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의 만인보로 읽는 한국사-72화)교육 전성시대 혹은 대란시대
“그 자하동에 아홉 채 공부방이 서 있으니”
입력 : 2017-07-03 08:00:00 수정 : 2017-07-03 08:00:00
자사고·외고·국제고의 폐지를 둘러싸고 찬반의 갈등이 심화되어가는 양상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014년 ‘일반고 전성시대’ 기본계획을 발표한 이래 일반고의 교육력 강화를 위한 정책들을 추진해 일정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추진했던 자사고의 폐지는 당시 박근혜 행정부 내 교육부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이명박 정권 때 시작된 자사고는 설립취지와는 달리 성적우수학생들의 선점과 입시위주의 교육으로 ‘입시명문고’가 되어 고교서열화를 이끌었고, 일반고보다 현저히 비싼 등록금으로 빈부격차의 골을 깊게 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과연 ‘일반고 전성시대’는 도래할 것인가?
 
지난 2014년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일반고 전성시대’ 고등학교 교장 워크숍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기회불균등의 교육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말이 무색해진 지 오래고 ‘교실붕괴’도 오래되었다. 수시로 바뀌는 대입제도가 복잡해 자녀가 고3이거나 고3이 될 학부모들은 열심히 입시제도의 세부사항들을 익혀 자녀에게 최대한 유리한 방식을 찾으려 하지만, 모든 부모들이 원하는 만큼 자녀의 입시 뒷바라지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기에는 일단 ‘돈’이 너무 많이 드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당시, 장기적 교육 설계를 위한 ‘국가교육위원회’의 설치, 대입제도의 단순화(학생부교과전형, 학생부종합전형, 수능전형 외 폐지), 공교육비 확대를 통한 고교 무상·의무교육, 대학교 등록금 인하, 외고·자사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 대입 기회균등전형 의무화, 고교학점제 실시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자사고 등을 단계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대선 당시 한 후보만을 제외하고 모든 후보들의 공통된 공약이었을 만큼 우리의 교육현실에서 심각한 문제인 것은 분명하다. 고교서열화, 대학서열화에서 ‘돈’이 발휘해온 위력은 대다수 국민들이 자사고·외고·국제고―국제중의 문제도 동일 선상에 있다―의 폐지에 동의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경기도교육청에 이어 서울시교육청도 외고·자사고의 폐지를 결정하자, 2019~2021년까지는 유지될 예정이라 현 재학생들에게 불이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외고·자사고의 학부모들이 시위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6월 26일에 발표된, 외고·자사고 존폐에 관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폐지 찬성이 52.5%, 반대가 27.2%이고 학부모 중에서는 55.4%가 폐지 찬성, 27.7%가 반대이니, 문제의 심각성과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변질된 자율형 사립고의 본 목적이 고교과정의 자율성을 통해 전문성 있는 인재를 키운다는 것이었다면, 일반고 내 고교학점제 도입과 같은 방식이 그 ‘자율성’을 보충할 방법으로 제시되고 ‘과목선택형’ 수업방식이 학생들의 선택권과 고교의 다양성·특성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설명은 꽤 설득력 있어 보인다. 자사고 폐지를 둘러싼 갈등에서도 보이듯이, 계층화·서열화로 표상되는 기회불균등의 교육문제가 해결되려면 앞으로도 오랜 시간 연구와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이 또한 불가피한 과정일 것이다.
 
과거(科擧)명문사학 ‘구재학당(九齋學堂)’
현대 한국사회의 고교생들과 학부모들의 최대관심사가 대학입시라면, 옛날의 젊은이들과 그 부모들에게는 아마 과거시험이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안정된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 대학에 가는 것―사실 대학을 졸업해도 그 미래는 거의 보장되지 않으나―이 필수로 여겨지듯이, 과거시험에 합격해 벼슬자리에 나아가는 것이 몹시 중요했던 조상들은 관학으로 만족할 수 없는 교육열을 사학으로 채웠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회자되는 것이 최충의 구재학당이다.
 
송악산세는 북한산세와 어슷비슷
 
때로는 북한산 인수봉의 꿩이
멀리
송악산까지 날아가
그곳 자하동 콩밭에 내려앉았다더라
 
그 자하동에 아홉 채 공부방이 서 있으니
최충 어른의
구재학당(九齋學堂)
그 공부방
오경삼사(五經三史)와
시부(詩賦)를 익히니
어제는 경사(經史)를 말하고
오늘은 시를 읊어
뜨거운 감개이더라(崔公徒)
 
< … >
(‘구재학당의 밤’, 23권)
 
종종 고구려의 경당을 중앙귀족자제들의 국립교육기관인 태학과 비교해 ‘사학’으로 간주하기도 하지만, 사료 상으로 정확히 입증되는 것은 아니다. 경학을 소개하는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의 내용을 보면, 고구려에 서적(학문)을 좋아하는 풍속이 있어 천한 일에 종사하는 집에서까지 각기 네거리에 큰 집을 지어 이를 경당이라 부르고 미혼의 자제들이 모여 독서와 사격술을 습득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경학에 대한 기존의 이해―지방의 촌락에 소재, 평민 미혼자제 대상의 교육기관, 원시 미성년집회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 국민개병제의 반영 등―도 새로운 연구들에 의해 보완·재해석되고 있고 역사적인 기록도 불충분해 경학을 최초의 사립교육기관으로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반면, 명백한 사립교육기관인 고려시대의 구재학당을 사학의 시초로 보는 관점도 있다. 고려 성종 때 국립고등교육기관인 국자감이 수도 개경에 설치되고 지방에는 향교(鄕校)가 건립되어 유학교육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는데, 젊은이들이 중앙 정계에 진출하려면 과거에 급제해야 했다. 물론 고려 지배층의 경우 음서제(蔭敍制)를 통해 과거를 통하지 않아도 관직을 받아 지위를 세습하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으나, 과거를 통해 자신의 학문적 소양과 능력을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컸기에 명문사학으로 이름을 떨친 구재학당에는 귀족, 평민 할 것 없이 많은 이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구재학당은 고려 문종 때 문하시중 겸 태자 중서령인 최충(984~1068)이 벼슬에서 물러난 후 문종 9년(1055)에 설립한 사학이다. 국자감의 역할이 부진하던 때에 당대 최고의 유학자로 존경받던 그가 학교를 열었으니 과거급제로 관직에 나가고자 하던 학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는 옛 기록들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 명문사학은 학생들이 넘치자 9재로 나뉘었는데, 낙성(樂聖)·대중(大中)·성명(誠明)·경업(敬業)·조덕(造道)·솔성(率性)·진덕(進德)·대화(大和)·대빙(待聘)이 그것으로, 이로부터 ‘구재학당’이라는 명칭이 나오게 된다. 구재학당의 학도들은 최충의 벼슬 이름을 따 ‘시중최공도(侍中崔公徒)’라 불렸고 그의 사후에는 시호를 따라 ‘문헌공도’라고 불렸다. 체계적인 교육방식 덕분에 최공도들의 과거급제율이 높고 구재학당이 번성하자 이를 본뜬 다른 사학들이 일어나 문헌공도를 비롯해 이른바 ‘사학12도’ 즉 ‘십이공도(十二公徒)’라 일컫게 된다.
 
과거급제 스트레스
사학(私學)을 통해 많은 제자들을 길러내고 유학교육을 발전시킨 최충은 그 공로로 인해 ‘해동공자’로 불렸고 구재학당은 다른 사학들이 명멸하는 동안에도 고려 말까지 살아남았지만, 이 명문사학의 학생들은 어떠했을까? 한편으로는 자부심에 차 있었겠으나 다른 한편 심한 경쟁으로 인해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을지? 앞서 인용한 시의 다음 부분은 그런 의미에서 꽤 시사적이다.
 
< … >
최공도(崔公徒) 가운데
 
기이한 임우빈이라는 생도 있었으니
그는 낮에는 공부에 열중하다가
밤에는 공부한 것 다 내버리려고
머리를 벽에 찧어대더라
 
그 벽에 찧어대는 소리가
만월대 구중궁궐왕비마마 침전까지 들리니
이 무슨 하늘의 뜻인고 하고
왕비마마 잠 설치고 일어나
책을 읽으니
임빈우 생도가 버린 공부가
왕비마마 머릿속에 다 들어오더라
 
기이한지고
바다 건너
송나라 황후가
고려의 왕비를 꿈속에서 보고
이 무슨 하늘의 뜻인고 하고
큰 절을 올렸다 하더라
 
이 세상에
천자보다 높으신 것은
공부인가 하옵니다
높으시옵니다
높으시옵니다
 
그런 꿈 깨고 나서
송나라 황후
찬물 한 그릇을
마신 뒤 다시 재밤 잠을 청했다 하더라
 
그 최충 어른의 학도
최공도
(‘구재학당의 밤’, 23권)
 
고은 시인이 혹 임우빈이라는 생도의 일화를 어디선가 사료에서 보고 참조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보다는 시인의 시적 상상력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바, 동문수학하는 많은 벗들이 동시에 과장(科場)의 경쟁자인 상황 속에서 “낮에는 공부에 열중하다가 / 밤에는 공부한 것 다 내버리려고 / 머리를 벽에 찧어대”는 행동을 하는 생도가 나올 법도 하다. 그러한 행동이 ‘비움의 철학’을 실천하는 경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과거급제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는지. ‘천자보다 높으신 것’이 ‘공부’인지라, 벽에 머리를 찧어 내버린 공부가 파장을 타고 왕비의 머릿속으로 들어오듯이, 시험 전날 밤 책을 베고 자면서 그 내용이 머릿속에 술술 들어오기를 바라던 학창시절의 기억이 하나쯤 있지 않을는지.
 
고3 수험생들에게 여름은 대입시험을 앞두고 마지막 총력을 기울이는 때로, 가뭄만큼 목마르고 장마만큼 지루한 힘겨운 시간의 연속이다. 문헌공도와 다른 사학의 생도들에게도 여름학습 즉 하과(夏課)가 있었는데, 귀법사의 승방을 빌려 피서를 겸해 진행한 수업이니 고3 수험생들의 여름집중학습보다야 즐겁고 낭만적이었을 듯싶지만 수업은 어쨌든 수업이다. 이 하과(夏課) 때는 과거에 급제했으나 아직 관리가 되지 못한 선배들이 와서 강의를 했고, 저명한 학자나 대관들이 오면 생도들과 ‘각촉부시(刻燭賦詩)’를 열었다고 한다. 각촉부시는 초에 눈금을 새기고 초가 그 눈금으로 타내려가기 전까지 시를 짓는 놀이 내지 시합·시험인 셈인데, 성적을 발표하고 술상을 베풀었다고 전해진다.
 
문헌공도들 중에는 고려시대 대표적 시인이자 문장가인 이규보(1168~1241)도 있다. 그는 14세 때 구재학당의 성명재에 들어가 두각을 드러내어 하과에서 거듭 1등을 차지하기도 했지만, 16세 때부터 본 과거에는 세 번 연속 떨어져 22세 때 네 번째 과거에서 합격했다. 문학적 재능이 과거급제를 보장하는 것은 아닌 셈이다. <동국이상국집> 연보에 기록된 이규보 자신의 해명대로라면 그가 풍월에 빠져 시 짓는 것만 일삼고 과거지문을 익히지 않은 탓이라 하니, 수능을 준비하듯 과거의 준비방식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최충이 구재학당을 설립해 학문적 기풍을 일으키고 유학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학들이 과거응시를 위한 준비기관이 된 것도 사실이다. 과거급제자가 주로 문헌공도 같은 ‘명문사학’ 출신들이 되다보니 관학은 더욱 위축되어가고 명문사학 출신들은 학벌이라는 새로운 파벌을 형성하기도 했다. 공공연한 신분세습사회도 아닌 현대에, 부의 세습을 기반으로 고교서열화와 대학서열화를 거치면서 엘리트주의에 젖어 사회의 상층부(!)를 구성하고 파벌을 형성해 권력을 남용하는 사람들을 우리 교육이 낳게 된다면 이는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없다.
 
외국어고·자율형사립고 폐지 논란이 거세지는 가운데 전국 외국어고등학교 학부모연합회 학부모들이 27일 오후 서울 정동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에서 열린 회의에서 외고 폐지에 대한 성명서 발표 중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성현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역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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