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옷 벗은 검사장들 '취업난'…갈 곳이 없다?
취업제한 대상 로펌 증가…단독 개업시 대형로펌과 경쟁
2017-07-31 03:00:00 2017-07-31 13:37:19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새정부 출범 뒤 고위 검찰간부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줄줄이 사퇴하고 있지만 변호사 개업을 두고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공직자윤리법상 취업제한 대상 로펌이 늘고 있는 데다가 단독 개업 후에는 대형 로펌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쉬울 것 없었던 고위 검찰간부들도 이제 냉혹한 법률시장의  생태계에 들어선 것이다.
 
불과 2년여 전만해도 검사장급 이상 고위 검찰간부는 대형로펌의 영입 대상 ‘0순위’였다. 평균연령 50대 초중반으로, 업무소화 능력이 왕성한데다가 실제로 일선 청에서 수사를 지휘해 온 터라 사건 수임이나 변론 등 여러 모로 효용가치가 높았기 때문이다. 조직 장악력도 뛰어나 곧바로 공동대표로 이름을 올리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인사철이 가까워 오면 유능한 검사장을 영입하기 위한 로펌간 물밑 경쟁이 치열했고, 웬만한 검사장 대부분은 특정 로펌으로 취업이 확정된 뒤 사직서를 내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러나 2015년 3월 개정·시행된 공직자윤리법으로, 퇴직 검사장급 이상 검찰고위간부들의 대형로펌행은 차단됐다. 전관예우 폐해를 막아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이 강하게 반영된 것이다. 공직자윤리법 17조는 ‘고등법원 부장판사급 이상의 법관과 대검찰청 검사급(검사장) 이상의 검사’에 대해 퇴직일부터 3년간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했던 부서 또는 기관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기관에 대한 취업을 제한하고 있다. 여기서 취업이 제한되는 ‘업무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기관’은 연간 외형거래액이 100억원 이상인 법무법인(로펌)이나 법무조합, 법률사무소 등이다. 같은 조건의 회계법이과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로도 취업이 제한된다.
 
예외적으로 관할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때에는 취업이 가능하지만 심사가 매우 까다로워 승인을 받은 예가 드물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가 지난해 4월 박홍우 전 대전고법원장의 법무법인 KCL 고문변호사 취업을 승인한 사례 정도가 전례이다. 당시 대법원 공직자윤리위는 "박 전 원장이 퇴직 전 5년 동안 대부분 법원장으로 근무하면서 사법행정 업무만을 담당한 점 등을 참작해보면 밀접한 업무관련성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이 같은 해석은 직후 대한변호사협회의 맹렬한 비판을 받았다. 대한변협은 같은 해 5월 성명서를 내고 "법원장이 외형상 사법행정업무만 담당하였다는 이유로 기준을 완화해 적용한다면,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퇴직 후 대부분의 대형로펌 재취업이 3년간 제한되는 반면, 법원장은 퇴임 직후 대형로펌에 재취업해 퇴임 직전 소속 기관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불균형이 발생하게 된다"며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승인은 공직자윤리법을 편법적으로 해석해 고위법관의 대형로펌 재취업 기회를 제공하고 전관예우를 조장하였으므로, 공직자윤리법 규정 및 취지에 크게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최근의 변호사업계 경향을 보면 취업 제한 대상 로펌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법률시장이 점차 팽창하면서 중소형 로펌들의 외형거래액 또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국에 진출한 글로벌로펌의 서울사무소들도 점차 취업제한 대상 기업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어 고위 검찰 간부들의 로펌행은 더욱 제한되고 있다. 
 
인사혁신처가 지난 1월 관보를 통해 발표한 2017년 취업제한 대상 로펌은 총 30여곳이다. 이 가운데 28곳이 국내로펌, 2곳이 외국로펌 서울사무소다. 국내 로펌 중에는 2016년 외형거래액 100억 이상으로 취업 제한 로펌이었던 법무법인 에이펙스가 빠지고 법무법인 민주와 엘케이비앤파트너스·평안·한울이 새로 추가됐다. 외국로펌 서울사무소도 2016년 영국계 로펌인 ‘클리포드 챈스’ 한 곳이던 것이 올해 들어 미국계 로펌인 ‘클리어리 가틀립’의 진입으로 2곳이 됐다. 그만큼 이번에 퇴직한 고위 검찰간부들의 선택지가 줄어든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퇴직 검찰 고위간부들은 대부분 개인 개업을 고려하거나 먼저 개업한 후배들의 영입 제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더러는 검찰 선배들이 일하고 있는 중소로펌도 진로 중 한 곳으로 고려 중이거나 아예 중소로펌을 설립할 계획을 가진 퇴직간부들도 있다.
 
그러나 개업도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2015년 12월 정기 인사 때 검찰을 떠나 개업한 고위 검찰간부들 중에는 현역시 주특기를 살려 자리를 완전히 잡은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웬만한 각오가 아니고서는 실적을 내기 쉽지 않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서울에서 단독 개업한 검사장급의 고위 검찰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과거 검사장들이 대형로펌으로 영입되던 때에는 굵직굵직한 기업 사건들이 대형로펌으로 몰렸지만 공직자윤리법에 의한 취업제한으로 단독 개업하는 검사장들이 많아지면서 대형로펌과 사건수임 경쟁이 치열해 졌다"며 "완전히 ‘맨땅에 헤딩하기’다. 지검장 시절 후배검사들을 거느리고 일하던 때를 생각하면 앞날은 장담 못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지방법원 부장판사나 각급 검찰청 부장검사 출신의 견제도 만만치 않다. 경험은 상대적으로 모자랄지 모르지만 실무면에서는 오히려 검사장급 보다 낫다는 평가도 업계에서는 심심치 않게 들린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출신의 한 중소로펌 대표 변호사는 “‘홍만표·최유정 사건’ 이후 전관들의 실적이 예전만 못하다”며 “전관 아닌 일반 변호사들 중에서도 1년에 20억원 상당의 수입을 올리는 등 변호사 업계가 완전 자율경쟁화 조짐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새정부 출범 후 사퇴한 검사장급 이상 고위간부는 총 13명이다. 김희관(사법연수원 17기) 전 법무연수원장, 박성재(17기) 전 서울고검장, 김주현(18기) 전 대검 차장, 김해수(18기) 전 대검 공판송무부장, 박민표(18기) 전 대검 강력부장, 오세인(18기) 전 광주고검장, 이명재(18기) 전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김진모(19기) 전 서울남부지검장, 윤갑근(19기) 전 대구고검장, 이창재(19기) 전 법무부차관, 전현준(20기) 전 대구지검장, 정점식(20기) 전 대검찰청 공안부장, 유상범(21기) 전 광주고검 차장 등이다.
 
‘돈봉투 만찬 사건’으로 지난달 23일 면직 처리된 이영렬 전 부산고검 차장과 안태근 전 대구고검 차장은 앞으로 2년간 변호사 개업이 불가하다. 이 전 차장은 현재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어 재판 결과에 따라 개업 시기가 달라질 수 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