민의 반응은 중국공산당의 집권 기초가 되었다. 중국공산당은 농민을 신뢰했고, 농민 또한 중국공산당을 신뢰한 결과였다. 이 과정에서 중국공산당의 엄격한 규율이 중시됐다.
 
예컨대 홍군(紅軍)은 삼대기율과 팔항주의를 내세우면서 당과 농민의 간극을 좁히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삼대기율은 모든 행동은 지휘자의 말을 듣고, 군중에게서 바늘 하나 실 하나도 취하지 않고, 모든 노획품은 공유한다는 것이다. 팔항주의는 부드럽게 말하기, 공평하게 매매하기, 빌린 물건 돌려주기, 손상 물건 배상하기, 다른 사람을 때리고 욕하지 않기, 농작물 훼손하지 않기, 부녀자 희롱하지 않기, 포로 학대하지 않기 등이다. 홍군이 강조한 삼대기율과 팔항주의는 사실 중국공산당이 군중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기율과 주의에 미진하거나 소홀히 하면 바로 당의 신뢰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즉 중국공산당은 예나 지금이나 당과 군중이 신뢰를 가져야만 온전히 지탱되고 유지되는 군중 신뢰의 기초 위에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은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바뀌어도 여전히 중국공산당의 당군관계(黨群關係) 맥락에서는 소홀히 다뤄져서는 안되는 부분이다.
 
최근 인민일보 출판사에서 <당원 기율 위반 행위 100가지>를 책으로 묶어냈다. 당원 간부들이 새겨야하는 기율 위반 100가지가 매우 상세하게 나열되어 있다. 이 가운데 56개는 중고급 당원 간부들이 저지르기 쉬운 전형적인 기율 위반 행위를 담고 있다. 나머지 44개는 보통 당원 간부들이 범하게 되는 전형적인 기율 위반 행위를 열거하고 있다. 100가지 내용은 사실 중고급 당원간부든 아니면 보통 당원간부든 모든 당원들이 지켜야 하는 규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원 간부 지위에 따라 차등을 두는 이유는 간부 지위에 따른 사회적 파급력과 영향력이 달리 나타나기 때문일 것이다. 쉽게 말해서 강한 권력을 가진 높은 지위에 있는 간부들을 규율 위반으로 옥죄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래야 정치적 파급효과가 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고급 간부들에게 강조되고 있는 기율 위반 행위 가운데 몇 가지 사례는 다음과 같다. 친척 혹은 기타 관계인이 당원 간부 직권(職權) 혹은 직무(職務)상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부당한 사적이익을 취하고, 규정 위반하여 간부를 선발하고 임용하며, 생활이 사치스럽고 탐욕스러우며, 당과 국가 정책에 대항하고, 규정 위반하여 공공재정 자금 분배, 프로젝트 평가 심의, 정부 장려와 표창 등 활동에 간여하는 것 등은 기율 위반 행위이다. 보통 당원간부들에게 적용되는 기율 위반 행위도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직권 혹은 직무상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혼례와 장례, 경사스러운 일을 처리하고, 엄격하게 당을 관리하는(從嚴治黨) 책임을 이행하지 않고, 조직 심사에 대항하고, 관련 규정 혹은 업무 요구에 의거하지 않고 조직에 중대 문제와 중대 사항을 보고 및 문의하고, 규정을 위반하여 각종 소비 카드를 취득, 소지, 실제 사용하는 것 등도 기율 위반 행위에 해당한다.
 
<당원 기율 위반 행위 100가지>에서 제시하고 있는 기율 위반 유형을 뒤집어 보면 사실 중국과 중국공산당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기율 위반 행태를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사실 현실에서 마주하는 기율 위반 행위는 위에서 열거하고 있는 100가지도 훨씬 넘을 것이다. 중국공산당이 이처럼 책으로까지 엮어서 기율 위반 유형을 나열하여 각급에 내려 보내는 것이 다른 한편으로는 법과 제도에 따른 사회적 단죄가 한계에 이르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징표이기도 하다. 홍군이 그리했고, 마오시기에도 그리했듯이 오직 당원간부, 당원, 국민들의 자발적 순응, 즉 정치적 자각에 의해서만 기율이 지켜져야 하는 현 상황의 엄중함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법과 제도에 기반을 둔 거버넌스가 아니라 사상적 각성에 기반을 둔 오직 당의 요청과 당부에 의해서만 집행력을 보장받는 기율이라면 느슨과 이완의 악순환이 반복될 것은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순정차이 충칭시 서기가 ‘중대한 기율 위반’으로 물러났다. 일반적인 ‘기율 위반’이 아니라 ‘중대한 기율 위반’이다. 중대하고, 중대하지 않은 것은 물론 중국공산당 중앙이 결정한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당원은 처분만을 기다려야 한다. 당원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 또한 이미 팔항규정(八項規定) 등으로 직간접으로 기율의 속박에서 묶여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홍군이 내세웠던 삼대기율와 팔항주의는 당의 신뢰를 회복하고 당이 튼튼히 군중 속에서 뿌리 내리기 위한 시대 환경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번에 발표된 <당원 기율 위반 행위 100가지> 역시 당원간부들을 상대로 하는 강력한 군기잡기인 동시에 국민들에게 보내는 신뢰 회복의 신호가 필요하다는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당과 국민, 군중의 신뢰는 사상적 각성이 필요한 위로부터 이식되는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율을 강조하면 할수록 기율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기율의 강조에 앞서 기율이 강조되어야 하는 정치사회적 환경의 이모저모를 세심하게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19대가 다가올수록 조급함이 묻어나 보인다.
 
양갑용 성균관대학교 성균중국연구소 교수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