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피플)"비정규직 문제 해결하면 현대사 가장 성공한 대통령"
비정규직의 '홍반장' 이남신 소장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이 핵심"
"포기하지 않고 싸워야 성과 얻어낼 수 있어"
2017-06-27 17:55:03 2017-06-27 17:55:03
[뉴스토마토 구태우기자] "동일노동 동일임금,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이 두 가지 공약만 지킨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정치사에서 가장 성공한 대통령이 될 것이다."
 
이남신(52)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드러냈다. 출범 직후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방점을 찍은 것에 대한 호의적 평가였다. 그는 노동계에서 비정규직 문제의 '홍반장'으로 통한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다치거나 해고되면 어디선가 나타나 두 팔을 걷고 돕는다. 이 소장은 이랜드일반노조의 간부로 2007년 정리해고 반대 투쟁에 참여했다. 당시 홈에버(현 홈플러스)는 기간제법 시행으로 350명을 해고했다. 2년 이상 근무할 경우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하는데, 법의 허점을 악용해 정리해고한 것이다. 노조는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512일 동안 장기간 파업을 했다. 2014년 개봉한 영화 '카트'는 노조의 파업을 영화로 재현했다. 경남 남해 출신인 이 소장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2001년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2008년까지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근로자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26년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힘써 온 그는 노동계 안팎에서 공인하는 비정규직 전문가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센터 사무실을 찾았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새정부 출범과 함께 공공·민간부문에서 정규직 전환 움직임이 활발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여정부가 실패한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노사갈등이 극심했던 SK브로드밴드의 간접고용 노동자들까지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문 대통령이 한국 현대사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한 첫 번째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 문 대통령의 노동공약은 완성도가 높다. 비정규직 대책의 핵심은 사용사유 제한과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다. 문 대통령이 이 두 가지를 공약에 반영했다. 지켜진다면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상당부분 개선될 것이다. 물론 공약을 실현하기까지는 험로가 뒤따른다. 경영계의 반대도 극심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두 가지를 노동법 개정을 통해 실현시켜야 한다. 대통령이 바뀌면 노동정책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하지만 법은 쉽게 바꿀 수 없다. 임기 내 완수할 수 있다면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을 것이다. 집권여당과 함께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민간기업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 어떻게 보나. 
 
공공부문은 정부나 지자체가 결정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다. 하지만 민간기업에는 정규직으로 고용하라고 강제할 수가 없다. 비정규직 문제는 당사자가 노조를 조직해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성과를 내기 힘들다. 2013년 SK브로드밴드 설치·수리기사들이 노조를 만들었고 매년 회사를 상대로 싸웠다. 노숙도 했고 한강 다리 위에도 올랐다. 아직 처우가 얼마나 개선될 지 알 수 없어 평가는 이르다. 정부의 의지도 도움이 됐지만, 당사자들이 포기하지 않고 싸웠기 때문에 얻어낸 성과다. 희망연대노조와 시민단체들도 간접고용 문제 해결의 선례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LG유플러스와 티브로드 등은 아직도 노사갈등을 겪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는 원청의 의지가 중요하다. LG유플러스와 티브로드 노사는 수년 동안 노사갈등을 겪었는데, 노조에 대한 사용자의 인식은 그대로다. 사용자가 우위에 있으니 가능하면 노조를 고사시키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반면 SK브로드밴드나 딜라이브는 노조와 함께 가는 전략을 택했다. SK브로드밴드의 사례를 보면 단순히 대통령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정규직 전환을 했다고 할 수 없다. 노조에 대한 인식이 이전보다 유연해졌다. 
 
비정규직 대책, 성과가 있지만 한계도 있다. 
 
재벌그룹의 계열사는 노조가 싸우면 얻어낼 게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민간기업은 경영환경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들 사업장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선 공공부문부터 좋은 일자리의 모델을 만들고 민간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정부는 재벌그룹부터 정규직의 비중을 늘려가야 한다. 무분별한 외주화를 규제하고, 불법파견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만 해결해도 적어도 50만개의 질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새 정부의 임기 첫 해인 올해, 비정규직 문제의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해야 하지 않겠나. 
 
기업의 부담도 무시할 수 없지 않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리해고가 도입됐고, 비정규직도 대폭 늘었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이 됐고, 노동자들이 수없이 해고됐다. 노동자들은 고통을 분담했는데, 경제가 회복됐으면 이제 복원할 때도 됐다. 기업들은 정부 지원을 받으면서 살아남아 성장했는데 노동시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됐다. 양극화는 더 심화됐다. 기업이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이번만큼은 소득 주도의 경제성장을 했으면 좋겠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 시한이 하루 남았다. 최저임금위원회 분위기는 어떤가. 
 
올해는 사용자위원들의 기가 많이 죽어 있다. 최저임금 인상을 거부하며 회의장을 나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하기 위해서는 매년 15.7%씩 올려야 한다. 인상폭이 굉장히 높은 건 사실이다.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 받을 수 있는 충격도 고려해야 한다.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입을 막고, 카드수수료를 낮추는 대책도 필요하다. 
 
자영업자와 중소기업를 설득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자영업자를 만나보면,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되면 가게를 접는다고 말한다. 임금이 낮고 노동시장이 불안해 자영업을 선택한다. 편의점, 카페, 빵집이 동네마다 몇 곳씩 있다. 자영업자들끼리 경쟁해 제살 깍아먹는 식이다. 최저시급이 1만원인데 왜 힘들게 장사를 하냐고 한다. 단기적으로 자영업자도 어려움을 겪겠지만 창업 유인이 없어지는 만큼 자영업 생태계도 좋아진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퇴출되는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해야지, 자영업자가 최저임금 인상의 반대 명분으로 쓰여선 안된다. 
 
올해도 공익위원이 최저임금을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의 이견이 커 이전처럼 공익위원들이 최저임금의 키를 쥐고 있다. 청와대가 최저임금 인상에 얼마나 의지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최저임금 인상폭이 결정될 것이다. 공익위원 구성에서 청와대의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이전에는 공익위원 중 노동법 전공자가 한 명도 없었다. 사회학 전공자도 위원회에 들어올 수 없었다. 그런데 올해는 공익위원 9명 중 2명이 노동법 전공자다. 최저임금 법정시한이 하루 밖에 안 남았다. 8월 초에는 고용노동부 장관이 내년도 최저임금을 고시해야 한다.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대책을 서둘러 마련하고,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 최저임금의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근로자위원에게도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이전처럼 근로자위원이 최저임금 전원회의를 보이콧하고 퇴장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임금교섭은 교섭자리에서 최대한 끌어올리는 게 맞다. 노동계가 최저임금 회의를 거부하고 나오는 건 무책임하다.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대통령이 약속한 만큼 믿고 신뢰를 보내줘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노조를 가입하지 못한 미조직 노동자들의 마지막 요구다. 근로자위원이 영세사업장의 저임금 노동자를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회의에 참여한다면 퇴장해선 안 된다. 
 
사용자위원들은 지역별·산업별 최저임금을 도입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지역마다 물가가 다르고, 업종마다 상황이 다른 건 인정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임금 수준에서 업종별·지역별 최저임금을 정하는 건 섣부르다. 적어도 생활임금 수준으로 최저임금이 올라야 검토할 수 있다. 사용자들은 수당, 상여금, 식대를 최저임금에 산입할 수 없어 억울하다고 주장한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최저임금 수준이 주요국들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데, 지금 사용자들의 요구사항을 수용하면 오히려 악용될 소지가 크다. 
 
구태우 기자 goodtw@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